‘라디오스타’는 왜 TV스타가 되지 못했을까?

  • 입력 2009년 3월 29일 08시 23분


박중훈쇼에 출연한 소녀시대. [동아일보 자료사진]
박중훈쇼에 출연한 소녀시대. [동아일보 자료사진]
박중훈쇼에 출연한 3당 원내대표들이 팔씨름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시사프로그램이란 애매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박중훈쇼에 출연한 3당 원내대표들이 팔씨름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시사프로그램이란 애매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라디오스타는 왜 토크쇼 스타가 되지 못할까…. 박중훈쇼가 4개월만에 하차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라디오스타는 왜 토크쇼 스타가 되지 못할까…. 박중훈쇼가 4개월만에 하차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졌다, 물러난다."

25일 KBS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의 폐지가 결정된 뒤 알려진 박중훈 씨(43)의 일성이다. 그러나 승패를 떠나 '박중훈쇼'의 몰락은 한국 방송시장에서 1인 정통 토크쇼의 정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계기가 됐다.

물론 그 원인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박 씨는 하차가 결정된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기존 토크쇼와 다른 깔끔하고 매너 있는 정통 토크쇼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시청자와의 소통에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박중훈쇼'가 여타 방송에 비해 지나치게 품격 있고 수준 높았기에 가벼움을 좇는 시청자들 눈높이와 맞추지 못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박중훈쇼'는 '고품격 시사토크쇼' '감동이 있는 정통 토크쇼'등을 앞세우고 의욕적으로 막을 올렸다. KBS의 지원도 화끈했다. 당초 '개그콘서트'가 방영되던 일요일밤 10시25분이라는 황금시간을 할애했을 뿐만 아니라 일류가수 콘서트장 이상의 화려한 무대장치와 그에 걸맞은 출연료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1인 토크쇼의 최대 경쟁력은 MC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오프라 윈프리나 데이비드 레터맨 등 MC의 능력에 따라 토크쇼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 왜 박중훈이었을까?

이영돈 KBS 시사정보팀장은 박 씨의 발탁 배경에 대해 "그가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다양한 배역을 섭렵해 왔을 뿐 아니라 그가 이전 연예프로그램 게스트로 출연해 보여준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 실제 수많은 영화를 히트시킨 그의 연기능력과 언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 또한 40대 이후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위해 높은 의욕을 보였다.

문제는 높은 기대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정통토크쇼의 본령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화려한 출연진에 비해 질문의 맥이 탁탁 끊기는 것은 물론 평범한 신변잡기로 흘러가자 시청자들은 "밤에 하는 아침방송이냐"며 채널을 돌려버렸다. 결국 11%로 시작한 시청률이 애국가 시청률(5%)로 근접해 가자 하나둘씩 광고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방송 내용에 실망한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MC와 작가의 준비부족'을 문제 삼았을 정도였다.

△실패원인 1=이슈도 감동도 없고 오로지 스타 얼굴만…

방송계엔 "섭외능력이 곧 권력"이라는 말이 있다. 애당초 박중훈을 간판으로 내세운 데는 그의 토크 능력보다 섭외능력을 중시했다는 것이 방송계의 중론. 토크쇼 MC의 적합성 보다 애초부터 떡밥에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이미 2007년 상반기에 SBS에서 '박중훈 쇼'가 기획됐는데, 당시에도 그가 MC를 맡으면 장동건 정우성 등 TV에서 만나기 힘든 초특급 스타들로 초반 10회를 채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기대는 KBS에서 박중훈 쇼가 시작되자 곧장 현실이 됐다. PD나 작가들이 섭외조차 시도하지 못했던 장동건, 정우성, 김태희, 김혜수 등 초호화 게스트들이 박중훈의 인맥으로 무대에 오른 것. 그의 능력에 대한 찬탄이 뒤따랐지만 곧장 "10회 이후엔 어떻게 할 거냐?"란 의문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실패원인 2=목적 없는 토크쇼

①"아니 (천하의) 김태희씨도 남을 시샘해요?"

②"20대는 어떤 시기였나요?"

③"결혼도 안한 처녀에게는 치명적인 소문인데, 재벌2세와 사귀는 것도 아니라 비밀결혼을 했다는 루머가 있었죠. 해명을 해주세요."

위의 세 질문은 1월4일 배우 김태희 씨에게 건넨 박중훈 씨의 연속질문이다. 답변은 일반인이 예상할 수 있는 딱 그 수준에 그쳤다. 루머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여자 연예인의 고통을 호소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영화배우 장동건씨가 출연했을 때도 큰 차이가 없었다. "본인의 얼굴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나?" "이상적인 여성상은?"등의 신변잡기적 질문으로 시청자들에게 "친구랑 잡담하는 것 같다"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이름만 정통 토크쇼를 표방하고 거물급 게스트를 선정하는데 치중했을 뿐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선 치열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문화평론가 조희제씨는 "시사 토크쇼에 목적 없이 단순한 유명세로 게스트를 선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면서 "사실 '무례하지 않은 토크쇼'를 표방했을 때부터 실패가 예정된 건지 모른다"고 말한다.

△ 실패원인 3=시사주제를 압도한 신변잡기

이 프로그램에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적잖은 시사인물들이 등장했다. 3당 원내대표와 정몽준 의원, 그리고 천재어린이 송유근 군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시사프로그램이라는 무게감은 전달되지 못했다. 대화가 주로 신변잡기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19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제이 레노가 진행하는 NBC '투나잇 쇼'에 출연해 일상과 경제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독설가로 유명한 코미디언 제이 레노는 때론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로 오바마 대통령을 리드했다.

대화와 토론문화가 일상적인 미국에선 1인 토론프로그램의 권력이 막강하다. 2000년 대선 때 ABC '레터맨 쇼'에 출연한 조지 W 부시는 데이비드 레터맨에게 적잖이 시달렸는데 이후 레터맨이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선정한 도서가 미국 출판 시장을 좌지우지 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일화다.

문제는 이처럼 코미디부터 대중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횡단할만한 국내 방송인의 부재다.

KBS의 한 편성PD는 "우리나라엔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을 소화할만한 인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해도 각종 정치적 논란으로 장기간 그 자리를 지키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민감한 시사이슈로 채워진 토크쇼를 감내할만한 최고 책임자도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 1인 토크쇼 국내에서 다시 가능할까?

물론 이와 정 반대의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시사주제를 대표할만한 게스트 풀도 미국에 비해 형편없이 작다. 지난해 단박인터뷰로 주가를 높인 KBS 김영선 PD는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선 90% 이상의 사회 명사(名士)들은 TV카메라를 들이대면 무조건 피하고 본다"고 귀띔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거의 모든 국내 토크쇼는 한정된 인재풀을, 그것도 홍보를 위한 연예인 위주로 서로 돌려 막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가 시작되면 주요 배역진들이 3개 방송사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차례로 순례하는 식이다.

이 같은 관례에 반기를 든 것이 강호동의 화려한 입담을 앞세운 '무릎팍 도사'였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치게 출연자를 미화시키거나 작가의 개입이 많아 정통 토크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자니윤쇼'로 시작한 국내 정통 토크쇼는 '이종환쇼' '주병진쇼' '이주일쇼' '이문세쇼'등 수많은 '말의 달인'들이 거쳐 갔지만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특히 DJ 이종환, 이문세 씨는 라디오에서의 화려한 명성을 얻고 TV방송에 진출했으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디오 스타가 TV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청각에 의존하는 라디오와 시각에 주로 의존하는 TV의 전혀 다른 특성을 MC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인 토크쇼는 화려한 언변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 출연자와 진행자 간의 적절한 긴장관계가 필수적인데, 이를 보여줄 만한 모범 사례가 아직 우리 방송계에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 박중훈의 최근 히트작은 영화 '라디오 스타'였다. 한때 유명했던 가수가 지방 방송사의 DJ로 변신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설정의 영화였다. 그러나 그는 영화에서 보여준 자연스러운 모습을 토크쇼에서 재현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라디오 스타로 부활했지만 TV토크쇼의 MC로는 미흡했던 셈이다. 여기엔 스타 마케팅과 모호한 프로그램 컨셉트만 갖고 정통 시사토크쇼의 부활을 외친 KBS의 준비 소홀도 빼놓을 수 없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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