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낮춘 할리우드판 ‘장화, 홍련’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9일 개봉 ‘안나와 알렉스’

9일 개봉하는 ‘안나와 알렉스’(15세 이상 관람가)는 김지운 감독(45)의 2003년 화제작 ‘장화, 홍련’을 리메이크한 할리우드 영화다.

4일 오후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김 감독은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려 한 원작의 의도를 놓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공포영화는 대개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치에만 공을 들이잖아요. 그런 관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차별된 분위기를 살린 것 같습니다. 이야기 설정을 살짝 바꾸는 등 원작과 다르게 가려 한 강박이 좀 엿보이긴 했지만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소녀가 집으로 돌아온 뒤 계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정체 모를 귀신에게 시달린다는 기본적인 설정은 같다. 하지만 한국의 전남 보성 배추밭에서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보엔아일랜드로 무대를 옮기면서 배경과 캐릭터의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장화, 홍련’은 이야기뿐 아니라 시각적인 부분의 완성도로 주목받았던 영화다. 붉은색과 파란색 등 원색을 많이 쓴 화면이 세트 디자인과 어우러져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안나와 알렉스’ 세트에는 원작의 음습한 기운이 없다. 표정부터 심상찮은 사연을 숨기고 있을 것 같았던 원작의 주인공 문근영, 임수정에 비해 리메이크작의 에밀리 브라우닝(안나)과 아리엘 케벨(알렉스)은 평범한 10대 같다. 어린이 귀신 등 원작과 다르게 만들기 위해 새로 추가한 요소는 마지막 반전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조연 캐릭터도 아쉬운 부분. 계모 역은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편집장 비서 역할로 나왔던 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연기했다. 노출 많은 옷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과시하지만 공포스러운 카리스마가 원작의 염정아보다 약하다. ‘본 얼티메이텀’의 악당으로 나왔던 데이비드 스트래던은 원작의 김갑수와 외모가 많이 닮았지만 무게감이 부족하다.

하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와 놀라게 만드는 공포 장치는 ‘장화, 홍련’보다 풍성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들은 줄거리도 더 간결해졌다. 원작을 보고 머리가 복잡했던 관객이라면 복습용으로 삼을 만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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