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들이대는 남자 교사에게 줄 듯 말 듯, 알 듯 말 듯한 야릇한 매력의 교생 최홍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홍과 그리 다를 것 없는 배역을 보며 그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이걸 또 할 거라 생각했니?”》
‘우리 집에 왜 왔니’ 강혜정
비에 젖은 버선을 벗어 군인들의 얼굴을 닦아 주는 동막골 ‘미친년’ 여일(웰컴 투 동막골)부터 매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에이즈 환자 아리(도마뱀),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은 정신연령 일곱 살의 차상은(허브)까지…. 그는 매번 변신의 각도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그가 맡은 역은 스토커이자 노숙자인 이수강이란 여자. 실정법으로 따진다면 가택 침입에 스토킹 감금 폭행 살인미수요, 통틀어 전과 3범인 위험한 캐릭터다. 손톱 밑에 검은 때가 꼬질꼬질 낀 채 불쾌한 냄새까지 풍기는 수강은 길고양이를 연상시킨다. 목매 죽으려던 병희에게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병희를 살려준 대가로 “당분간 죽지 않을 때까지” 감금 작업에 들어간다. 끈으로 서로의 몸을 묶은 수강이 회칼로 통조림을 조곤조곤 뜯는 장면에서는 뻔뻔함과 영화 ‘미저리’의 주인공(캐시 베이츠) 같은 섬뜩함이 묘하게 뒤엉킨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각자의 사연이 드러나며 수강의 내면이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먹은 아이스크림 봉지까지 모으는 수강은 누가 봐도 스토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한 번 더 보고 싶을 뿐인 수강이기에 처절한 몸부림이 된다. 특히 불에 탈 뻔한 뒤 오랜만에 머리를 감은 채 병희를 응시하는 클로즈업 샷에서 그는 영화 ‘허브’ 이후 달라졌던 외모를 극복한 느낌이다.
수강과 여일의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나사가 반쯤 풀린’ 비정상 캐릭터다. 하지만 엇비슷해 보이는 인물에도 그는 난이도와 결을 달리했다. 2일 만난 그의 표현법을 빌리면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은 “인생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생각 자체가 없는 인물이라 ‘아 행복해’라는 생각만으로 연기했다”라면, 수강은 “모든 사회적 틀과 타협하지 않는 폭력적인 인물이라 이해하고 연기했다”는 것. “고교 때부터 희망 직업이 백수였으며 유치원 때부터 규칙 부적응자여서 대학도 자퇴했다”는 그가 수강과 포개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애의 목적’ 이후 별다른 흥행작이 없다 싶던 그의 변신은 계속될 예정이다.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 ‘킬미’에서는 7년 사귄 남자에게 차이며 킬러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진영 역을 맡은 것. 하지만 그 다음 작품인 전계수 감독의 ‘러브 픽션’에서는 전대미문의 여성 캐릭터가 나올지도 모른다. 신체의 특정 부위(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자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의 변신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스무살 광녀, 소년을 사랑하는데…
스포일러가 아니다. 황수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새드 엔딩을 처음부터 예고하는 영화다. 허름한 비닐하우스에서 객사(客死)당한 수강(강혜정)의 소지품에 대외기피증을 앓는 병희(박희순)의 우편물이 발견되며 영화는 수강과 병희의 사연을 거슬러 좇는다.
시골 외딴 집에 혼자 산다는 이유로 학교(고등학교)에서 ‘광녀’로 불리는 수강은 스무 살 때 열세 살 남학생 박지민(승리)과 관계를 맺는다. 그 이후 ‘미친년 남편’으로 낙인찍혀 서울로 전학 간 지민은 수강이 자신을 따라오자 스토커로 고발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전과 3범의 노숙자로 전락한 수강은 지민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겠다는 일념으로 지민의 집 건너편에 살고 있는 병희 집으로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한다.
해피 엔딩이 아니어도, 주인공의 죽음이 예고되어 있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영화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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