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예능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이 18일 방영분을 끝으로 폐지된다. '가족오락관'은 1984년 4월 3일 첫 방송을 한 이래 26년 간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아온 흔치 않은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지만 '가족오락관'의 '터줏대감' 허참 씨(60)가 느끼는 아쉬움은 더 클 터. 30대 중반부터 60대가 된 지금까지 그는 메인 MC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덕분에 오락프로그램 '국내 최장수 MC' 타이틀도 안았다. 그 동안 오유경 정소녀 장서희 윤지영 김자영 전혜진 손미나 박주아 김보민 이선영 씨 등이 여자 MC 자리를 거쳐 갔다. 허참이 1회부터 최종회까지 '가족오락관' 진행석을 지키지 못한 때는 198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1주일뿐이다. 그 때는 여성 MC 정소녀가 단독 진행을 맡았다.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몇 대 몇~!"을 외치던 허참 씨를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만났다.
지난 2일 마지막 녹화 현장에서 허참은 "벚꽃이 필 때 시작해 벚꽃이 필 때 다시 시작하게 됐다"며 "그동안 가족오락관과 함께 했던 시간을 간직하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당시 스튜디오는 울음바다가 됐지만 그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울긴, 은퇴식이라면 모를까 지금 다른 방송도 하고 있는데 무슨 난리 났다경고. 방청객들이 '어머나, 어떡해' 하며 위로해 주고, '화이팅'을 외칠 때 조금 울컥하긴 했어요. 빨리 눈을 비볐죠. 한번 눈물이 쏟아지면 걷잡을 수가 없어서요. 우리 출연자들도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많아 울고, 후배 조형기는 '형 축하 한다'고 꽃다발을 보내줬어요. 나는 '폐지'라는 말은 싫어요. 그것 보다는 마감이나 종방으로 해주면 어때요. 폐지라니 어감이 섬뜩하잖아."
그는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그가 몸 담았던 TBC가 언론통폐합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을 때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고 했다. 대부분 가수들이 울음을 터뜨려 온통 눈물바다가 됐지만, 그는 임성훈 씨와 함께 대표로 KBS 에서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를 불러야 했기 때문에 울 수가 없었다고.
다만 그는 "'가족오락관'처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없어진 것은 아깝다"고 했다.
"한 달 전 새로운 PD가 오면서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전체 내용과 형식을 전면 개편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나는 새로운 포맷을 만든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오는 얘기가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가 불투명하다는 거야. 감이 딱 오더라고. 아쉽지만 20 여년 동고동락했던 오경석 작가와 합의해 그만두기로 했어요. 구태여 더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허참이 그만두더라도 가족오락관 같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왔으면 하는데…."
'가족오락관'은 26년 동안 초대 연출가 조의진 KBS 전 본부장 외에 PD만 30명이 거쳐 갔고, 초대 여성MC 오유경씨 외에 여자 진행자만 21명이 바뀌었다. 출연자는 1만명이 넘는 데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주부 방청객만 11만 명이 넘는다. '고요속의 외침', '스피드 퀴즈', '도전 릴레이 노래방' 등 게임도 454개를 만들었다.
"여자 MC가 박장대소 하다가 속눈썹이 떨어져 NG를 내고 속눈썹을 찾은 일도 있었고, 방청객 아주머님이 웃다가 세트 뒤로 넘어간 적도 있었어요. 엄마 손을 잡고 왔던 한 여자 아이는 얼마 전 엄마가 돼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방청객으로 왔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엄마는 할머니인데 아저씨는 왜 안 늙어요?'였어요. 내가 30대 중반에 시작했는데 지금 예순 하나니까. 가족오락관은 내게 희노애락을 함께 한 아내와 같은 존재예요."
'가족오락관'은 사실 초창기엔 연예인이 아닌 박사, 교수들을 불러놓고 재치를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연예인을 섭외하기 시작했고 시청률에도 가속도가 붙어 한창 때에는 30%가 넘기도 했다. 주부 방청객을 불러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그는 "방청객 아주머님들이 가족오락관의 또 다른 주인"이라며 "수도권에서 지방까지 11만 명의 주부들이 다녀갔어요. 이 분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하루 가사일, 농사일 다 접어두고 김밥 도시락 싸고 떡도 해가지고 와서 즐겁게 놀다 가는 거야. 그런 분들이 정말 오염 안 된 방청객들, 시청자들 아니겠냐"고 회고했다.
그는 13일부터 SBS에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단독 진행하고 있다. 베테랑 MC지만 시사 프로그램 진행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갑자기 근엄하게 진행 할 수는 없는 것이고 타이틀이 '즐거운 저녁길'이니까 즐겁게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 신세대 가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파트너는 스물 두 살 가수 이현지. 막내 딸 뻘이지만 '허참 오빠'라고 부른다고 한다.
"철들면 이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데 철들려면 멀었지. 아직 철 안 들었어. 내가 철들면 쑥스러워져서 방송을 못해요."
'가족 오락관'은 멈췄지만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 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