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

  • 입력 2009년 4월 24일 1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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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자연 전 매니저 유장호 기자회견 당시 모습.
故장자연 전 매니저 유장호 기자회견 당시 모습.
《24일 탤런트 장자연 씨 자살사건에 대한 경찰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됐다. 9명이 입건됐지만 무성하게 제기된 의혹들이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채 검찰의 손에 넘겨지게 됐다. 신동아 5월호는 장자연 씨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 성(性)비리 실태를 파헤치는 기사를 실었다. 신동아의 '장자연 사건으로 엿본 연예계 성비리 실태'를 요약, 소개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탤런트 장자연(29)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연예계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문화계 내부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메이저리그에선 좀처럼 있을 수 없는 다소 특이한 사건이라는 시선.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장자연씨의 소속사나 전 매니저 유장호씨의 경우 사단법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원도 아니며 매니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업계 종사자의 사기를 저하시켰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매니저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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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데리고 나오라"

하지만 장자연 사건이 연예계에서 사라지지 않는 병폐의 소산이고 빙산의 일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신인 연기자나 가수의 술시중과 성 접대는 연예계의 공공연한 사실이며, 이번 사건으로 일부 속살이 드러났을 뿐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기자가 만난 연예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자신의 피해 사례와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이 중에는 연예계의 추악함에 환멸을 느껴 전직한 사람도 여럿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되는 한 이런 병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역 매니저 K의 증언을 들어보자. 올해로 8년차 매니저인 그는 2007년 한 방송사 드라마국 PD에게 당했던 황당한 사연을 폭로했다. 당시 미니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던 A프로듀서는 평소 힘없는 매니저와 신인 연기자를 무시하는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상당수 기획사 매니저들은 자사 소속 신인 연기자를 미니시리즈에 출연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A를 찾아가 허리를 숙였다.

황당한 건 A가 신인들의 오디션 장소로 여의도의 한 유흥주점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어느날 밤 A가 매니저 K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신인 연기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부랴부랴 신인 연기자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 손질부터 시킨 뒤 함께 여의도 유흥업소를 찾았다. 그곳은 방마다 화장실이 딸린 룸살롱이었다. A는 혼자 있었다. 신인 연기자가 자기소개를 한 뒤 세 사람은 폭탄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적당히 긴장이 풀어지자 매니저 K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술에 취한 A가 K의 휴대전화에 '먼저 일어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K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결국 자정을 넘긴 뒤 신인을 데리고 나와 A와 헤어졌다. 며칠 후 조감독을 통해 결과를 알아봤지만 캐스팅은 불발이었다. A는 이 미니시리즈를 끝으로 방송사에서 나와 거액을 받고 외주 드라마 제작사로 스카우트돼 현재 프리랜서 PD로 활동하고 있다.

●"네 몸이 보고 싶다"

▲故 장자연 씨 생전 모습
겸손하고 양심적으로 일하는 PD도 많지만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PD도 적지 않다는 게 매니저와 캐스팅 디렉터들의 증언이다. 신인은 캐스팅을 통과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한번 눈 밖에 나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중간에 하차하거나 편집 과정에 가위질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PD의 부당한 접대 요구에 나약하고 힘없는 연기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수직구조인 것이다.

한 영화 제작자는 "나름대로 자체 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영화계에서 여성 연기자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감독이 있다"며 이 방면에서 악명 높은 Q감독의 사례를 설명했다.

Q감독은 자신이 연출하는 거의 모든 영화의 여주인공과 '섬씽'을 갖는 걸로 유명하다. 국제무대에 자주 진출한 유명 감독이어서 많은 여배우가 그의 작품에 캐스팅되길 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 여배우에 대한 집착과 애정 공세가 거세 웬만한 여배우가 아니고는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영화에 톱스타보다 늘 신인 연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 매니저는 그가 관리하던 한 여배우에게 Q감독이 노골적으로 "네 몸이 보고 싶다"며 잠자리를 요구했고, 이에 놀란 여배우가 혼비백산해 도망친 일도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한 전직 매니저는 "영화 제작자의 여배우에 대한 횡포도 만만치 않다"고 고발했다. 2007년 지방에서 올 로케로 촬영한 모 영화 촬영지 숙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40대 노총각이던 영화사 대표 C는 자신이 제작하는 모든 작품의 여주인공과 돌아가면서 사귀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한 여주인공이 이를 강하게 거부해 자주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C는 밤마다 여배우를 자기가 묵는 방으로 불러 연기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으며 생트집을 잡았다.

사극 연출가로 유명한 한 중견 PD도 연기 지도를 해준다는 핑계로 여배우의 몸을 더듬는 등 온갖 추태를 부려 여배우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특히 녹화가 없는 날 신인을 사람들이 없는 대본연습실로 불러내 온갖 민망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매니저는 "여자 몸을 잘 더듬는다고 해서 '피아노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물뽕'의 위력

한 가수 매니저 L의 목격담도 충격적이다.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한 모 중견 작곡가는 유명 톱가수 이름을 들먹이며 "누구누구도 신인 때는 다 이렇게 컸다. 아무개는 얼굴도 모르는 방송국 간부들과 매일 밤 동침해야 했다"며 2차를 강요해 악명이 자자하다. 매니저도 이를 말릴 마땅한 방법이 없어 신인과 함께 비애를 느낀다고 한다.

술 접대 자리에서 신인의 술잔에 환각 성분의 약을 몰래 타서 먹이는 비정한 사람들까지 있다고 한다. 보통 술에 히로뽕을 타는데 이를 은어로 '물뽕'이라 부른다. 이 물뽕을 마시면 상대방의 작은 관심이나 호의에 몇십 배 감동하게 돼 잠자리 제안도 별 거부감 없이 순순히 따른다고 한다. 한 매니저는 "물뽕은 웬만해선 소변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가라오케나 클럽에서 흔히 사용된다. 마시면 기분이 업(up) 되고 성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곧잘 악용된다"고 말했다.

연기자 못지않게 초기 투자자금이 많이 드는 신인 가수에게는 스폰서 제안이 흔한 일이다. 새 앨범을 준비 중인 가수 아이비도 자신의 미니홈피에 "만나주기만 하면 3억원을 주겠다는 스폰서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해 눈길을 끌었다. 말로만 나돌던 스폰서의 실체가 확인된 사례다.

2006년 업계 5위 안에 드는 유명 연예기획사 실장으로 근무했던 J는 매니저 출신 브로커다. 신인 탤런트나 연기자 지망생을 '좋은 오빠'라고 불리는 남자들과 연결해주는 일이 그의 신종 밥벌이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스폰서와 연예인의 관계는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 법칙을 따른다. 여자 연예인을 향한 돈 많은 남자들의 수요가 끊이지 않고, 스폰서십을 원하는 연예인의 공급이 공존하기 때문에 아무리 언론에서 비판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비즈니스'라는 설명이다.

●"좋은 스폰서 소개해달라"

J처럼 전직 매니저가 브로커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연예인과 스폰서를 연결해주는 은밀한 통로는 따로 있다. 바로 '마담뚜'로 불리는 강남의 음식점과 유흥업소 여사장들이 그들이다. 씨네씨티 극장이 있는 학동사거리를 중심으로 이런 곳이 열 곳도 넘는다고 한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은 한 고급 음식점이다. 이곳은 평범한 음식점처럼 보이지만 연예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사교장이다. 대기업 오너와 재벌가 인사, 언론사 사주와 광고대행사 대표 등이 단골이다. 그래서 이곳의 40대 여사장은 연예계뿐 아니라 정계 재계 법조계 등 발이 안 닿는 곳이 없어 '왕언니 해결사'로 통한다. 여사장의 연륜이 있다 보니 이곳에선 주로 30~40대 연예인이나 이혼한 '돌싱' 연예인과 재벌가, 전문직 종사자들과의 만남이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음식점이 주로 30대 이상 연예인 출입이 잦은 곳이라면 이 근방에 있는 실내형 포장마차에는 주로 10~20대 여자 연예인들이 드나든다. 이런 곳은 여사장의 나이도 20대나 30대 초반으로 낮은 것이 특징이며, 전직 연예인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한때 가수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은퇴해 술집 사장이 된 S도 그중 한 명이다. S는 현역으로 활동할 때 닦아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군의 손님을 가게로 불러 모아 금세 청담동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S의 한 측근은 "지난달 깜찍한 외모의 여자 연예인과 모 면세점을 계열사로 둔 대기업 자제를 연결해주고 남자에게 아우디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곳에는 연예인뿐 아니라 아나운서와 레이싱 모델, 리포터들까지 찾아와 남자들의 '간택'을 기다린다고 한다.

●연하 남자친구를 스타로 만들어

최근 눈에 띄는 특징은 '누나 스폰서'들의 대거 출현이다. 예전에도 남자 신인 연예인과 경제력이 있는 여자 스폰서가 공공연하게 존재했지만 요즘엔 여자 스폰서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자금난을 겪는 기획사가 투자를 받는 형식으로 여자 스폰서를 끌어들이고 소속 신인 남자 연예인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지금은 톱스타로 발돋움한 H와 K 등이 모두 신인 시절 '누나'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성장한 사례다.

한 매니저는 "당시 H는 하도 많은 누나와의 술자리에 불려나가 '내가 호스트바 선수도 아니고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고 불평했고, 결국 드라마 한 편이 히트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주고 소속사와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스폰서에 대해 "일부 재벌가 딸이나 강남에서 고급 음식점이나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는 젊은 여사장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으면 십중팔구 남자 연예인과 얽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직접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어 연하 남자친구인 신인 연기자를 스타로 만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선남선녀가 모여 있고 성공에 대한 욕망과 성적인 탐욕, 무한경쟁과 돈이 이종교배하는 연예계에서 자정 노력이 계속되지 않는 한 성로비와 스폰서를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많은 연예산업 종사자의 공통된 얘기다.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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