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안 긁는 것도 훌륭한 내조”

  • 입력 2009년 5월 4일 02시 55분


결혼 6년차인 박지은 작가는 “부부간에도 외롭고 힘들면 잠시 다른 감정을 품을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박지은 작가
결혼 6년차인 박지은 작가는 “부부간에도 외롭고 힘들면 잠시 다른 감정을 품을 수 있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박지은 작가
‘내조의 여왕’의 온달수(왼쪽) 천지애 부부. 사진 제공 MBC
‘내조의 여왕’의 온달수(왼쪽) 천지애 부부. 사진 제공 MBC
MBC 인기드라마 ‘내조의 여왕’ 박지은 작가 인터뷰

“순진하고 솔직한 온달수(오지호)가 비열하게 변하지 않고 본래의 마음을 유지하며 직장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식품회사 직원들의 생활과 부인들의 내조를 그린 MBC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은 조직 내 위계질서, 기혼 남녀의 연애감정을 코믹하게 풀어내 인기를 끌고 있다. 3월 16일 첫 회 시청률은 8%(TNS미디어코리아)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28일 14회는 27.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극본을 쓴 박지은 작가(33)는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통해 경쟁사회의 고달픔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조의 여왕’은 우선 조직 내 위계질서와 ‘라인’(파벌) 간 암투를 설득력 있게 묘사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극중 김홍식 이사(김창완), 한준혁 부장(최철호)은 ‘라인’ 밖에 있는 신입사원 온달수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기고 뇌물수수 사건을 조작한다.

박 작가는 “프리랜서로서 밖에서 보면 한때는 ‘라인’을 열심히 타던 사람들이 잘나가는 것 같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길게 보면 달수처럼 순수한 사람이 현실에서 꼭 실패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조의 여왕’에서 김홍식 이사는 유일한 악인이다. 김 이사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뒤로 극중 사장 허태준(윤상현)을 몰아내려는 각종 음모를 꾸민다.

박 작가는 “권력을 쥔 사람은 완벽하다기 보단 틈을 보이지만 뒤로 칼을 숨긴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특히 선한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은 사장 부부와 온달수 부부의 엇갈린 연애감정이다. 사장은 온달수 부인인 천지애(김남주)를,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은 온달수를 좋아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박 작가는 “드라마에 묘사한 정도는 살면서 부부가 한 번씩 겪을 수 있는 유혹”이라고 말했다. 사장 허태준이 말단 직원의 부인인 천지애에게 갖는 감정에 대해서는 “정략결혼한 뒤 나쁜 남편으로 살면서 생긴 ‘헛헛함’ 때문에 천지애에게서 볼 수 있는 따뜻하고 끈끈한 가족의 모습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라며 “마음이 흔들리고 외로우면 부부라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지만 이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근 “시청자 요구로 천지애-온달수가 이혼한다는 결말이 바뀌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박 작가는 “결말은 미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 묻은 휴지처럼 바닥에 딱 붙어라” 등 코믹하고 촌철살인 같은 대사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13회에서 온달수가 사장 부인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털어놓자 천지애가 “솔직히 말하란다고 다 말하냐. 넌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다고 끝까지 잡아뗐어야지. 너만 아니라고 했으면 세상이 다 널 미친놈이라고 해도 널 믿을 수 있었단 말이야”라고 말한 것을 꼽았다.

박 작가는 “코믹한 대사는 아니지만 ‘바람을 피워도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말처럼 부부 관계의 허실을 짚어낸 것 같아 좋았다”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초등학교 동창생과 2004년 결혼했다. 그의 내조 방법은 어떨까.

“처음 드라마 제목을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내조가 부족한 내조의 무수리가 내조의 여왕을 쓴다’고 말하더군요. 요즘 ‘최고의 내조는 맞벌이’라고들 하던데…. 남편도 저도 일이 바쁘니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고 바가지 안 긁는 것이 제 내조법이에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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