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자가 너스레를 떨며 농담처럼 말하며 환하게 웃었지만 정말 그랬을지 모른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가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면 원빈과 함께 주연을 맡은 김혜자에게 여우주연상의 영예가 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16일 밤(이하 한국시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언론 시사 그리고 17일 새벽 공식 상영 이후 해외 언론이 모두 극찬을 한 후였다.
김혜자는 한국 언론 취재진이 이 같은 ‘가정’과 ‘상상’을 전하자 활짝 웃으며 “정말? 누가 그랬어?”라며 “그런 일은 안벌어질까?”라고 말했다.
취재진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원빈, 진구 등 후배 연기자들도 모두 웃었다.
김혜자의 이런 여유로움은 ‘마더’ 속 27살이 어수룩한 아들(원빈)을 구하려 처절한 싸움에 나서는 ‘엄마’의 집요하고도 광기어린 모습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이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김혜자는 영화 속에서 드러난 광기의 폭발하는 연기에 대해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그것을 잘 포착해낸 것이다”며 겸손해했다.
다음은 17일 밤 김혜자와 나눈 일문일답.
- 칸 국제영화제에 처음 왔다. 레드카펫도 밟았다. 소감이 어떤가.
“이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레드카펫이 큰 의미는 아니다.
드레스를 입었으니까 잘 올라가야지 생각했을 뿐이다. 원빈과 손잡고 올라갔다.”
- 그동안 영화 출연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1982년 영화 ‘만추’와 1999년작 ‘마요네즈’에 이어 2009년 ‘마더’에 출연한 게 영화 필모그래피의 전부다.)
“영화를 함께 하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캐릭터가)모두 TV드라마에서 내가 연기한 것과 유사한 것들이었다. 나 스스로 흥미가 없었다. 지루하지 않겠느냐. 누가 보겠어. 한 마디로 하고 싶은 대본이 없었던 거지. 내가 큰 욕심이 없나봐. 난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충실해야지 생각한다. 내 앞에 닥친 일 말이다.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경쟁부문 초청작이었다면 여우주연상감이라고 기자들끼리 말하기도 했다.
“정말? 누가? 그런 일은 안벌어질까?(웃음) 어떤 기자가 감독이 밉다고 그러더라. 어떻게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할 수 있느냐면서.”(웃음)
- 프롤로그와 마지막 장면에 모두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나뭇잎 같은 존재 혹은 바람 같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스태프들이 온통 지켜보는데 처음엔 무안해서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당신들도 춰달라’고 얘기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감독도, 스태프도 모두 춤을 췄다. 춤을 추다보니 그 때부터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
- 극중 사건이 실제 상황이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마치 그리스 비극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숨은 그림이 많다는 생각도 했다. 내포된 의미가 많지 않냐. 보는 이들의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 앞으로 영화 출연 계획이 있나.
“내가 영화 하고 싶다고 안했는데.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고 했는데.”(웃음)
- 많은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는 한국적 어머니의 표상처럼 여겨진다. 혹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우리 남편이 (내가)혼자 살면 좋았을 사람이 결혼해서 부대끼며 산다고 하더라. 헤어지면서 나보고 힘들어서 어쩌나 했다.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 남편의 보호 아래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누가 날 참견하는 건 싫어했다. 나도 날 모르는 면이 있다.”
- 김수현 작가의 ‘엄마는 뿔났다’에서 엄마가 가출하는 장면에 많은 주부 시청자들이 통쾌해했다.
“주부가 집을 나간다는 정서는 (우리에게는)아직 이르다. 극중 캐릭터는 앞선 사고로 반란을 꿈꾼 셈이다. 많은 주부들이 극중 내 모습을 보고 들썩였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 생각하는 거지. 가족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에게나 안식이 필요한 거지, 할 것 다해가면서 안식을 요구하는 건 맞지 않다.”
- 늘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생긴대로 사는 거다. 난 한 작품을 마치고 다른 작품에 곧바로 출연할 만큼 능력이 안된다. 언제까지 ‘마더’가 날 잡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구들과 내 연기를 모니터하지 않았다. 누가 옆에서 ‘킥’하고 웃는 것도 신경쓰일 정도니까. 나 혼자 봐야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마음이 좋아진 건지 함께 보기도 한다. 3~4년 전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마더’ 기술 시사 때도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스태프들이)어떤 표정을 지을지 겁이 나 가지 않았다. 지켜보니 원빈도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더 모자지간 같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 어쩜 그렇게 똑갈을까.”(웃음)
칸(프랑스)|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