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마더’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은 봉준호 감독은 여전히 바빴다.
17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마더’의 공식 상영을 마치고 쏟아지는 외신의 호평 속에 봉 감독은 해외 언론과 쉴 틈 없이 인터뷰를 가졌다.
27살의 아들(원빈). 하지만 여전히 어수룩하며 여전히 어린 아이와도 같은 아들은 언제나 엄마(김혜자)에게 걱정거리이다.
그런 아들이 살인사건에 휘말려 살인의 누명을 쓰고 엄마는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세상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벌인다.
스스로 나서 사건을 해결해가며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그녀는 점점 광기로 자신을 몰아치고 봉준호 감독은 엄마의 한없이 처절하고 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외신들은 모두 이 같은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시하며 극찬했다.
이날 오후 한국 취재진과 만난 그는 28일 개봉을 앞둔 기대감 속에 자신에게 전해진 호평에 상기됐지만 담담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 외신들이 당신을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에 비유했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장르적 껍데기에 범죄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여성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깊게 다뤄왔는데 나로선 영광이다. 외신들은 한국보다 범죄 장르에 더 민감한 것 같다.”
- ‘살인의 추억’, ‘괴물’, ‘도쿄!’ 등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됐다.
“내 단독 작품으로 칸 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에 오기는 처음이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영화를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게 더 중요하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다른 리뷰 기사들도 빨리 보고 싶다.”
- 김혜자를 어떤 과정으로 캐스팅했나.
“2004년 초 ‘살인의 추억’ 개봉한 시점이면서 ‘괴물’을 준비할 때였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녀에게 배우로서 우리가 모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독특한 히스테리 같은 것 말이다. 특히 드라마 ‘여’에서 본 독특한 순간이 있다. 또 TV토크쇼에서 말씀하실 때에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4차원 같은 표현도 쓰시더라.(웃음)
그런 면에 흥미를 느꼈다. 잘 알려진 배우를 새롭게 묘사하고 표현해내는 게 감독의 보람이기도 하다. 혜자 선생님(봉 감독은 김혜자를 그렇게 불렀다)이 그리는 어둠과 광기어린 스토리는 어떤 것일까 떠올려보기도 했다.’”
- 김혜자를 처음 본 건 언제인가. 어릴 적 이웃집에 살았다는 말도 있는데.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대학 연합 영화 동아리에서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동아리 사무실이 서울 홍대 앞에 있었는데 혜자 선생님이 그 맞은편 집에 살고 계셨다. 자주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우연히 1-2번 정도 마주치기도 했다.”
- 일로서 그녀를 만난 건 언제인가.
“2003년 말에서 2004년 초 사이일 것이다. ‘살인의 추억’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면서 함께 하고 싶은 배우로 혜자 선생님을 꼽았었다. 그런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시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내가 백지연 앵커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녀가 혜자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한 번 연락을 드리면 반가울 것’이라고 말해 자택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드렸다. 그때 처음으로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2-3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중엔 좀 지치기도 하셨나보더라. 가끔 전화하셔서 ‘우리 진짜 영화 찍는 거냐’고 묻기도 하셨다. 오래 기다려줘 고마울 뿐이다.”
- ‘살인의 추억’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다. ‘살인의 추억’을 추억하는 느낌이랄까. 시골이 무대인 것도 그렇고 경찰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 내 영화를 의식하기도 한 것 같다. 즐거운 자의식이었다. 같음과 다름에 대한 것도 비교할 만하다. ‘살인의 추억’이 직접적 폭력이었다면 ‘마더’는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폭력이 있기도 하다.”
- 극중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묘하다.
“엄마에게 있어 아들은 남자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좁은 집에서 ‘남녀’가 함께 산다는 점은 분명 묘한 긴장감을 준다. 서양 관객들은 성적 긴장감을 더욱 느낄 것이다. 모자지간이면서 성적 긴장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야 더욱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이 영화를 성적 관점에서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섹스할 수 있는 사람과 섹스로부터 차단된 사람으로 인물들의 관계를 구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 모자지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일까.
“사물이나 감정, 상태 등의 이면을 보는 걸 좋아한다. 모자지간은 숭고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선을 넘거나 어두운 면을 한꺼풀 벗겨낸다면 어두운 광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예쁜 숲의 바위나 돌을 들추면 축축한 느낌과 함께 온갖 벌레가 나오는 것 같은.”
- 프롤로그와 마지막 장면에서 극중 엄마가 광기에 사로잡힌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춤을 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춤을 추는데.
“처음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그 장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렸을 땐 그런 모습들이 신기하면서도 경악스럽고 때론 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오대산엘 갔는데 그 아름다운 산에 오를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내내 버스 안에서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그야말로 경악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광경을 보며 각자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슬퍼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선 강력한 역광 속에 실루엣으로 춤추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누가 누구인지 구분되지 않고, 다른 여인들도 엄마와 한 데 뒤엉킨 느낌을 주려 했다. 그건 슬픈 몸부림이기도 하다.
프롤로그 장면에선 약간 비현실적인 공간(황량해보이는 갈대밭)에서 춤을 추는 게 파격적 표현일 거라 생각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이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데 살짝 광기에 대한 예고인 셈이다.”
- ‘괴물’의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잊으려 최대한 노력한다. 그 기록은 빨리 깨졌으면 좋겠다. 부담스런 기록이다.”
- 제목을 ‘마더’로 한 배경은.
“폼잡으려 한 건 절대 아니다.
‘엄마’라는 제목이 사실 원초적인데 이미 2004년 동명의 작품이 있었다. 불가피했다.”
- 차기작 ‘설국열차’는 어떤 영화인가.
“기후 재앙을 맞아 영하 60~70도의 날씨로 변한 지구에서 살아남아 무한궤도를 도는 열차에 오른 생존자들의 격한 갈등과 투쟁의 이야기다. 파워풀한 오락영화가 될 것이다.”
칸(프랑스)|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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