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코(영화 ‘링’에 나오는 귀신) 같이 머리 풀어헤친 처녀귀신, 요즘 누가 무서워하나요. 한국 관객의 공포 취향도 변하고 있습니다. 하드고어처럼 잔인하진 않더라도 사실적인 공포물이랄까…. 그래도 한(恨) 품은 귀신은 한국에서 질기게 살아남네요.”
공포영화에서 특수분장을 담당하고 있는 이창만 씨(40)의 사무실은 경기 파주시 광탄면에 있다. 8일 오전에 찾아간 사무실은 초입부터 왠지 음산했다. 2층짜리 건물 옆 오두막에는 발목이 없는 남자(인형)가 앉아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긴 생머리를 한 여자 인형이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있었다. 사무실에서 50m 정도 더 가면 서울시립묘지가 있다.
이 씨가 대표로 있는 특수분장 전문업체 LCM은 2000년에 설립됐다. 그의 첫 작품은 영화 ‘2009로스트메모리즈’(2001년)에 나온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그 후로 ‘므이’ ‘GP506’ ‘여우계단’ 등 공포영화에서 특수분장을 맡았다. 현재 작업 중인 영화 ‘요가학원’은 8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체 모형은 ‘더미’라고 부른다. 제작기간은 보통 한 달이며 개당 제작비도 대략 1000만 원. 배우 얼굴별로 다른 모형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대량 생산할 수 없다. 오래 두면 변질돼 재활용이 불가능한 더미는 잘게 오려 폐기처분된다. 이날도 직원 3명이 실리콘으로 만든 더미들을 하나씩 맡아 분장에 한창이었다.
“(시체 모형을 가리키며) 우리가 취급하는 게 죄다 이렇잖아요.(웃음) 모형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땐 보안에 특히 신경 써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당해요. 예전 치마 입은 여자 시체 모형을 그냥 차에 실었다가 두 번씩이나 신고를 당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이 씨가 아쉬운 점은 따로 있었다. 특수분장이라고 하면 귀신분장만 떠올리는 편견이다. “예전 ‘가발’이라는 영화에서 배우 채민서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하는 분장을 한 적이 있었어요. 관객들은 나중에 다른 배우인 줄 알았대요. 과장된 표현을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게 잘하는 게 아니라, 분장한 사실조차 모르게 하는 게 완벽한 분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할리우드 특수 분장에 비하면 우리 기술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