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범수는 7∼8년 전부터 첫 번째 공식 시사회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영화를 보지 않는다. “감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범수는 지금 살짝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셔츠의 단추 2개는 더 풀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근황을 말하는 이범수의 얼굴에서는 한껏 여유가 묻어난다. 쭉 뻗은 콧날은 보기 좋은 몸매와 어우러져 남성의 매력을 뿜어낸다.
실제로 이범수는 “근심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일하고 파김치가 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자신하는 그는 “영화 촬영현장은 때에 따라 열악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두가 피곤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강행군하고 있는 날 보면 행복하다”고 덧붙인다.
‘최선을 다한 자’의 여유란 그런 것인가보다. 그 스스로는 “결과와는 다른 차원이겠지만 스스로 어른스레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말하지만 짐짓 결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서야 그런 여유는 있을 수 없으리라.
이범수가 또 한 번 “강행군하고 최선을 다한” 작품은 7월2일 개봉하는 영화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제작 RG엔터웍스).
극중 부상으로 88서울올림픽에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역도 선수인 그는 초라한 일상을 살다 시골 여중생들의 역도 코치가 된다.
여중생들의 순수한 열정은 그의 잠자던 열망을 일깨우고 이들은 하나가 되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 여중생 ‘역사’를 연기한 배우들이 조안을 빼고는 신인급이다.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에 관해 소통해야 했다.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보며 자극받았다. 그런 에너지를 나 역시 잃지 않는다면 파이팅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들과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
“펑펑 우는 감정신이었다. 어두운 복도 한 켠에서 모두들 웅크리고 있었는데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다. 1∼2시간이 지난 뒤 촬영을 하는데 실제로 펑펑 울더라. 촬영이 계속됐고 감정을 잡으려 사력을 다하는데…. 촬영 3시간 전부터 울려고 했던 거다. 그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의 성장을 기대해보고 싶다.”
- 몸매가 균형이 잡힌 듯하다.
“요즘에도 매일 2시간 30분씩 운동을 한다. 모두 미관상 필요해서다.”(웃음)
- 미관상?
“배우로서 이미지 말이다. 배우는 결국 외모에서 풍겨나는 뭔가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대중은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그걸 내 스스로 풀고 싶지 않다.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배우니까.”
- 주변에선 남성적 매력이 있다고 말들 하던데, 다가오는 여성은 없나.
“혼자 지내는 게 좋지만 이게 고착화하면 안되는데….(웃음) 아무래도 접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좁다 보니. 후배들에게 ‘소개팅도 안 시켜주냐’고 타박하기도 한다. 사실 결혼하면 아이들도 많이 낳고 싶다. 무조건 3∼4명이다. 다복한 게 좋지 않은가. 요즘엔 운동하고 영화보고 사색도 한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랄까. 몽상가 기질이 좀 있는 것도 같다.”
- 생각이 많기 때문인가.
“자기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게 세상이다. 그런데 남의 집 귀한 딸을 보살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건 이미 힘든 일이다. 아이를 낳아 올바르게 자라게 하는 것도 그렇고. 며칠 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낭만과 현실 사이랄까. 그런 각오를 해야 오차 범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 그럼 요즘 관심은 무엇에 두나.
“여행 한 번 가고 싶은데 안된다. 그것도 사색이니까.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최고다.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주변이 좀 안정된 것도 같고.”
이범수는 늘 “이제야 출발점에 서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게 이제 열매를 맺는 것이며 본선에 온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출발점과 본선 그리고 열매의 사이에 선 그는 그 만큼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언제나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된 듯했다.
그래서 “더 고삐를 조이게 된다”며 “내 몸에도 투자하게 되고 일에도 더 매진하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그에게는 언제나 “지금”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