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12년차. 하지만 가수 박정현은 여전히 신비롭다.
1998년 1집 ‘피스’를 시작으로 최근 발표한 7집 ‘텐 웨이즈 투 세이 아이 러브 유’까지 10여장의 음반을 내면서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려진 이야기가 많지 않다.
라이브의 여왕, 미국 명문대 재학생, 한국 생활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말이 서툴기만 한 재미동포…, 박정현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의 전부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휴학중인 박정현은 7집 리패키지 앨범 ‘눈물이 주룩주룩’ 활동을 마친 후 7월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칠 계획이다. 이번에는 당분간 한국에 다시 오지 않을 예정이라, 어쩌면 그녀는 다시 신비함 속으로 침잠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현을 어느 볕 좋은 오후, 서울 남산 소월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편안한 청바지 차림의 박정현은 ‘인간 박정현’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외로웠고 눈물 많았던 데뷔시절, 가슴 아팠던 첫사랑도 이야기까지 들려줬다. 그녀는 7월1일부터 5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오디올로지’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너무 외로웠던 첫 한국생활, 너무 슬펐던 첫사랑
미국 LA에서 태어난 박정현은 20살이던 1996년 한국에 왔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는 사실도 외로웠지만, 무엇보다 막 이뤄지려는 첫사랑을 미국에 두고 왔기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당시 왕래에 보름이나 걸리던 국제우편, PC통신으로 어렵게 보내던 이메일, 아주 가끔의 국제전화로 사랑을 키우려했지만, 결국 ‘애절함’은 8개월 만에 배신감으로 변했다. 그 첫사랑이 자신의 절친과 어느새 인가 사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생활 적응 못하고, 연예계의 좋지 않은 소문도 많이 접해 힘들었는데, 첫사랑에게 배신감까지 느끼면서 너무너무 힘들었죠. 매일 ‘여기서 탈출할 수 없을까’ 생각했죠. 첫 앨범 나오기까지 1년 반이 제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도 겉으론 강한 척 웃었죠.”
첫사랑도 많이 울게 했지만, 첫 남자 친구도 박정현을 아이처럼 엉엉 울게 했다. 20대 후반에 교제했던 남자 친구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받고 아이처럼 펑펑 울어봤다고 했다. “눈물도 괜찮았어요. 울고 나니 오히려 시원해지더군요. 덕분에 눈물이 많아졌죠. 이젠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와요.” 그래도 박정현은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도 ‘좋은 사람’이면 조건 따지지 않고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제는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져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좀 망설여진다고 했다.
○어려서 부모 말 잘 듣는 모범생 큰딸
박정현은 올 가을, 6년 만에 복학한다. 졸업에 큰 의미를 두지 않다가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에서 졸업에 대한 의지가 다시 생겨났다고 한다.
보수적인 부모의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박정현은 학업성적이 우수했고, 반항하지 않고 말 잘 듣는 아이였다. 그래서 ‘노래’라는 취미활동이 허용됐다. 평화주의자였던 그녀는 사람들과도 부딪히지 않았다. 학점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공부를 게을리 해서 생기는 성가신 일들이 싫어 더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대학을 무대로 펼쳐지는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좋은 대학’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박정현은 3집 활동이 끝난 2001년, ‘가수를 계속 해야 하나’ 깊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하면서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다시 했다. 변호사가 되길 원하는 어머니, 목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 하지만 한국에서 슬프고 답답한 일 많았어도, 음악을 하는 동안 행복했기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이번에 복학하는 것은 과거처럼 또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다.
“음악은 이미 나의 아이덴티티가 됐기에 놓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정신없이 하다보면 또 5년이 그냥 지나갈 거 같아서 학교로 돌아갑니다.”
○콩글리시의 달인, 연예인 친구는 소수
데뷔 초기 낯가림도 심해 다른 가수나 연예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특히 연예계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들어 사람 사귀는 것이 망설여졌다. “좀더 개방적인 성격이었으면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을 텐데, 한국에 와서 많이 수줍었죠. 너무 부끄러웠고, 만남이 불편했어요. 이제는 많이 없어졌지만, 처음엔 누굴 믿어야할지 모를 두려움으로 인해 친구도 많이 사귀지 못했어요.” 박정현은 한국생활 13년째지만 아직 우리말이 서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영어를 쓰는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한국어 습득이 늦다. 그래도 요즘은 열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다보니 한국어가 편해졌고, 덕분에 ‘콩글리시’ 구사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며 자신감도 보였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 전에는 쓰지 않던 ‘안습’ 등의 유행어가 튀어나와 한참을 웃었다. 박정현은 헤어지면서 “죽이는 계란빵집을 알고 있다”며 서울 용산의 어느 골목길을 알려줬다. 그녀가 아주 ‘현실적인’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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