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가 단단히 뿔이 났다. 다름 아닌 '트랜스포머2 쓰나미'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개봉한 지 단 6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27일 단 하루에만 무려 8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는 기록을 세웠다는 데 연유하지 않는다. 이 정도 열풍과 신기록 행진은 매년 여름철 성수기 블럭버스터급 영화가 개봉되면 언제나 반복되는 뉴스였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개봉관 수에 있다. 전국 2000여 개 상영관 중 60%에 해당하는 1209개관에서 상영돼 각종 신기록을 갱신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와 외화를 통틀어 상영 스크린 수가 1000 개가 넘은 것도 처음이다.
압도적인 상영관에서 오는 효과는 명백하다.
단적으로 지난 주말 예매순위만 살펴봐도 '트랜스포머2'가 80%로 1위를 차지한 것이 비해 2위 '거북이 달린다'는 8.8%, 3위 이하는 3% 미만에 불과할 정도. 상영관을 7~10개씩 갖춘 서울시내 대영 멀티플렉스들은 황금시간대에는 5,6개에서 트랜스포머2를 집중배치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자 휴일 트랜스포머2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조차도 "온통 트랜스포머2만 상영해 더 놀랍다"고 말할 정도다.
문제는 영화계에서 이 같은 독과점 현상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 실제 최근 한국 영화 히트작인 '괴물'이나 '디 워 ' 모두 700~900여 개 영화관에서 상영했음에도 영화계 안팎에서 줄기찬 독과점 논란에 시달렸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제는 그런 비판은커녕 최대 극장 체인인 메가박스는 싹쓸이 상영은 물론이고 영화관람 주말 요금을 9000원으로 1000원 기습인상하기까지 했다.
● 세계적인 현상 vs 어쩔 수 없는 묵인
우선 수입 영화사 관계자들은 "트랜스포머2 독과점 현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고 논란을 일축한다. 지난 주말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된 이 영화는 미국에서도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4억 달러 가량을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는 것. 워낙 강력한 작품이기 때문에 대중의 수요도 많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내 배급을 담당한 CJ엔터테인먼트 역시도 비슷한 입장이다. 여름 성수기 뚜렷한 경쟁작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극장주들이 압도적으로 이 영화를 내걸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 자체가 트랜스포머2의 독과점 상황을 거부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영화계가 이처럼 특정영화가 여름 극장가를 독점하는 현상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중잣대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도 흘러나온다.
영화평론가인 오동진 씨는 반복됐던 '독과점 논란'이 힘을 잃은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식상하기 때문이다"고 정리했다. 현재 한국 영화산업 전체가 다운돼 있어서 국산 영화든 혹은 수입 영화라도 영화산업 전체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제살 깎아먹기식 공격이 줄었다는 얘기다.
과거에 독과점 논란 얘기가 불거질 때마다 업계에서는 "복제되는 프린트 수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그런 논리가 사라진 배경 역시 영화계 불황이 계속될 경우 산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각에선 현재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의 압도적 위상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배급력과 CGV라는 양날의 칼을 쥔 사업자에 독과점 비판을 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현재 영화계 관계자들은 "스크린 수로 60%, 객석수로는 80%에 가까운 점유율은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과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대신 히트작이 2~3개월씩 스크린에 오르던 예전 방식이 아니고 대규모 개봉이 한 달 정도만에 사그라지는 식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많다.
한 영화평론가는 "앞으로 어떤 영화도 트랜스포머2 정도 이상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지 못하고 어느 선에서 적절한 타협점은 이룰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