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이해 못했다면 맡지 않았을것”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옴니버스영화 ‘오감도-끝과 시작’ 엄정화

《남편이 바람을 피우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내연녀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후배 나루(김효진)였다. 살아남은 나루는 자꾸 아내인 정하(엄정화)의 집으로 찾아온다. 무조건 헌신하겠다는 나루를 정하는 결국 집으로 들인다.》

“나이 들어 조연 밀리는건 참아도
사연이 없는 캐릭터는 용납 못해”

영화 ‘오감도’ 네 번째 에피소드 ‘끝과 시작’편의 이야기다. ‘오감도’는 에로스를 주제로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기획영화. 여기서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은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영화다. 기묘한 설정과 함께 남편과 나루의 애정행위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나루에게 먹이는 정하의 행동들은 마술 장면과 뒤섞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나루와 정하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드러난 뒤 이어지는 두 사람의 정사는 두 여배우에겐 쉽지 않았던 부분이다. 정하 역을 맡은 배우 엄정화(38)를 만났다.

“비타민 차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만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비타민 차’를 주문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바로 온 그는 “계속 누워 있는 촬영분만 있어서 머리를 안 감았다”며 웃었다. 그는 KBS2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결혼 못하는 ‘골드미스’ 내과의 장문정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해운대’에서는 거대한 지진해일 앞에서 딸을 구하는 엄마로 나온다. 7월에만 세 얼굴의 엄정화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다소 파격적인 영화인데 출연을 망설였나.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영화여서 실망했다. 그래도 감독님을 믿으니까. 여자와의 노출 장면이 있겠다 싶었는데 단편이라 용서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동성 배우와의 애정신은 처음이었다. 어땠나.

“상대역이 남자라서, 여자라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렇지 않았다는 점에 나도 많이 놀랐다. 다만 이런 건 있었다. 나보다 어리고 가냘픈 김효진 씨에게 ‘리드’를 당하는 게 부담스럽더라. 덩치가 나보다 작아 조금만 실수하면 부서질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주도했으면 좋았을걸.(웃음)”

―정하는 남편과 살던 곳에서 남편과 바람 피웠던 내연녀와 함께 살게 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다.

“여태까지 이해하지 못한 역할은 해보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되면 출연 자체를 안 한다. 나에게 없던 모습을 갖고 있는 ‘인사동 스캔들’의 배태진도 이해하고 시작했다.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건 없더라.”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 ’싱글즈’의 동미 등 당당하고 강한 여성을 맡아왔다. 실제 성격도 남편과 바람을 피운 내연녀를 그대로 내버려둘 것 같지 않은데….

“소심한 A형이지만 안 좋은 건 빨리 잊어버리고 낙천적이다. 그래서 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복수할 생각보다 내 안의 상처를 얼른 보듬고 싶을 것이다.”

―안 해본 배역, 해보고 싶은 배역, 절대 해보고 싶지 않은 배역이 있다면….

“청순가련형은 안 해봤다. 이 나이에 수녀님이나 스님이라면 모를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몇 살만 어리면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절대 하고 싶지 않은 건,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은 받쳐주는 배역? 나이가 들어 조연으로 밀려나는 건 참아도 사연을 갖고 있지 않은 캐릭터는 용납할 수 없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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