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저를 정말 죽이시나이까!”
22일 경기 용인시 MBC 드라마 ‘선덕여왕’ 야외 세트장. 볏짚 위에 설치된 화형대에 네 겹의 굵은 밧줄로 꽁꽁 묶인 비담(김남길)이 이렇게 외치자 촬영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화형대 옆에 설치된 화로에서 갑자기 불이 활활 타오르자 김남길이 대본에 없던 대사를 외친 것.
이날 촬영한 장면은 25일 방영되는 28회의 마지막 부분. 촬영의 상당 부분은 민심을 교란한 죄로 미실(고현정)에게 붙잡혀 화형당할 위기에 처한 비담에게 할애됐다.
김남길은 두 손과 두 발이 끈으로 묶인 채 포졸들에게 끌려나오고 화형대에 올라갔다 내려가는 장면을 수십 차례 반복했다. 스태프는 손발이 묶인 김남길에게 물을 먹여줬고 촬영장소를 이동할 때는 스태프 두 명이 김남길을 들어서 나르기도 했다.
미실과 덕만(이요원)의 대결이 본격화되는 주요 장면인 만큼 이날은 미실과 덕만 세력 연기자 28명이 모두 모였다. 엑스트라 배우도 200명 동원됐다. 극 초반 전쟁 장면(500명) 이후 최대 인원이다. 이 정도 인원을 한자리에 모으기 힘든 만큼 촬영을 하루 안에 끝내기 위해 카메라 세 대가 동원됐다. 보통 촬영장에서는 카메라 한 대를 사용해 여러 각도로 돌아가면서 찍는다.
연출을 맡은 김근홍 PD가 “30분 안에 밥 먹고 2시 반까지 집합합시다!”라고 외치자 한 엑스트라 배우는 낮은 목소리로 “아휴, 밥 먹는 시간을 한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투덜댔다. 점심은 출연진 전체가 도시락업체에서 주문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엑스트라 배우들은 촬영장 구석에 일렬로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졸고 있다가 스태프가 “화랑 나오세요!” “백성 나오세요!” 외치면 후다닥 달려나갔다.
30도에 가까운 무더위에 긴 옷을 입은 연기자들은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스태프가 얼음 봉지를 들고 다니며 배우들에게 얼음을 나눠줬고 카메라 시선이 닿지 않는 촬영장 구석마다 1.8L 물병이 놓여 있었다. 월야 역할로 나오는 주상욱은 기자에게 본인의 두꺼운 의상을 가리키며 “이번에 ‘FW’(가을겨울) 시즌으로 나온 신상품”이라고 농담을 던진 뒤 “그나마 한여름이 지났을 때 드라마에 합류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화랑 중 한 명인 박의 역할을 맡은 장희웅은 더위에 연방 부채질을 하며 “시청률 40%가 넘었다고 하는데 워낙 촬영 일정이 빠듯해서 이를 즐길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알천 역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신인배우 이승효는 “매니저가 없어 직접 운전한다”며 “내가 피곤하면 촬영에 방해가 되는 만큼 로드매니저라도 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용인=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