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Up)’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고 왔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을 붓과 물감 대신 컴퓨터로 100% 제작하며 유명해진 회사입니다. 14년 전의 관객들은 이들이 선보인 획기적인 신기술에 열광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새 애니메이션 ‘업’에는 3차원 입체영화 기술이 사용됐습니다. 이 애니메이션 또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흥행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많은 어른들마저 이 애니메이션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한 건 3차원 영상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어린 시절 만화영화를 보고 또 보던 추억이 다시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픽사는 이 애니메이션을 위해 최신 3차원 영상 기술을 개발하고 수만 개의 풍선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각도까지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성을 쏟은 것은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날로그적 감성’이었습니다. ‘업’의 제작진은 배경을 제대로 그리겠다며 직접 남미의 오지를 찾아갑니다. 독충과 전갈, 모기떼가 우글거렸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며 현장을 찾았던 거죠. ‘업’의 감독인 피트 닥터는 이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아흔이 넘은 디즈니의 원로 애니메이터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전 세계 어린이를 사로잡았던 노인의 경험을 최신 애니메이션에 반영한 겁니다.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은 다소 기형적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휴대전화와 반도체 등 제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초고속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도 뛰어나지만 유독 소프트웨어와 IT 서비스 등 지식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선진국에 크게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IT 서비스 경쟁력은 선진국의 7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저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변화가 일부 시작됐습니다. 최근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더는 ‘기능이 뛰어난 휴대전화’를 광고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작이 편한 휴대전화, 화면 색상이 더 화사한 휴대전화를 강조합니다. ‘해운대’와 ‘국가대표’ 같은 한국 영화도 달라졌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뛰어난 컴퓨터그래픽(CG)’을 광고하는 데 여념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웃음과 감동’을 내세우느라 CG 얘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결국 한국 휴대전화는 세계 시장을 휩쓸게 됐고 한국 영화는 다시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고 합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신기술의 가격이 점점 내려가면서 기술이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다시 아날로그적인 감성입니다. 픽사의 애니메이터들은 아직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컴퓨터 대신 연필을 들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놓는다고 합니다. 기술은 그저 그들의 창의력을 거들 뿐입니다. 그게 바로 IT입니다(That's IT).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