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돌아오는 게 대세인가 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가 정치권에서 들려오더니, 80~90년대 한국 락의 대표주자였던 김태원, 유현상도 돌아오고, 이경규, 최양락, 박미선 등 그 시절 개그맨들도 돌아왔다. 심지어는 그 시절의 읽을거리였던 딴지일보에 다시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린다는 이야기도 풍문으로 들려온다.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불꽃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고현정은 돌아온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띈다. 누군가는 생계형 아줌마 아저씨로 돌아왔고, 누군가는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유머 소재로 삼아 돌아왔지만 고현정은 다르다. 주변부에 머무르며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돌아온 자들의 생존전략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현정은 드라마의 중심에 서 있다. 극중 역할에서만 중심에 선 것이 아니다. 네티즌들에 의해 '6분 토론'이라고 명명된 선덕과의 논쟁이 한국정치의 현 상황과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은 미실의 대사와 행동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중심은 여전히 여의도지만 여의도에 있는 국회가 아님은 명백하다. ● 고현정의 아름다운 카리스마
어쩌다가 고현정은 드라마의 중심, 심지어 한국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됐을까? 사실 10여 년 전 그녀는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의 중심이었다. 대한민국 공인 최고 미인이라 할 미스코리아 출신, 하지만 당대의 최고미녀들과는 다른 약간은 동글동글하고 후덕한 얼굴,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지만 운명 속에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비련의 여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모래시계>를 통해 고현정은 최고의 스타가 된다. 그녀는 예쁘지만 푸근한, 강단이 있지만 비극적 사랑을 하는 남성들의 뒤틀린 이중적 판타지를 완벽하게 만족시켰다. 그러므로 그녀는 누군가를 응시하기는커녕 드라마 속에서건 현실세계에서건 남성과 역사의 응시를 모두 받아야 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고현정은 여성들의 판타지까지 만족시키는 기염도 토했으니 그것은 재벌 2세와의 결혼이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까지 완벽히 소화를 해주며 떠났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과정부터 심상치 않았다. 판타지의 완성이던 재벌가를 박차고 나오더니, 덜컥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에 출연한 것이다. 홍상수가 누구인가? 인물의 말 한마디, 찰라의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표정 하나까지 파고들어, 징그럽도록 인간들의 우스꽝스러움과 비틀린 욕망을 잡아내는 감독 아니던가? 판타지의 결정체였던 여배우가 지독한 리얼리티의 독기를 뿜어내는 감독을 택한 것이다. 돌아온 고현정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해변의 여인>에서 그녀는 시쳇말로 찌질하다. 현명하고 경계심 많은 척하지만 남자의 몇 마디 말과 어이없는 변명에 넘어가고, 쿨 한척하지만 질투를 감추기 급급하다. 심지어 이러한 그녀의 찌질함을 간파한 찌질한 남자에게 비웃음의 대상이기도 하다. 홍상수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예의 찌질한 역할을 해야겠지만 고현정이 획득하고 있던 판타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역할이었다.
● 스스로 깨어버린 판타지 스타
영화 ‘해변의 여인’ 포스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기존 이미지의 파괴가 <해변의 여인>을 통해 고현정이 획득한 하나의 성과라면, 또 다른 하나의 성과는 영화를 통해 주체를 선언한 것이다. <해변의 여인>의 끝부분에서 여자는 말한다. "내가 끝내겠다". 찌질한 두 남녀의 찌질한 관계를 남자의 의지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끝내겠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으나 이 선언은 타인의 응시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판타지 스타를 "내가 끝내겠다"는 자기의지적 선언으로도 들린다. 복귀 이후 홍상수 감독과의 두번째 영화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고현정은 한층 더 강력해진다. 고현정이 연기한 고순은 핑크빛 '연애'의 환상은 믿지 않지만 간질간질한 '연애질'의 즐거움은 즐긴다. 이미 인생에 대한 주관과 태도가 명확해진 여인. 연애에 있어서도 남자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신이 정한 범위와 방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의한다. 판타지는 간데 없고 현실 속에서 생존하면서 경험한 진리들을 축적하여 자신을 만들어 간 생생한 여인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고현정이 보여주는 표정과 눈빛은 드디어 미실의 그것과 닮아가기 시작한다. 인생과 연애에 대해 여전히 뒤죽박죽 질척이며 갈피를 못잡는 남자를 보며 고순은 알 듯 모를듯한 미소와 함께 따끔하게 이야기한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을 평가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아는 척하며 살아야했던 남성들의 삶, 정치, 권력의 방식에 준열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그것도 웃으면서. 완벽한 KO 승! 10년 전 판타지 스타로 응시의 대상이었던 고현정은 <선덕여왕>의 미실을 통해 드디어 응시의 주체로 자리바꿈 한다. 남성들의 찌질댐을 한 칼에 정리하는 내공을 바탕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온 그녀는 <선덕여왕>에서 절정의 포스를 분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포스의 핵심은 '응시'이다. 미실은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응시는 기존의 남성적 응시와 차별화된다. 휘황한 안광을 내뿜으면서도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는 순수함을 담고 있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관심법(觀心法)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장검 옆에 차고 우국충정을 결연히 맹세하는 눈빛도 아니다. 단지 그녀는 사람과 사물을 호기심에 가득 차 응시(!)하고 그에 따른 자신의 해법과 논리를 내어 놓는다. ● 또 한번의 갈림길에 선 고현정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틸컷. 동아일보 자료사진 대중들이 미실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중을 응시하고 지배하려는 기존의 정치에 대한 염증이 미실의 인기의 요인이다. 다시 말해 미실의 인기는 정치세력들에게 "아는 만큼만 안다고 말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열광과는 별개로 이 응시의 위력이 고현정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나쁜 응시이든 착한 응시이든 응시는 그 자체로 권력을 작동시키는 핵심기제이기 때문이다. 복귀 이후 자신의 변모과정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반영되어왔다는 가정이 성립한다면, 그녀는 이제 또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설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알지도 못하면서>의 '고순'으로 돌아갈 것인가? 미실과 고순 모두 남성들의 삶과 정치의 찌질거림을 알고 자기 나름대로의 행동원칙과 철학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실은 정치의 영역에서 타인을 응시하고 지배하고, 고순은 삶의 영역에서 타인에게 이따금 따끔한 충고를 날릴 뿐이다. 미실이 될 것인가? 고순이 될 것인가. 고현정의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조희제/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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