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PIFF]“화장실서 펑펑 우는건 기본… 감독 데뷔후 정신과 치료도”

  • 입력 2009년 10월 14일 02시 57분


감독들이 털어놓는 ‘나의 눈물’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찍으면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엄청 울었어요.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민규동 감독님, 제가 듣기로는 ‘여고괴담2’ 때 여고 뒤편 수돗가에서 수돗물 틀어 놓고 실신했다면서요?”(봉준호 감독)

“쪽방 화장실에서 샤워기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통곡하다 병원에 3일 동안 입원했죠.”(민규동 감독)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 피프 빌리지(PIFF Village) 야외무대에서는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인들’이라는 제목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마더’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민규동, 영화평론가 출신 김정 감독, ‘해운대’의 이지승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주제는 어느새 ‘감독들의 눈물’로 바뀌었다.

대화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민 감독이 장편영화 데뷔 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털어놓으면서부터. 민 감독은 김태용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2’를 공동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는 “제작자가 시나리오에 빨간 줄을 긋고 대사를 뺄 때 한마디 항의 없이 무릎 꿇고 고치는 내 자신을 보며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별명이 ‘신림동 황금허리’였고 여러 행사에서 ‘기쁨조’로 활약한 내가 성격이 (어둡게) 바뀐 것도 영화 때문”이라고 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김 감독은 봉 감독의 ‘신경안정제 복용설’을 제기했다. 봉 감독은 “약을 먹진 않고 마음이 허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제 데뷔작은 태생부터 ‘무관심 프로젝트’로 부를 만했어요.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에 묻어가는 영화였습니다. 제작자가 투자자에게 ‘화산고에 투자하고 싶으면 플란다스의 개에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투자를 받았죠. 어차피 저예산 영화였으니까요. 제작자는 영화 촬영 현장에 오지도 않았어요.(웃음)”

봉 감독은 “‘마더’ 후반 작업실에서 만난 ‘해운대’ 윤제균 감독이 ‘CG 힘들지 않냐’는 지나가는 질문에도 울컥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고통스럽지만 더 고통스러운 게 있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찍은 영화를 다시 본다는 건 사지가 찢겨 나가는 느낌입니다. ‘왜 이렇게 나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기영 감독은 자신의 작품인 ‘하녀’를 세 번이나 리메이크했는데요. 그 작품만은 잘 찍을 때까지 찍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제가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리메이크하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부산=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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