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눈에 띄는 게시물 제목입니다. 자신의 글 아래 있는 게시물에 반응을 하고 댓글을 달지 말라는 당부의 게시물이지요. 주로 게시판에서 요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말도 안 되는 논쟁이 벌어지게 하거나, 똑같은 게시물을 도배하듯 반복해 다른 사람들을 귀찮게 하거나, 혹은 시비를 붙어 불쾌감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주의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 의미를 실어 타인과 소통하기보다는, 타인이 자신의 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고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게시물에 대해 공격을 하거나 화를 내면 오히려 더 좋아하죠. 그래서 경험이 좀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 글에 반응하여 쾌감을 주는 것을 방지하고자 "먹이를 주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 "떡밥에 물리면 모두가 피곤하다"
낸시랭,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 신문기사를 통해서였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는 해프닝성 기사였죠. "한국사람 중에도 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2~3년 후부터 '낸시랭'이라는 이름이 들려오더군요. 방송을 통해 그녀는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젊고 어린 미술가인데 노출이 심한 퍼포먼스를 한다는 점이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당연히 그녀에 대한 관심은 '젊고 어린', '노출'에 방점이 찍혔고 그녀의 작품이나 퍼포먼스는 구색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그녀를 두고 예술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도 벌어졌죠. 그렇게 잠시 주목을 받더니 또 몇 년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케이블TV에 출연하고, '인간시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캘린더 걸'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존재함을 각인시키더니 얼마 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항상 논란을 달고 다닙니다.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예술가인가 예술가가 아닌가는 그녀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의문부호입니다. 이번 공중파 방송에 등장한 후에도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나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수"라는 발언으로 잊혀졌던 전백련(전국백수연합)이 다시 봉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 낸시랭, 논란을 먹고 사는 예술가?
사실 낸시랭을 두고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하지요. 이미 현대 예술로 넘어오면서 뒤샹은 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우기며 예술과 예술아님의 구분 자체를 조롱했고, 백남준은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지퍼를 내리는 퍼포먼스(공식적으로는 치매에 의한 실수라고 하지만)를 벌여, 예술가의 행위 그 자체가 예술일수도 혹은 실수일수도 있다는 점을 웃음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어디 미술의 영역에서만 그런가요. 지금은 말하기도 쑥스러워졌지만 한때 막강했던 세기말적 이론인 포스트모던의 사상가들도 이런 점에 주목했었죠. X-File에서는 "진실은 저 너머에…"라고 여운을 남기지만 포스트모던의 이론가들은 한술 더 떠 실제 진실은 아무 곳에도 없고 진실에 대한 해석과 반응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이쯤되면 예술의 본질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예술적 논란과 사회적 이론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것들이란 점입니다. 물론 철이 지났다고 해서 그들의 주장과 함의가 없어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현대 예술과 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시각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낸시랭이 30년, 40년도 더 된 그 시절의 퍼포먼스를 가지고 예술을 한다는 것이겠죠. 낸시랭이 처음 시도한 베니스에서의 퍼포먼스는 "초대받지 못한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닌가?", "비키니를 입고 바이올린을 켜면 예술일까? 아닐까?"라는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의 질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또 최근 전시회인 "캘린더 걸"은 이미 키치가 되어버린 엔디워홀의 팝아트를 또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예술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는 여성과 로봇의 결합 역시 데너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 이후 무수히 반복되어 온 여성작가들의 주제입니다.
● 그녀의 참을 수 없는 진부함
아…! 온고지신이란 말도 있고, 낡은 퍼포먼스라고 해서 예술이 아닌 것도 아니죠. 또 낸시랭 자신이 예술을 한다고 하면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낸시랭은 자신의 퍼포먼스 그 자체보다 자신에 대한 혼란과 논쟁을 즐긴다는 점에서 현대예술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퍼포먼스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낡아빠진 퍼포먼스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가 따라한 퍼포먼스들은 당대에 있어 중요한 질문들을 야기하고 논쟁들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낸시랭이 던진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런 것 없다"가 정답일 듯합니다. 이미 미술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현대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질 리도 만무하고, 백수들이나 하는 반응에 그녀가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논란과 반응을 넘어 그것이 가져올 미디어의 관심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미디어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입니다.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그것을 통해 올라간 인지도는 부와 명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요. 낸시랭은 이러한 미디어의 작동방식과 효과에 예술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던지는 예술가적 엉뚱함과 노출(더 이상 젊고 어리지는 않지만)이라는 떡밥에 미디어가 관심을 보이고, 이 관심을 통해 '백수들'은 논란을 시작하고, 부풀려진 논란은 다시 그녀를 미디어의 조명 앞으로 불러들입니다. 낸시랭 그녀가 처음에 부싯돌만 잘 켜면 나머지는 알아서 활활 타오릅니다. 가히 예술의 경지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