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 커버스토리]예인(藝人) 배용준의 오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11시 51분



사마와 함께한 7년, 두번째 '연가'를 노래할 겨울이 또 다가오네

'그는 정말 배용준과 친한 사이일까?'

배용준을 만나러 가는 길, 동행했던 기자들 몇몇이 내기를 했다고 그들중 한명이 내게 웃으며 귀띔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냥 아는 사이'라고 답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하다'는 말이 남용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남용보다 더욱 싫은 것은 오용되는 경우다. 때문에 나는 그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적절한 단어로 '아는 사이'란 표현을 골랐다.

9월의 마지막 날, 일본 도쿄돔에서는 그가 낸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의 일본어판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취재진은 뒤편 대기실에서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렸다. 그는 무대의상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을 둘러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서로 가벼운 손짓을 했다. 옆에 앉아있던 한 동료가 말했다.

"배용준하고 진짜 친한가봐."

설마, 아는 사이라도 손 인사 정도는 한다. 집단 인터뷰가 끝나고 배용준은 멀리 일본까지 찾아온 기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공교롭게도 내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배용준은 시간이 갈 수록 고독한 존재가 됐다. 그가 건네는 "아내가 필요하다" 농담을 가벼이 흘릴 수 없다.
배용준은 시간이 갈 수록 고독한 존재가 됐다. 그가 건네는 "아내가 필요하다" 농담을 가벼이 흘릴 수 없다.
그와 나의 대화는 7분 정도 이어졌다. 그뒤 나는 잰걸음으로 취재진을 태운 버스에 올랐고, 연차가 조금 낮은 한 동료 기자는 혹여 이 세계의 용어로 '물을 먹지 않을까' 염려됐던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냐고 슬쩍 와서 물었다.

이 대목에서 '아무 이야기도 안했다'고 대답하면, 듣는 상대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얄밉다'고 할 게 뻔했다. 그러나 소위 '꺼리'가 될만한 그 무엇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곤혹스러웠다.

평범한 배우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로…, 그의 지난 7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는 들었다."(배용준)

그가 내게 원하는 대답은 '잘 지내' 혹은 '그저 그래'도 아닌 '속사정'이었을까. 서울의 모 헬스클럽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1년 반 만이었다.

하루처럼 흘러간 1년6개월이란 세월동안 그는 책을 썼고, 나는 회사를 옮겼다. 유명세를 떠나 개인의 연대기란 이토록 허무한 것이다. 그와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씁쓸한 미소를 나눴다.

내 인사는 "책은 잘 읽고 있다"였다. 도쿄에 오기 전, 그의 소속사를 통해 책을 받았다. 정말 읽고 있으니 인사치레는 아니라고 덧붙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7년은 드라마 '겨울연가'로 촉발된 '한류'의 연한(年限)이기도, 배용준과 내가 '아는 사이'로 지낸 시간이기도 했다.

또 이 7년은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연예 기자를 해온 내게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연예인의 가십과 전혀 담을 쌓고 살 순 없는 직업적 숙명이다. 아무개와 아무개가 연인이 됐고 심지어 결혼이라도 하는 날엔 발칵 뒤집히는 게 사실이고, 그 소식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시말서 정도는 기꺼이 쓸 각오를 '사표 쓰는' 날까진 '항상' 갖고 살아야 하므로.

가십의 전쟁은 여전히 유효하거나 날이 갈수록 내 목을 더욱 조여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배용준이 있기에 나는 숨통을 조금이라도 틀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왜인지는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하다. 배용준은 사건, 사고 없이도 9시 뉴스를 종종 장식하는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한국과 일본을 합하여 초판 7만부가 매진됐다.
그가 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한국과 일본을 합하여 초판 7만부가 매진됐다.

'아내가 필요하다'는 배용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아내"라고.

얼마 전까지 출연했던 모 아파트 CF의 유명한 카피를 인용한 그의 재치는 사실 인터뷰 안하기로 유명한, 그래서 기자들과는 서먹할 수밖에 없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인터뷰가 끝나고 따로 그와 마주 했을 때 나는 그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그 변화는 허탈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허전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혹은 그러한 감정이 교차하며 생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빌려줘 이뤄진 게 아닌, 배용준 스스로가 만들어낸 첫 작품이다. 큰 산이던, 작은 산이던 목표한 고지에 기어코 오르고 났을 때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성취의 기쁨은 순간일 뿐, 형언할 수 없는 허탈함에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배용준은 책을 내고 무려 4만 명에 이르는 관중 앞에서 출판 행사까지 치르고 난 이제야 자신을 누르던 긴장감을 해제시키고 그 기분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 내게 "만나는 사람 있어?"라고 묻는다.

배우가 기자에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그는 둘 만의 대화에서 내게 이성교제 여부를 물었다. 내게서도 허전함이 느껴졌던 걸까. 실은 누구나 '감정이입'이 돼 상대를 해석하지 않던가.

나는 얼마 전에 헤어졌으며 "조금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서울 가면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그 차는 '위로주'처럼 씁쓸한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7년 전 그와 나는 서울의 어느 전통찻집에서 처음 만났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개봉할 즈음이었다.

그때도 배용준은 전통차를 좋아했다. 쌍화차를 마셨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나는 '왜 계란은 안 띄우냐'는 우스개 소리를 던졌던 것 같다. 그가 웃었는지는 잘 기억나질 않는다.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 '고시레'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 '고시레'

그는 유전유죄(有錢有罪)다

정상의 한류스타로 군림하며 배용준은 종종 숫자로 표현되곤 한다.

공항에 마중 나온 일본의 여성 팬이 '몇 명이다'부터 그가 최근 낸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한국과 일본을 합하여 초판 7만부가 모두 예약매진됐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다'까지.

'욘사마'란 그의 애칭에 덧붙여 산업화에 접어든 국내 연예계를 논하는 과정에서 매스컴은 그를 '주식 부자'로 명명하기도 했다.

일본 도쿄돔에서 진행된 책의 출판기념회에도 숫자를 앞세운 소식은 셀 수 없이 등장했다. 예컨대 10여만 원 균일가로 내놓은 4만5000개의 티켓이 거의 모두 팔려나갔으니, 이날 하루에 그는 입장료로만 45억 원을 거둬들였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7년여 넘게 배용준이 숫자로 묘사되다보니 많은 이들은 그를 배용준이 아닌 '얼마'로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벌었고, 이번엔 얼마나 벌었으며, 앞으론 얼마나 벌 것인지가 대중의 관심사가 된 셈이다. 이를테면 배용준에 대한 대중의 기호는 스캔들을 대신해 그 '얼마'로 치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얼마를 곳간에 쌓아뒀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그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국내 몇 대 안 굴러다닌다는 마이바흐는 회사 소유고, 그가 실제로 타는 차는 랜드로버이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그의 집이 실은 '전세'란 게 전부다.

9월29일 일본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제작발표회장에 등장한 배용준
9월29일 일본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제작발표회장에 등장한 배용준
다만 자산이 모두 얼마나 되냐고 묻지 않고도 그가 시쳇말로 '3대가 먹고 살만큼은 모으지 않았을까'란 추론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이 없겠지만, 돈을 벌어 쌓는 재미를 넘어서면 세상의 이치가 그렇듯 무감각해지고 무의미해지는 게 아닐까.

그는 그 허무함을 "비운다"는 말로 대신했다.

배용준은 "서울로 돌아가면 집에 있는 가구들을 하나둘씩 없애 집을 비워야겠다"고 했다. 이 말은 여러 기자들과의 인터뷰 도중 흘러나왔는데, 여기 덧붙여 그는 "모든 게 풍족한 것은 오히려 무언가에 눌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그는 코스닥에도 상장된 자신의 회사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고시레'란 자신의 브랜드 아래 도쿄 미나토구에 고급 한식집을 열고 김치와 막걸리를 해외에 내놓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응당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란 것도 결국엔 유기체여서 끊임없이 성장할 수밖에, 아니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쩌면 그는 애초에 회사의 상장 따위는 하지 않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배용준 자신을 어느 정도는 얽매고 있는 회사 주가의 향방을, 그는 사생활에선 "다 없애고, 모든 걸 줄여가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는 게 아닐지.

그의 내일, 변화무쌍하겠지만 짐작 가능한

일종의 문화체험서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겨울연가'부터 영화 '스캔들'과 '외출', 최근 드라마 '태왕사신기'까지 어떤 것과 견주어도 배용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할에 대한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해도, 수많은 아시아 팬을 사로잡은 작품 속의 배용준은 결국은 다수의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이를테면 엄청난 스케일의 UCC, 자기제작물이라 할 만하다. 온전히 그의 뜻대로 기획돼 완성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그런 점에서 자신이 즐기고, 느낀 것을 그가 '가족'이라 부르는 팬들과 공유코자 하는 '프로슈머'(prosumer)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상업성은 그의 이름값을 따라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배용준의 지난 7년은 화려했다. 앞으로 펼쳐질 '배용준 2기'는 어떤 모습일까?
배용준의 지난 7년은 화려했다. 앞으로 펼쳐질 '배용준 2기'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꼬집어 '프로슈머'란 단어를 쓰진 않았다. 그러나 책을 쓰면서 접하게 된 도예와 옻칠을 더욱 연마해 "언젠간 도예가, 공예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앞으로 배용준이 펼치게 될 행보의 주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배용준이란 정상의 '원천 콘텐츠'는 한편, 팬들을 더욱 불러 모으고 결집시키는 '핵심'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과정에 놓여 있다.

지난 7년간 그를 빛나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빛나게 할 원천은 누구나 짐작하듯 '겨울연가'다.

취재중인 허민녕 기자
취재중인 허민녕 기자
그러나 세상 모든 게 영원할 순 없는 법.
"화살처럼 지나가버린" 지난 세월 어느 시점에서 그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의 것'으로 흔히 말하는 '배용준 2기'를 맞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행동이 없듯 세상은 '인과'란 질서로 어느 정도는 움직인다. 그가 전통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전통문화를 체험한 수기까지 낸 이제 와서, 새로운 배용준은 어떤 모습으로 7년 후 대중에게 기억될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스포츠동아>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