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독일 베를린에서 영화 ‘닌자 어쌔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지난 해 7월 중순, 우연히 그의 노트를 본 적이 있다.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 비는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적어놓는다. 그런데 글도 있고 그림도 있던 그 노트의 맨 뒷장에는 음식과 음식점 이름, 혹은 특정 음식이 유명한 특정 지역 등이 한 페이지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삼겹살, 갈비, 김치찌개, OO곱창, 마장동 불고기, 장충동 족발 식이었다.
이 메모를 쓴 이유를 묻자 그는 “무술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 영화 촬영하면서 먹고 싶었던 것들을 쓴 것이고, 음식을 하나씩 쓰면서 먹고 싶은 욕구를 견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다 먹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또 누구와 먹을지도 생각해뒀다”고 했다. 순간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하는 연민이 생겨났다.
애주가에게 금주령은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다. 먹성 좋고 군것질 좋아하는 ‘대식가’ 비가 반년 이상을 먹은 것은 몸을 만들기 위해 짜여진 식단, 퍽퍽한 닭가슴살 고구마 야채 등 밖에 없다. 심지어 물도 정해진 양 만큼만 마셔야 했다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자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단시간에 몸을 만들고 무술 훈련을 받느라 오전 6시 기상에, 하루 10시간 가까운 훈련과 운동은 얼마나 큰 고역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그는 이런 고통을 거치면서 무려 20kg를 감량했다.
비에 따르면 ‘닌자 어쌔신’ 출연 계약서에는 특정 근육의 최소 크기까지 명시돼 있을 정도로 조항이 많고 까다롭다고 했다. ‘닌자 어쌔신’을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을 위한 ‘몸’도 계약 조항에 있는 것이다. 비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옥훈련이었다”고 했다.
이후 비를 만났을 때 그때 노트에 적어두었던 음식을 모두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있다.
비가 그렇게 고생하며 촬영한 영화가 26일 개봉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의 조각 같은 몸매가 인내의 열매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gyummy@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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