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마스타] 어느 로커의 순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3일 15시 08분


'김마스타 4집'의 소재가 된 진짜 로커 정문식

로커 정문식, 그는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진짜 로커’다.
로커 정문식, 그는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진짜 로커’다.


[사전] rocker
1. 흔들리는 것, (흔들의자 밑에 받친) 굽은 막대; 요람을 흔드는 사람;《미》 흔들의자, 흔들목마


'로커'라는 단어에서 흔들림을 떠올릴 사람은 드물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세상을 향해 쓴 소리를 내뱉는 사람을 '로커'라고 정의해도 될까.

그런데 한국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를 통틀어 몇이나 되는 진정한 로커가 존재하는 것일까?

'노브레인'의 이성우도 마산에서 올라와 이제껏 신나게 "놀자"를 외쳤고, '타카피'의 김재국도 십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중부양점프를 맘껏 내지르고 있다. 김장훈의 앞차기가 로커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때에 수십 년 전의 향취에 사로잡혀 이십대의 전부와 삼십대의 전부를 걸고 록 스피릿을 내지르는 이가 있다. 그는 짧지 않는 시간 수백 번의 공연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노래를 대충 흘려보낸 적이 없다.

오늘은 그런 고전적인 로커 한 명 소개하고 싶다.

록밴드 '더 문(the mu:n)'의 리드보컬(이제는 LP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표현이다) 정문식, 한때 '샤도우 정'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던 이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필자의 4집 앨범에 등장하는 곡 '록커의 순정'의 소재가 된 실제 인물이다.

'더 문'의 리드보컬 정문식

'더 문'은 보컬 정문식, 기타 강우석, 베이스 김서현, 드럼 오형석으로 이루어진 4인조 록 그룹이다. 이들은 2004년 클럽 공연을 시작으로 그동안 100회 이상의 공연과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또 미국 텍사스 록페스티벌과 중국 베이징 미디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대중에게 어필하기 좋은 이력이라면 2006년 SBS 수목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 중 에릭의 테마곡인 '터닝 포인트'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것 정도.

그는 스무 살 때 공중부양점프로 인생 첫 번째 무대의 첫 곡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대에서 떨어져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향한 것으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소위 홍대씬이 음악계를 뜨겁게 달궈놓을 무렵, 동시대 대중스타인 '자우림' '델리스파이스' 등과 함께 도마에 올랐던 '마키브라운'의 리드보컬로 활약했다.

4인조 밴드 ‘더 문’의 멤버. 왼쪽부터 보컬 정문식, 베이스 김서현, 기타 강우석, 드럼 오형석.
4인조 밴드 ‘더 문’의 멤버. 왼쪽부터 보컬 정문식, 베이스 김서현, 기타 강우석, 드럼 오형석.


그리고 전국을 누비며 각종 록의 전도사로 활동도중 29세라는 나이에 대구에서 도서(서울로 건너가다는 은어)하여 현재까지 두 장의 앨범과 함께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다.

그는 꽃미남 라디오 헤드의 풍모를 지녔으며 대학가에서의 공연은 학생들을 도취시키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었다.

서른 즈음에 시작한 대학로 모 음악아카데미의 생활은 열정에만 몰입했던 음악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본래 지닌 인텔리적인 감성을 드러내 2004년 '에그뮤직'이라는 레이블을 통해 데뷔했고, 모던록페스티벌, K-ROCK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동두천 록페스티벌에 이어 물 건너 베이징 미디록 페스티벌에서 수 만 명을 세워두고 록 스피릿을 부르짖게 된다.

제14회 춘사대상영화제에서의 'Tribute to 춘사' 라는 곡을 부른 인연으로 만난 도올 김용옥 교수(그의 그다지 특이할 것 없는 인맥중 제일 도드라지는 인물)가 '더 문'의 공연에 출연하여 밴드와 함께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는 열혈청년의 로커다운 정치색까지 내보였다. 뭐랄까, 그의 이미지는 한국판 브루스 스프링스턴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거칠고 멋들어진다.

한국의 브루스 스프링스턴

정문식은 아리따운 아가씨와의 로맨스를 속삭이기보다는 광복기념음반에서 호기차게 '장검가'를 부르며 2007년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때론 '에그뮤직' 박경훈 대표와의 조합에서 더 다양한 발자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싱글이었던 로커의 그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노래를 선택했다. 때문에 남녀상열지사보다는 인간의 상식적인 삶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러이며 누구보다 더 사회봉사적인 노래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 방면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안치환 정도일텐데, 선풍을 일으킨 안치환과는 달리 정문식은 부채질 정도의 가벼운 바람만을 일으켰을 뿐이다.

데뷔한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대중들과의 호흡을 중요시 여기며 자기 집의 울타리를 쉬이 걷어내듯 거리공연에서부터 대형 록 페스티발까지 폭넓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주지 못하는 한국의 대중 음악씬은 그다지 정문식을 여유롭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무대를 꾸민 ‘더 문’.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무대를 꾸민 ‘더 문’.


기교나 수려함보다는 거칠디 거친 노래소리와 반복되어 고막을 치는 사운드는 기존의 록음악과 비교하면 그리 특이할 것은 없다. 어쩌면 이십대에 그의 성대를 울렸던 단순미학의 음악들이 오히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노래이자 몇 안 되는 러브송 가운데 하나인 '사랑해'를 여러분들이 듣게 된다면 속마음 깊이 꽁꽁 싸매둔 연한 로커의 음악적 속살도 느껴볼 수도 있다.

지난 두 장의 앨범은 EBS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접할 수가 있고 라이브 실황에서 더욱 더 빛이 나는 건 그리 똑똑치 못한 속사정일 수도 있다(좋은 음반 제작을 위해선 역시 돈이 필요하다).

대세가 잔머리 굴리기가 된 한국의 대중 음악판에서 이렇게 무뚝뚝하게, 그의 고향인 대구를 상기시키는 투박한 행보를 찬반에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2009년의 하반기에 서있는 그의 음악은 좀 더 똑똑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시대가 변했고 흐름이 달라졌으며 사람들의 눈과 귀가 이미 록의 전성기인 1966년 영국 라디오시장과 너무나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투박한 그의 음악적 선택에 대한 아쉬움

영화 '더 보트 댓 락트:the boat that rocked'에서 불법 라디오를 듣던 시대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이들이 많은 현실 또한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실상이다. 대형 기획사의 움직임에 기민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보트에 탔으나 노가 없어서 젓지 못하는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로커들은 개그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표현처럼 무언가 '씁쓸~'한 것이다.

한때 TV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을 통해 에릭의 테마곡 '터닝 포인트'로 알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시청률의 기록적인 저조로 인해 드라마가 갑자기 종영됐다. 이후에 청춘드라마 '일단뛰어'에서도 정문식의 음악이 삽입되었지만 그의 생활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음악에 더욱 더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신보 준비와 멤버교체 문제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더 문'은 올해 접근 용이성이 하락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온오프라인에서 활동을 이어가는데 2005년의 'launchin' to the moon'과 2006년의 'the big step on the moon'의 두 장의 앨범으로 대중에게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어질 앨범은 전 앨범의 히트트랙인 '뱉어(better)' '들이대' 'old fashion' 'make the sound'보다 더 '정문식스러운' 원초적 본능을 이끌어 낼 것 인지가 문제인 것 같다.

Let me find my way
Help me find my way
Take me to my way


그는 짧지 않는 시간 수백 번의 공연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노래를 대충 흘려보낸 적이 없다.
그는 짧지 않는 시간 수백 번의 공연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노래를 대충 흘려보낸 적이 없다.


구도자의 삶이어야 하는 로커의 일생

그의 홈페이지(http://cyworld.com/6months)에 들어가 보면 이 로커의 순정과 인생여정을 아주 흥미롭게 탐닉할 수 있다.

며칠 전 얘기하나를 언급하면서 흐릿하지만 아직은 또렷한 정문식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자.

지난해 24세의 나이로 군대를 제대한 한 래퍼가 있다. 그다지 반짝이지 않는 필자의 방송활동과 음악활동을 지켜보며 궁금증이 생긴 이 음악가는 호기롭게 내게 접근했다. 바로 다음 달이라도 몇 천 몇 만의 관중 앞에서 랩을 하고 싶다, 실제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혼자 이 친구를 만나기는 어색해 제2의 조언자로 사이키델릭레게밴드 '저기멀리'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친구를 대동해 동네 편의점에서 대면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그 신출내기는 다짜고짜 jay Z나 비욘세를 들먹이며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물론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는 확신에서 말이다. 막막해진 10년차 음악가인 우리는 그에게 독한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선망하는 미국의 'jay Z'나 '비욘세'는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그 친구들 아마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jay Z'는 공사판에, '비욘세'는 매점 근무원으로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격한 비약이었지만 로커를 포함한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단적으로 집어내서 일침을 가했는지 그 24세의 래퍼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로커의 삶은 자신의 음악처럼 매우 거칠고 투박하다.

한국음악시장에서 구도자일 수밖에 없는 어느 로커의 순정이 오늘따라 더욱 더 가슴 저미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겨울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 록커의 순정

내가 가는 길이 그대의 눈물로
가득 채워질 지라도
그대의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로
날 안아주오

이 뜨거운 여자를 만나
내 차가운 가슴 녹았네
너의 상기된 무릎이 날
행복하게해

평범할 수 없었던
나의 불같은 인생 속에
이제는 나도
악수를 청하고 싶어

로커 자존심에 눈물은
흘릴 수도 없고
또다시 무대로 올라가는
나의 힘겨운 발길

내가 가는 길이 그대의 눈물로
가득 채워질 지라도
그대의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로
날 안아주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sereeblue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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