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합니다’에서 과대망상증 환자 조만수 역을 맡은 현빈. 그는 “팬들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쾌감과 함께 ‘현빈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어’라는 가능성을 안겨준 영화였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 사진 더 보기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 과대망상 환자 조만수역 현빈
백지에 적으면 돈되는 상상? ‘가난은 불행 아닌 불편’ 믿어
남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편 정신과 치료 받은적 없지만 연기 되지 않을땐 괴로울 것 진짜 현빈(27)이 궁금해졌다. 백지에 원하는 금액을 적고 사인을 하면 진짜 돈이라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15세 이상 관람가) 속 현빈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진헌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지오와 너무 달랐다. 1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곱상한 외모에 번듯하게 차려입은 슈트와 어울리지 않게 구부정한 자세로 자분자분 말을 이어 나갔다.
―과대망상증 환자는 이제껏 연기했던 ‘돈 많은 집 도련님’과 다른 캐릭터다.
“어두운 영화인데 난 웃으면서 대본을 봤다. 병원 안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사는 만수가 흥미로웠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캐릭터를 백지 상태에서 만들어 간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연기를 잘했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하겠지만 얼마나 노력했냐고 물으면 ‘만족한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를 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초점 나간 눈이 인상적이다.
“해 본 적 없나? 한 곳만 응시하다 보면 뿌옇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오래 하면 머리가 아프고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후유증이 남지만.”
―만수는 어떻게 해서 ‘과대망상증’ 환자가 됐다고 이해했나.
“만수는 피해의식과 과대망상이 뒤섞인 경우다. 카센터도 있고 차 고치는 기술도 있는 만수가 미쳐 버린 건 형의 도박, 엄마의 치매 같은 외부 상황 때문이었다. 형에게 얻어맞고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당하자 공과금 고지서를 돈으로 착각하는 엄마의 행동이 만수에게 작용한 거다.”
―만수처럼 백지에다 금액을 적으면 돈이 된다고 믿고 싶을 만큼 궁핍했던 적이 있나.
“‘가난은 불행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이라던 중학교 때 선생님 말씀을 아직도 새기고 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대학 다닐 때 용돈이 30만 원 정도였다. 지금도 돈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지만 직업상 옷에는 투자하고 있다.”
사진 제공 언니네 홍보사 ―만수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잊으려 과대망상증 환자가 됐다. 본인에게도 피하고 싶은 현실이 있었는지.
“드라마 ‘아일랜드’가 성냥불이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모닥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인기는 그렇게 찾아왔다. 처음엔 마냥 좋았고 지금은 안 해본 게 보이는 시기다. 생각해 보니 클럽도 한번 못 갔고 아르바이트도 안 해봤다. 배우에겐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배우의 인기와 개인 사생활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니까… 나이 들어 후회만 안 했으면….”
―위대한 인물이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여기는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다른 건 못해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특별히’ 잘한다. 연기? 내 능력이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과 다르다면 여유가 생겼다는 것일까. ‘아일랜드’ 때는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면 지금은 두세 가지 카드를 갖고 들어간다. 예전처럼 대사를 달달 외우지 않아도 대본을 쓱 읽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황으로 연기를 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때 애드리브에 능한 김선아 씨를 보고 배운 것이다.”
―영화는 정신과 병동을 배경으로 한다. 살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나.
“없다. 모두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연기가 되지 않으면 괴롭다. 하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다. 입체영화를 찍기 위해 ‘블루 스크린’에서 연기를 한 할리우드 배우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들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대사와 연기를 하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본명이 김태평(金太平)이다. 이름처럼 태평한(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는) 성격인지.
“‘현빈’은 예전 소속사에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해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도 이제 나를 현빈이라고 부른다. 태평이라는 이름은 여유롭고 순박해 보여도 음절의 첫소리가 모두 거센소리다.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것 같다. 느긋한 완벽주의자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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