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지친 신문기자와 정신분열증을 앓는 첼리스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솔로이스트’. 사진 제공 영화사 하늘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느 날 공원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간다. 동상 앞에서 두 줄짜리 고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자는 나다니엘 에어스 주니어(제이미 폭스). 온갖 넝마를 몸에 걸친 그는 불안과 혼란에 빠진 듯 정리되지 않는 말을 쏟아낸다. 두서없는 단어들 속에서 ‘줄리아드 음악원’이라는 말을 알아들은 로페즈는 나다니엘이 그 학교 자퇴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고 나다니엘 이야기는 신문 1면을 장식한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솔로이스트’(Soloist·혼자 연주하는 사람)는 신문기자와 정신분열증을 앓는 천재 첼리스트의 이야기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대개 특종에 지친 기자가 불우한 천재를 발견하고 기사를 통해 그가 처한 환경을 바꿔놓는다는 식의 휴먼스토리로 전개된다.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로페즈는 호의를 베풀고자 그를 노숙인 공동체에 데려다주고 독자에게 받은 첼로도 선물하지만 나다니엘은 좀처럼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다니엘에게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로페즈가 생각했던 유명 첼리스트 강사와 아파트 연습실도 나다니엘에게는 되레 독(毒)이었다. 그는 ‘베토벤처럼 살고 죽기’를 꿈꾸며 자기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만 들을 뿐이다. 결국 영화는 둘을 통해 누가 누구를 변화시킨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얘기한다. 약과 알코올에 찌들어 살아가는 로스앤젤레스 노숙인들의 현실이 여기에 겹쳐진다. 나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 노숙인의 실태를 고발한 그의 기사는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만 선의의 기사도 때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로페즈는 깨닫는다.
안정된 삶이 주어질 때마다 “난 내 스스로의 삶을 살아”라며 해독 불가능한 세계로 빠져드는 나다니엘. 그 탓에 그와 로페즈의 사이는 삐걱거리지만 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오래전 아내 캐서린과 이혼한 채 팍팍한 삶을 살던 로페즈는 ‘한 가지’에 빠진 나다니엘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다니엘도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없다. 다만 친구가 되어 주는 것뿐’이라는 소박한 주제를 클래식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로 담담히 빚어냈다.
영화 ‘레이’에서 레이 찰스를 연기한 배우이자 가수 제이미 폭스가 나다니엘을,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로페즈를 맡았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감독 작품.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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