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소개도 범상치 않았다. '그때 그때 달라요'(2004년 SBS '웃찾사'의 한 코너로 영어 문장을 코믹하게 해석)의 주인공다운 멘트가 이어졌다.
'두시탈출 컬투쇼'에는 컬투가 15년간 개그공연 '컬투쇼'를 하며 쌓은 내공이 녹아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컬투쇼 대본을 슬쩍 보니 간단한 오프닝 멘트와 굵직굵직한 진행 순서, 소개될 사연이 전부다. 나머지는 컬투의 입담. 대본도 없이 매일 2시간씩 생방송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찬우는 '쌩뚱맞다'는 표정이다.
"(생방송 때문에) 마음껏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 빼고는 어려움 없는데요?"
▶청취자 사연 소개? 이곳은 개그 경연장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에요. 어떤 할아버지께서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시작하시더니 목소리가 커지며 신세한탄으로 발전하더군요. 승객들의 불쾌지수가 올라갔고 급기야는 한 아가씨가 큰 소리로 투덜거렸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미동도 않고 한의원에서 돌팔이 의사를 만나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시작하셨어요. 신장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신장은 좋아지지 않고 몸무게만 한달에 15kg 빠졌다는 것이었어요. 그 순간 투덜거리던 여성 승객들의 시선이 할아버지께 집중됐고 할아버지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어요. 한 아가씨가 용기를 내 할아버지께 한의원 위치를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거긴 안돼. 더 잘하는 곳을 소개해줄게'라고 고집을 부리셨죠. 하지만 여성은 할아버지를 설득해 한의원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할아버지, 아가씨로 목소리를 바꿔가며 사연을 소개한 후 김태균은 평가자로 돌변했다. "잔잔하네요. '거긴 안돼. 더 잘하는 곳을 소개해줄게'에서 끝났어야 합니다." 정찬우도 "물결같은 방송이네요" 하며 사연의 '질'이 떨어짐을 투덜거렸다.
컬투쇼에서는 매일 '사연 배틀'이 벌어진다. 이를 극대화한 코너는 '사연 진품명품'. KBS1 'TV쇼 진품명품'을 패러디한 것으로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하고 컬투와 게스트가 0원에서 10만원까지 가격을 매긴다. 재미있는 사연을 보낸 청취자는 10만원권 상품권을 받을 수 있지만 재미없는 사연의 경우 "이 따위 사연을 라디오에서 읽어줬으니 5만원 입금시키라" "왜 이 사연을 보냈는지 보고 싶으니 SBS 로비로 나와라"는 컬투의 독설을 감내해야 한다.
인터넷에는 '10만원 짜리 사연'을 모아 mp3로 제작, 우울할 때마다 듣겠다는 누리꾼들이 넘쳐난다. 일부 연예인들은 토크쇼에 출연해 '아는 동생의 이야기'라며 컬투의 사연을 인용했다가 누리꾼 수사대에 걸려 사과하기도 했다.
수험생 특집으로 진행된 26일 방송 현장. 1,2부에는 고3 남녀학생 32명을 초대해 반미팅을 진행했으며 3,4부에는 그룹 샤이니와 바다가
출연했다.
▶컬투와 호흡한 '쇼단원'만 3만 여명
컬투쇼는 출발부터 '국내 최초의 라디오 공개쇼'를 표방했다. '공개쇼'인 만큼 매회 청취자를 스튜디오에 초대한다. 지금까지 다녀간 쇼단원(컬투쇼 청취자를 지칭하는 말)만 3만 여명. 처음부터 방청객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빈 자리에 신인 개그맨이나 매니저가 방청객인 척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 평균 신청자만 200여 명에 이른다. 매회 40여 명을 초대하니 평균 5대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올 초에는 넘치는 방청객들을 최대한 많이 수용하기 위해 지하1층에 10평 남짓한 컬투쇼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해 이사했다.
초대된 방청객들은 단순히 '방청'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인터뷰를 통해 방송에 직접 참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마이크를 들이대면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시키는 건 다 한다는 것.
이날 미팅에 참가한 '춤짱' 허보람 양은 춤을 보여 달라는 컬투의 요청에 얼굴이 빨개져 마지못해 무대로 나갔다. 그리곤 차분하게 옷을 정돈하더니 "노래 좀…"이라며 배경음악을 요청, 엉덩이를 섹시하게 흔들었다.
남자 '얼짱' 김재욱 군은 컬투가 놀리는 투로 "얼짱이에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그냥… 그렇다니까…"라며 간단히 컬투를 제압했다.
'끼 있는' 방청객만 초대한 것은 아니다. 방청객들은 방송 시작 무렵에는 크게 웃지도 못할 정도로 긴장해 있다. 그런 방청객들을 위해 컬투는 노래, 광고가 나오는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지킨다. 첫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학생들이 앞만 보며 어색해하자 김태균이 질문을 던졌다.
"요즘은 한 반에 몇 명이나 되?" "30명 정도요." "이야. 내가 학교 다닐 땐 60명 정도였는데…."
그제서야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컬투가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는 이유는 방청객이 자연스럽게 호응해줘야 컬투도 힘이 나기 때문. 정찬우는 "재미가 덜한 사연이라도 방청객들의 호응이 있으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다"며 방청객 덕분에 방송의 재미가 산다고 귀띔했다.
4시가 되자 '온에어(On Air)' 표시가 꺼졌다. 방송이 끝난 줄 알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려고 하자 담당 PD가 "아직 안 끝났는데요"라며 붙잡는다. 스튜디오 안에는 컬투가 방청객 한 명 한 명과 사진을 찍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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