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놀라움’을 안겨준 올해의 영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영리한 ‘해운대’… 가공할 ‘아바타’… 섹시한 ‘쌍화점’…

《올해 국내 극장가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해운대’가 한국영화로는 다섯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넘어섰으며 ‘트랜스포머2-패자의 역습’ ‘2012’ ‘아바타’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강렬한 시각충격을 줬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연달아 ‘박쥐’와 ‘마더’란 회심작을 내놨고,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처럼 신선한 시도도 있었다. 올 한 해 이런저런 이유로 내게 ‘놀라움’을 안겨줬던 영화들을 꼽아봤다.》
①아바타=말하자면, 이건 이미지 쇼크다. 실사(實寫)에다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로봇들을 합성한 ‘트랜스포머’를 훌쩍 뛰어넘어, 아예 실사와 CG의 구분선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 전대미문의 영화. 살아있는 배우의 얼굴표정과 움직임을 센서로 포착해 CG 캐릭터로 재현해내는 모션 캡처 기술은 기존 ‘파이널 판타지’ ‘폴라 익스프레스’ ‘베오울프’ 같은 영화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CG로 100% 가상세계를 묘사하면서도 핸드 헬드(카메라를 들고 찍어 화면이 마구 흔들리는 사실적 촬영기법), 스테디캠(충격흡수 장치를 단 카메라를 들고 대상을 미끄러지듯 따라가면서 계속 이어서 촬영하는 기법) 같은 실사영화의 카메라워크를 구사하는 발상의 전환이 무서움을 느끼게 할 정도. 상상하는 모든 걸 이미지로 구현해내고, 기술 자체가 신(神)이 되어버린 할리우드의 가공할 파워를 실감한다.

②뉴문=놀라울 만큼 짜증났던 영화. 전작 ‘트와일라잇’의 흥행 성공에 기생하려는 이 황당무계한 영화는 흡혈귀 영화라기보단 하이틴 로맨스물이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흐르는 10대 소녀라면 공감할 만한 영화. “너의 숨소리 자체가 내겐 선물이야” “넌 내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인걸”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는 차치하고라도, 흡혈귀인 백인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여주인공 ‘벨라’의 행실은 차라리 분통을 터지게 만든다. 가만히 있던 (초콜릿 복근을 가진) 원주민 늑대소년을 실컷 유혹해 후끈 달아오르게 해놓고선, 늑대소년이 입을 맞추려 하자 “제발 이러지 마”라고 밀쳐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남자들이여, 일어나라!”는 구호가 절로 터져 나온다.

③10억=놀라울 만큼 제목을 잘못 지은 영화. (내게는 물론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서울 강남에 변변한 아파트 한 채 못 살 돈인 ‘10억’을 차지하기 위해 죽음의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등장인물들을 보다 보면 ‘니들이 수고가 많다’라는 측은지심만 생긴다. 반면 놀라울 만큼 제목을 잘 지은 영화도 있었다. 할리우드산 로맨틱 코미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와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그 경우. 두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애정행각과 갈등은, 정녕 ‘그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당신이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④해운대=놀라울 만큼 영리한 영화.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라며 대단한 스케일을 보여줄 것처럼 ‘미끼’를 던져놓고선 실제론 ‘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벌이는 애증의 드라마로 승부를 본 영화. 게다가 ‘착한 놈은 살고 나쁜 놈은 반드시 죽는다’는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의 권선징악 메시지를 살짝 비켜 가면서 ‘착한 놈도 죽을 수 있고 나쁜 놈도 살 수 있다’는 인명재천의 메시지로 차별화하는 센스.

⑤쌍화점=놀라울 만큼 야한 영화. ‘사랑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 아닌 육체’라는 진부한 메시지를 이토록 그럴듯하게 포장한 영화가 또 있을까? 솔직히 얘기하면 그냥 ‘야한 영화’인데도 ‘뭔가 깊이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시인 출신 유하 감독의 남다른 능력인 듯. 특히 조인성이 정사 장면에서 핏대란 핏대가 목에 전부 서도록 만드는 이른바 ‘목 핏대 연기’는 굉장한 감성적 폭발력을 갖는다. 또 케이트 윈즐릿이 주연한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도 굉장히 섹시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억척 여인 한나(케이트 윈즐릿) 앞에서 연하 남학생 마이클(다비트 크로스)이 벌거벗고 목욕하는 순간은 압권. 참기름 칠을 한 것처럼 고소하고 매끈매끈해 보이는 마이클의 순진무구한 나체는 남자가 봐도 마음을 빼앗길 정도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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