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능한 전우치 1인10역… 미친 연기때 가장 힘들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23일 개봉 ‘전우치’ 주연 강동원

곱상한데 말투 어눌하니 편하대요
얼굴 작아 여배우들이 되레 신경 써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 배우 강동원(28)이 햇살을 등지고 앉았다. 두루미처럼 긴 목과 다리. 옆으로 펼친 수첩보다 작은 얼굴이 반짝거렸다. “10등신이냐, 11등신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그런 질문들 있죠, 왜,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냐, 얼굴 때문에 캐릭터가 한정되지 않냐, 외모에 가려 연기가 저평가되는 게 억울하지 않냐 하는 식의 얼굴에 대한 질문들…. 하지만 저는 얼굴을 보면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부담스럽지도, 떨쳐내고 싶지도 않아요. 거울 속에서 ‘나’란 사람을 보면 막연한 자신감은 들지만….”

그 조막만 한 얼굴에 그는 여태껏 보여주지 않던 표정들을 담아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전우치’(12세 이상)에서다. 고전 소설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우치는 부적만 있으면 어떤 도술도 부릴 수 있는 악동 도사. 스승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족자에 봉인됐지만 500년 뒤 깨어나 서울을 누빈다.

―분신술로 10명의 전우치가 되는 1인 10역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표정이 제일 힘들었나요.

영화 ‘전우치’에서 악동 도사 전우치를 연기한 강동원에게 “도술을 부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분신술을 부려 당분간 좀 쉬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전우치에 이어 2010년 1월 개봉하는 ‘의형제’의 주연을 맡았다. 김미옥 기자
영화 ‘전우치’에서 악동 도사 전우치를 연기한 강동원에게 “도술을 부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분신술을 부려 당분간 좀 쉬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전우치에 이어 2010년 1월 개봉하는 ‘의형제’의 주연을 맡았다. 김미옥 기자
“미친 척 웃는 녀석이요. 10명 중에는 용감한 전우치, 의리파 전우치, 침 뱉으며 건방진 전우치 등 다양한 애들이 있었죠. 절반은 감독님이 만든 거고 절반은 제가 제안했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는 예고편을 보고 울었는데, 이 영화는 안 쓰던 얼굴 근육을 썼더니 제대로 놀아본 기분이에요. 술에 취할 때면 내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나 싶기도 하고….”

―아직 말투에 남아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곱상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데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도 의외입니다.

“깍쟁이처럼 생겼는데 말투가 어눌하고 투박하니 사람들이 되레 편하대요.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건 딱히 가고 싶은 과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담임선생님과 아버지 말씀대로 원서를 냈죠. 어릴 적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학생이었거든요.”

―얼굴이 작아 연기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얼굴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누리꾼들이 상대 여배우와 제 얼굴 크기를 비교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저보다 여배우들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요.”

―피부 관리나 다양한 시술도 받나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지 않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피부과에서 오라고 하지만 누워서 관리를 받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요. 얼굴에 찍어 바르는 게 싫어 촬영장이 아니면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요. 그리고 안 쓰는 근육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요.”

―그런데 옷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봄소풍 때 사회를 보게 됐어요. 엄마가 초등학교 때 사준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죠. 그런데 친구들은 청바지에 멋을 내고 왔어요. 그때 받은 충격으로 옷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돈이 없어 서울에서 온 사촌형 옷을 뺏어 입었죠.(웃음)”

영화 ‘전우치’. 사진 제공 영화사 집
영화 ‘전우치’. 사진 제공 영화사 집
―내년엔 스물아홉 살,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보일 시기인데요.

“20대 초반에는 얼른 서른 살이 오길 바랐어요.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인정해 줄 것만 같았고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죠. 20대 중반에 깨달았어요. ‘아, 이게 쉬워지지가 않는구나. 일도 생활도 나아지지 않는구나.’ 그때서야 ‘지금을 즐기면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얼굴 주름은 없지만 ‘있어도 그만’이에요. 하지만 스물일곱 살 이후 부쩍 떨어진 체력은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자료 제공: 영화사 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