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지하] ‘닥본사’여 잘 있거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9시 56분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콘서트 장면.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콘서트 장면.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닥본사'란 표현이 있다.

'닥치고 본방 사수'. IPTV며 인터넷 다시보기가 널리 퍼진 요즘에도 반드시 본방송을 보는 것이 드라마 팬의 덕목이란 뜻이다. 이유는 바로 '시청률' 때문.

본방을 봐야 시청률이 올라간다. 시청률이 올라가야 드라마가 좋은 평을 받고, 출연자나 제작진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고, 잘하면 연장방송도 될 수 있다. 마치 가수의 팬들이 인터넷 음악 사이트와 각종 불법 다운로드 유혹에도 불구하고 굳이 음반을 구입해 소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집이 시청률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닥본사'는 큰 의미 없는 행동이다. 현재 시청률 조사는 조사기관에서 선정한 표본 가구에 피플미터라는 조사기기를 설치하고 그 기기가 자동으로 집계한 데이타에 의해 집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청률 조사대상가구에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은 무엇을 보건 시청률 집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닥본사'가 팬들의 신성한 의무?

이런 조사방식 덕에 현재 발표되는 시청률은 공중파 전용이며, 가정의 채널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의 취향이 반영된다는 특징이 있다.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한 수목드라마 '아이리스'의 대항마로 편성됐던 '미남이시네요'는 10%대의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등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런 현상에 대한 현재의 해석은 '미남이시네요'가 소수의 팬 층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일종의 '마니아 드라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떨지 모른다. 채널결정권이 적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드라마를 보기보다는 인터넷으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컨텐츠를 보는 것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미남이시네요'의 주요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부모님 몰래 자기 방에서 TV를 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DMB 시청률을 조사하면 어떨까? 인터넷 다시보기나 IPTV가 포함된다면? 불법다운로드까지 조사될 수 있다면? '미남이시네요'는 사실 소수에게 어필하는 마니아드라마가 아니라 그저 편성대진표상 운이 없었던 인기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왜 IPTV와 DMB는 시청률 조사에서 제외될까?
어찌됐건 내년부터는 이러한 궁금증이 해소될 것같다. IPTV, VOD, DMB를 망라한 통합시청률 조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셋탑박스 2만여 대의 리턴패스데이터를 이용해 하나의 컨텐츠가 각 플랫폼에서 얼마나 시청되는지는 물론, 시간이동시청이나 옥외시청까지 아우르는 시청률을 산출할 수 있다고 한다. 세대간 표본의 문제 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분명 새로운 데이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기존의 TV가 아니라 DMB, VOD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방송을 시청해온 10~20대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아침드라마들은 순위가 다소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있기 보다 이동 중인 퇴근시간대 컨텐츠들의 시청률이 휴대폰 DMB에 힘입어 다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통합 시청률이 나온다 해서 10대 중심으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TV 외에 다른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보다 요즘 사람들은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시청률도 하락했다.

10~20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이 망라돼 조사된다 해도 이미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체제로 넘어간 사람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조사가 실상에 좀 더 가깝게 이뤄질 수 있고, 플랫폼간 다른 컨텐츠 소비형태가 파악이 된다면 다양한 방송 컨텐츠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10일 열린 IPTV 상용서비스 1주년 기념식. 동아일보 자료사진.
10일 열린 IPTV 상용서비스 1주년 기념식. 동아일보 자료사진.

방송의 소비틀을 다시 짜게 될 '통합시청률' 조사

통합시청률 산정시 다시보기를 언제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광고주를 위한 시청률 데이터는 아무래도 결과가 빨리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장기간 축적된 시청률 데이터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뿌려지는' 공중파 플랫폼에 분석과 관심이 집중될 때는 방송 컨텐츠에는 베스트셀러만 있을 뿐 스테디셀러가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간 방송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보는지는 알 수도 없고,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케이블TV에서 끊임없이 재방송들이 이뤄지는 컨텐츠들은 방송 컨텐츠란 단지 일회성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소구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IPTV나 인터넷 VOD 등 실시간이 아닌 매체에까지 그에 대한 집계가 이루어지고, 그 집계된 내용이 또 하나의 컨텐츠로서 유통되기 시작한다면 방송 컨텐츠에도 스테디셀러가 보다 명확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방송컨텐츠의 스테디셀러가 가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장르의 특성상 줄거리가 알려지거나 시의성이 없어도 상관없는 역사나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다시보기가 많은 유아용 프로그램의 상승이 예상된다. 다만 이런 것들은 기본 시청률이 높지 않아 현재에 비해 평가절상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무엇보다 변화는 드라마에서 나타날 것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는 '미드'나 '일드'의 소비형태가 한국 드라마에서도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도 어느 IPTV에서는 공짜로 보여주는 '종영드라마'와 유료로 보여주는 '명작드라마'가 나뉘어 있고 '미남이시네요'의 방송사 웹페이지에서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패키지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수익모델을 개발하는데 추가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보다 세분화된 데이터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러한 시도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닥본사'가 지나간 자리에 통합시청률 조사와 더불어 어떠한 유행어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박지하 / 칼럼니스트 jiha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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