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끝난뒤 허탈… 애인과 헤어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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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 ‘비담’역 맡아 데뷔 후 최고인기 누린 김남길

고교 졸업 후 바로 연극판 뛰어들어
“이제 서른… 중후한 연기 도전하고파”

지난해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할을 맡은 배우 김남길. 사진 기자가 “활짝 웃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게 어색하다”며 한참 입 운동을 한 뒤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원대연 기자
지난해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할을 맡은 배우 김남길. 사진 기자가 “활짝 웃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게 어색하다”며 한참 입 운동을 한 뒤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원대연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남길(29)은 연방 따뜻한 차를 들이켰다. 지난해 12월 종영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촬영 이후에도 밀린 광고와 화보 촬영을 소화하느라 단 하루도 못 쉰 데다 감기까지 걸렸다고 했다.

지난해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할로 열연한 그는 2003년 MBC 공채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술 솜씨에 코믹한 애드리브를 곁들이는 비담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짐승 비담’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영화 ‘미인도’ ‘모던보이’ 등 그가 출연한 전작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하지만 정작 그는 “대중적 인기를 위해 연기를 하지는 않았다”라며 덤덤한 모습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된 김남길을 만나 대중의 사랑을 흠뻑 받은 한 해를 보낸 소감과 올해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덕여왕’을 마친 기분은 어떤가.

“너무 허무해서 무언가를 계속 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더라.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기분이다. 시간을 두고 이별에 대해 아파하고 싶지만, 직업상 작품에 대해서는 이별을 아파할 수가 없다. 다른 일에 몰입하면서 잊어보려고 한다. 보통 쉴 때는 강아지 세 마리(웰시코기 두 마리, 시베리안허스키 한 마리)와 놀면서 지내는데 촬영 일정 때문에 강원 춘천 외가에 보냈다가 아직 못 데리고 왔다.”

―이름과 얼굴이 조금씩 알려지긴 했지만 ‘선덕여왕’ 이전에는 6년간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답답했나.

“그렇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얼굴이 알려져도 방송의 특성상 또 연기를 안 하면 잊혀질 수밖에 없다. 그런 걸 두세 번 느꼈고 매번 그러려니 했다. 대중성을 너무 외면하지도 않았지만 상업성을 띠고 연기하는 건 배제했다. 내가 추구하는 길을 묵묵히 갔는데 이번 드라마로 오히려 ‘변수’를 만났다고나 할까.”

―비담 역할로 이렇게 뜰 거라고 예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너무 엉뚱하고 내가 상상했던 비담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당황했다. 내가 중간에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면 드라마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어서 거부감 없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김남길은 고교 졸업 후 바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리어왕’ 공연을 보며 느낀 감동이 그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공연을 보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배우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함께 울고 웃는 관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연장 바닥부터 쓸며 기초를 닦던 그에게 한 선배는 “좀 더 넓게 연기를 하고 싶으면 방송사 공채시험에 도전해 보라”고 충고했다. 도전 결과 SBS와 KBS에는 떨어졌지만 MBC에 합격했다. 연기 전공으로 1999년과 2001년 두 번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깨달음을 얻기보다 무조건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어서” 지금은 모두 그만둔 상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은 카리스마 넘치는 무술 실력에 의외의 엉뚱함도 지닌 다양한 비담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진 제공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은 카리스마 넘치는 무술 실력에 의외의 엉뚱함도 지닌 다양한 비담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진 제공 MBC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30대에 대한 두려움이 큰가, 기대감이 큰가.

“기대감이 더 크다. 나이 먹는 건 두렵지만(웃음). 어린 나이에는 서른 살 넘어 갖게 되는 눈빛을 흉내는 낼 수 있지만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서른이 넘는다는 건 내가 원하는 중후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2008년에 예명 ‘이한’을 버리고 본명 ‘김남길’을 쓰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한 연기를 하고 싶었다. ‘이한’이라는 엔터테인먼트적이고 가식적인 이름 말고 사람들이 ‘남길아’라고 불러줄 때 배우로서 더 솔직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20대를 돌이켜보면 좀 더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살지 못해서 내 마음에게 미안하다”며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희로애락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사람들이 늘 봐오지 않은 인물, 남들이 해보지 않은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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