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케이블 채널 쇼타임의 '덱스터'가 2010년을 2주일 앞둔 지난 12월13일 시즌4의 막을 내렸다. 시즌10도 흔한 미국의 TV시리즈 세계에서 고작 네번째 시즌의 종방이 뭐그리 대단하겠냐마는, '덱스터' 시즌4 마지막 에피소드는 '덱스터'의 4개 시즌을 통틀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쇼타임이 유료 채널인지라 그 숫자는 공중파의 인기 시청률과 비교하면 한참 밑도는 26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60만이라는 숫자보다 260만명을 TV 앞으로 모이게 한 이야기의 힘이다. '덱스터' 시즌4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반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연애, 바람, 결혼을 거쳐 육아에 이른 \'덱스터\' 시즌4 포스터
▶ 덱스터, 세상의 얼룩을 지우는 연쇄살인범
'덱스터'는 소설가 제프 린제이의 역발상에서 태어난 캐릭터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어둠 속의 덱스터' '끔찍하게 헌신적인 덱스터'로 이어진 3부작 소설은, "연쇄살인범은 모두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서 탄생했다. 덱스터는 법의 심판은 피했지만 죽어 마땅한 질 나쁜 범죄자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기준'있는 연쇄살인범이다.
아이러니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법이 청소하지 못한 세상의 얼룩을 지우는 그의 직업은 범죄현장 혈흔분석가다. 그는 어린 시절 눈앞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트라우마로 살인충동을 얻었다. 범죄현장에서 그를 발견해 입양한 경찰 해리는 덱스터의 이상한 습성을 읽어냈지만, 그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가는 대신에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인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렇게 덱스터는 자신 안의 숨쉬는 괴물을 다스리게 됐다.
전체 시리즈가 종영된 것도 아닌데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이른지도 모르지만, 시즌4까지 지켜본 결과, '덱스터'의 모든 시즌을 아우르는 어떤 공통점들을 발견했다. 첫째, 모든 시즌에는 미디어에서 집중하는, 그리고 경찰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화려한 별명을 가졌다. 둘째, 모든 시즌에서 덱스터는 자신과 꼭 닮은 사이코패스를 만난다. 그들은 덱스터의 내면을 이해해주지만 결국 덱스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다. 셋째, 모든 시즌에서 덱스터를 수상하게 여기는 존재가 있다. 그저 덱스터를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직관이 발달한 경우도 있고, 범죄자가 범죄자를 알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 존재들이 덱스터의 비밀에 가까워지면 죽게 된다. 그렇게 덱스터의 비밀은 시청자들과 덱스터만 아는 흠결 하나 없는 상태로 보존된다.
▶ 시즌1부터 시즌4까지 '덱스터'를 거쳐 간 연쇄살인범들
① 시즌 1: 아이스 트럭 킬러 (Ice Truck Killer)
'덱스터' 시즌4의 그 기막힌 결말을 이야기하려면 뜸을 좀 들여야 한다. 그래서 시즌1부터 드라마를 거쳐 간 살인마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워낙 많은 데다가 그 관계가 꼼꼼하게 잘 쓰여진 드라마라 인물 간 에피소드를 모두 정리하기는 힘들기에, 각 시즌을 이끌어간 굵직한 킬러들과 사건들을 정리하면, 시즌1에서 등장하는 킬러는 덱스터(마이클 C. 홀 분)의 친형 브라이언이다. 혈흔분석가인 동생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시체의 피를 모두 뺀 뒤에 조각조각 자르고 얼음에 마론 인형을 넣어두고 가기에 '아이스트럭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컨테이너에 갇혀 엄마가 전기톱에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브라이언은 덱스터와 같은 종류의 살인충동을 얻었고, 오래 동안 떨어져 지낸 동생에게 사이코패스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브라이언은 덱스터에게 다가서기 위해 검시관인 척 행동하며 덱스터의 여동생 데브라(제니퍼 카펜터 분)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킬러 덱스터, 그의 직업은 혈흔분석전문가다.
② 시즌 2: 선착장의 도살자 (Bay Harbor Butcher)
시즌2는 덱스터가 선착장 강바닥 깊숙이에 던져서 숨겨 놓은 시체들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시작된다. 덕분에 덱스터는 '선착장의 도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게 된다. FBI에서는 특수요원을 파견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경사 독스는 덱스터의 어두운 기운을 읽어내 그의 숨통을 죄어온다. 방심하면 인생이 끝날 위기에 놓인 덱스터는 수사의 방향이 자기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데에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시즌2에서 덱스터는 시즌1부터 평범한 사람인 척 하려고 사귀어온 여자친구 리타(줄리 벤즈)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덱스터는 리타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불편하게 하는 전 남편 폴이 마약을 사용하는 것처럼 꾸며 감옥으로 보내는데, 그 때문에 리타는 덱스터가 약물중독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권한다. 그런데 등 떠밀려 나간 중독자 모임에서 라일라라는 여자가 나타나고 덱스터는 리타와 멀어지게 된다.
③ 시즌 3: 스키너 (Skinner)
시즌 3은 '스키너'라는 연쇄살인범을 중심에 둔다. '스키너'는 희생자의 피부를 벗겨 과다 출혈도 죽게 만드는 잔인한 범죄자로, 덱스터는 경찰로서 스키너에 대한 수사를 하던 중에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얻게 된다. 지방검사 미구엘 프라도(지미 스미츠)가 바로 그 친구로, 덱스터와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미구엘은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는 동안 덱스터의 비밀을 알게 되고 살인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다. 법을 피해간 범죄자를 죽이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한 미구엘은 범죄자를 변호함으로써 법집행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변호사를 죽인 것이다. 난생 처음 우정을 나눌 친구를 만났지만, 괴물이 되어 날뛰는 그를 두고 볼 수 없기에 덱스터는 직접 미구엘을 처단한다. 그리고 우정과 배신을 겪은 덱스터는 항상 자기 곁에 있던 리타와 리타가 임신한 그의 아이를 위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약속으로 리타와 부부가 된다.
④ 시즌 4: 트리니티 킬러 (Trinity Killer)
시즌 4는 좀더 정교하다. '죽이는 아빠'(Killer Daddy: 끝내주는 아빠와 살인자 아빠라는 중의적인 의미)라는 광고문구로 이제는 아빠가 된 덱스터의 피곤한 삶을 전면에 내세운 시즌4에서는 '트리니티 킬러'와 '여행객 살인자'라는 두 거물 연쇄살인마를 등장시킨다. 관광객을 상대로 절도한 뒤 살인하는 단순한 여행객 살인마와 달리, 트리니티 킬러(이하 트리니티)는 젊은 여인을 욕조 안에서 면도칼로 베어 죽이고, 두 아이의 엄마를 공사 중인 고층 건물에서 스스로 뛰어내리게 만들며, 두 아이의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서 죽이는, 세 가지(트리니티) 살인을 완성한다.
트리니티의 뒤를 좇던 덱스터는, 그가 아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존경 받는 남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봄으로써 가정, 사회, 그리고 살인이라는 3가지 생활의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트리니티를 롤모델로 생각하게 되면서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치게 된다. 하지만 덱스터의 우유부단한 판단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손으로 트리니티 킬러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한 덱스터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가서야 성공적으로 그의 목숨을 거둔다.
깊은 곳까지 나눌 친구 미구엘을 만나지만, 그것도 영원하지 않다. '덱스터' 시즌3의 한 장면.
▶ 다음 시즌을 꼭 보게 만드는 100점짜리 결말
하지만 시즌4는 처음에 설명한 것처럼 기막힌 반전을 준비했고, 그 반전은 가혹했다. 덱스터가 트리니티를 손에 넣기 전에 그는 이미 덱스터의 부인인 리타를 희생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시즌 내내 쫓아 다녔던 트리니티 킬러를 드디어 죽이고, 출산 때문에 미뤄두었던 리타와 조금 늦은 신혼여행을 가려던 덱스터는 짐을 가지러 돌아온 그의 집에서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핏물이 가득한 욕조에 싸늘하게 식어있는 리타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핏물이 흘러넘친 욕실의 바닥에는 꼭 어린시절의 덱스터가 그랬듯 그의 핏줄인 해리슨이 주저앉아 울고 있다. 하지만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다. 분노도 슬픔도 없다. 그저 피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어린 아들을 안아 올리며 "이것은 운명이다"라고 되뇌일 뿐이다. 지독한 운명이다. 덱스터를 괴물로 살게 했던 그의 피 묻은 과거가 그의 아들에게서도 또 한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슬픈 결말이 덱스터에게는 가혹한 운명일지 몰라도, TV시리즈 '덱스터'로서는 제대로 선택한 반전이었다. 시청률을 제대로 확보했음을 물론이고, 시즌5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TV시리즈들은 시즌 파이널에서 엄청난 비밀을 공개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만들거나, 시청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주인공에게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선사한다. 캐릭터를 절벽에 매달리게 하는 결말이라고 해서 '클리프 행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 속에는 다음 시즌에도 제발 좀 봐달라고 시청자에게 매달리는 절실함이 감춰져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결말이 얼마나 세련됐느냐가 그 시리즈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정도인데, 그런 점에서 '덱스터' 시즌4의 결말을 개인적으로는 '충격, 신선, 기대'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100점짜리 결말이라고 하고 싶다. 그 동안 사이코패스이면서도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오빠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가며 세상에 적응해 오던 덱스터를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락에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결국 덱스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덱스터'의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는, 벼랑 끝에 선 덱스터가 선택하게 될 어떤 답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살인을 하겠지만, 깊은 곳에 숨겨둔 그의 어둠은 한층 더 어두워질 것이다. '덱스터' 시즌5는 2010년 가을로 방영을 예약해 둔 상태다.
▶ 드라마 밖의 또 다른 이야기
마이클 C. 홀과 제니퍼 카펜터, 드라마 밖에서 부부가 되었다.
사실 시즌 4개를 칼럼 하나에 우겨넣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드라마 내적인 이야기는 물론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마무리된 것 같다. 가장 최근 소식은 아니지만, 재밌는 소식을 전하자면 덱스터의 여동생 데브라로 출연하는 제니퍼 카펜터와 덱스터 역할의 마이클 C. 홀은 '덱스터'가 인연이 되어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2009년 부부가 됐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가 덱스터만 사랑해줬다는 결핍을 가지고 자란 데브라는, 덱스터가 시즌 4개 동안 리타와 착실한 관계를 맺어 가정을 꾸린 것과는 다르게, 시즌 1에서부터 '아이스 트럭 킬러'와 약혼을 하는 바람에 안정된 연애라고는 해볼 틈이 없었다. 시즌2에서 갑자기 떠나버린 런디와의 실연을 추스리고 시즌 3에서 안톤이라는 연인을 얻었나 싶었는데, 시즌 4에서 갑자기 돌아온 FBI 요원 런디 때문에 안톤과 헤어지고, 돌아온 런디마저도 데브라가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정말 지지리 복도 없다는 말은 데브라를 위해서 나온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밖에서의 제니퍼 카펜터는 보란 듯이 마이클 C. 홀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렀으니, 드라마 속 안타까운 애정운을 그렇게 보상받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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