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가붕가레코드는 1년 전 '싸구려 커피' '별일 없이 산다' 등으로 파란을 일으켰던 '인디계의 서태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소속사다. 그리고 고건혁(29)이라는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익숙한 곰 사장은 그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다.
장기하와 같은 대학, 동갑내기인(서울대 심리학과 00학번) 곰 사장은 아주 잠깐 뮤지션을 꿈꾸기도 했지만 스스로 음치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를 바꿨다. 대신 특유의 "사람 꼬드기는 기술"을 이용해 대학시절 학내 음악 동아리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2005년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를 차리게 됐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얼굴마담,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곰사장은 틈틈이 객원멤버로 활동한다.
초기 2~3년을 인디씬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붕가붕가레코드는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를 업고 급부상했다. 2009년 붕가붕가레코드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50배가 넘게 성장했으며, 레이블의 규모도 커져서 소속 팀도 늘었다(현재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장기하와 얼굴들 외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치즈스테레오, 아마도 이자람 밴드, 불나방스타 쏘세지 클럽, 아침, 상상의 여름 등이 포함돼 있다).
▶ '사람 꼬드기는 기술'로 시작한 인디 레이블
장기하의 인기에 대해 곰 사장 본인은 "도라지인줄 알고 키웠는데 산삼이 난 격"이며, "소속사가 한 역할은 1할이 채 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 성공과정에서 곰 사장이 이끄는 붕가붕가레코드의 기획과 마케팅 능력도 적잖은 관심을 받았다.
본래 개와 고양이의 자위행위를 칭하는 말이었지만 "혼자 힘으로 사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심오한(!) 철학이 더해진 '붕가붕가'라는 독특한 이름, 그리고 이들이 내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모토('지속가능한 성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최저 제작비를 위해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을 하고 직접 CD를 구워 포장을 하는 붕가붕가 레코드의 '수공업 소형음반 제작방식' 등은 장기하의 노래 못지않게 신선한 것이었다.
곰 사장과의 인터뷰는 장기하의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인 2009년 초 이후 두 번째다. 곰 사장이라는 호칭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외모와 달리, 조금은 높은 톤에 빠른 말투, 달변은 여전했다. 다만, 예전보다는 조금 피곤해보였다.
- 어떻게 지내나?
"농한기라 한가하다."
- 농한기?
"사업이 해보니까 농사랑 비슷하더라. 결과가 하늘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거."
- 조금 지쳐 보인다. 요즘 어려운가?
"어렵고 말고 할 건 아니다. 아직 어려운 시기를 거치진 않았으니까.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 이전에는 취미로 해서 한 푼도 들어간 게 없다. 예전엔 잃을 게 없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장기하 얼굴들이 잘 되니까 조금씩 잃을 것들이 생겼다. 소박하지만 녹음실과 합주실도 생기고 상근 스태프도 생겼다. 그 사람들 먹여 살려야 하는데 현재 마땅한 수입원은 없는 상태다. 사실 올해 하반기부터 장기하를 제외한 소속 뮤지션들의 공연이 적자를 보거나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었다. 이제부터 어려울 일이 생겼다."
▶ 장기하라는 '인디계의 서태지' 등장시킨 장본인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등을 모토로 내 건 붕가붕가레코드의 목표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붕가붕가레코드 인지도 상승에 기여한, 장기하와 얼굴들.
곰 사장은 종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십대 쯤 됐을 때 18평 정도의 아파트에 살면서 보험 두세 개 들 수 있으면 만족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어찌 보면 소박해보이지만, 한국 인디 음악시장에서 그 정도의 '건전한 생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붕가붕가 레코드 구성원은 생업으로 몸담는 상근 스태프와 "빡센 취미생활"로서 활동하는 스태프로 나뉜다. 곰 사장은 후자다. 그는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주 5일은 대전에서, 나머지 이틀은 서울에서 바쁘게 취미생활을 하며 보낸다.
"8명 중 5명 정도를 상근 스태프로 두려면 매출이 10억~20억 나와야 되는데 올해 우리 예상매출은 1억 되면 성공이다. 극소수 핵심인력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일로 먹고 살아야한다. 게다가, 내 경우엔 이 일만 하고 살고 싶진 않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악에 잡아먹히고 싶진 않다."
- 회사를 계속 가지고 가긴 할 건가?
"망하기 전까진.(웃음)"
- 포기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책임감 때문인가?
"그건 책임감 이전에… 이 일이 내가 아는 것 중엔 가장 재미가 있는 것 같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거다."
- 하긴 키우는 뮤지션들이 주목받고 인기를 얻으면 보람될 것 같다.
"한땐 그랬다.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이 알려지고 음반 판매 올라가는 것… 근데 한두 달 지나니까 시들해졌다. 기본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가 우리 회사가 일궈낸 게 아니라 더 그렇다. 그 팀이 좋은 음악을 했기 때문이고, 외부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에 전혀 예측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성공이었다. 2009년 정규 1집 나왔을 즈음엔 재미가 시들해졌다."
- 그럼 어떤 게 재미있나?
"장기하와 얼굴들이 인기를 얻은 후부터는 그를 계기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레이블의 규모가 커지고, 그들과 새로운 음반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치즈스테레오, 아침, 불나방스타쏘세지 클럽 등이 이 때 들어왔다."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 곰사장. 주 5일은 박사과정 대학원 생으로, 나머지 이틀은 빡쎈 취미 생활을 한다.
▶ "서울대라는 간판은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다"
-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 뮤지션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영입할 팀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대표 취향에 따르나?
"그건 아니지만, 대표의 취향이 많이 작용하긴 한다. 공통점이라면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로 조립하는 게 많은 거 같다. 예컨대, 장기하 음악도 거칠게 말하면 산울림, 송골매 음악을 베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따라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정서를 담으니까 다른 거다. 또, 뜬 구름 잡는 얘기 싫어하는 것도 비슷하다. 가사도 생활 밀착 적이고 구어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편이다."
- 장기하도 그렇고, 곰 사장도 그렇고…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서울대 출신이 많다. 서울대라는 간판은 음악사업(?)에서 혹은 인디씬에서 활동하는데 이득인가 손해인가.
"이득이라면 한 번 더 주목받는다는 점(어, 서울대야?)이고, 손해라면 음악 외적인 점을 더 본다는 점(아, 서울대로군)이다. 그래서 어느 쪽인지는 잘 판단이 안 선다. 가능하면 사업에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 그나저나, 장기하와 얼굴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
"11월 단독공연 마지막으로 끝냈다."
- 활동중단? 언제 다시 나오나?
"하고 싶을 때 나온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부럽지 않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붕가붕가레코드에서 가장 출중한 유머를 자랑한다.
- 음악은 계속 하는 건가?
"음악을 계속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할 거다. 앞으로 (장기하와 얼굴들 활동에 대해) 회사차원에서 왈가왈부 할 건 없을 거다."
- 솔직히, 장기하가 계속 활동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나?
"물론 없진 않다. 반반? 30% 정도? 특히나 요즘엔 현금줄이 없으니까 그런 생각 한다. 또 30%는 (장기하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착취한다고 할까. 그리고 30%는 장기하와 얼굴들 없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팀이 여덟 팀인데 나머지 일곱 팀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머지 팀을 끌어올리고 싶다. 물론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진 못해도 최소한 인디음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어느 정도 음악을 하면서 기본적인 수입은 보장받을 수 있는 위치로."
- 기획이나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 뮤지션들과 갈등도 있을 것 같다.
"갈등이 없지 않은데 납득할만한 수준에서 해결한다. 회사가 조언은 하지만 결국 아티스트가 뭘 원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의 정의가 '음악인의 표현의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건전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제공'하는 거다. 즉, 생계가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표현의지가 더 중요하다. 그걸 버리고 가고 싶진 않다."
▶ "음악에 잡혀 먹히기도 싫지만 사업에 잡혀 먹혀도 안 된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는 수공업 소형음반과 공장제 대형음반 두 종류로 나눠 음반이 나온다. 공장제 대형음반은 일반 음반처럼 공장에서 1000장 이상 찍지만 수공업 소형음반은 3, 4곡 정도만 녹음하고 직접 CD로 구워 제작한 후 포장도 전 직원들이 손으로 직접 한다. 주로 처음 음반을 내는 뮤지션의 경우 대부분 비용부담이 적은 수공업 소형음반을 낸다.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팔리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다. 하지만 무리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하니까 자꾸 무리한 것을 강요하게 되는데, 그럴 바엔 다른 데서 돈을 벌어 충당하는 게 낫다. 음악에 잡혀 먹히는 것도 싫지만, 사업에 잡혀 먹히면 안 된다."
곰 사장을 비롯해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뮤지션이나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소위 88만원 세대에 해당한다.
- 한참 장기하 노래가 화제가 됐을 때,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담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기하 본인은 해석은 자유지만, 관심 없다고 한다."
- 당신은 어떤가?
"내 경우, 사회운동 측면에서 이 사업을 시작한 면이 있다. 20대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랄까."
소리꾼 이자람이 보컬로 참여하는 아마도 이자람 밴드. 밴드이름을 묻는 질문에 “아마도, 이자람 밴드 정도?”했다가 이름이 돼 버렸다.
- 붕가붕가레코드 초창기 나왔던 청년실업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앨범인가?
"아니, 그건 오해다. 그 제목은 즉흥적으로 지은 거다. 팬들이 와서 이런 거 팔아먹지 말라고 지적한 적 있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누구누구의 대변자 입장에서 사회적인 의식 혹은 이데올로기를 정의하고 비평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데 이런저런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극복하려 하는데 또 이런 방식이 있다는 걸 하나의 모델로서 보여주는 거다.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사회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동시대, 또래의 사람들에 대한 애착 같은 게 있나?
"학생운동을 해서인지 연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사업을 하면서 점차 외부에 배타적으로 변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도 그렇긴 하다. 그런데 연대의 대상이 세대처럼 넓은 범주로 묶이는 건 싫다. 배짱이랄까, 센스가 맞는 사람과의 연대? 식사로 따지면 같은 입맛을 가진, 술자리로 하면 같은 주량을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에 관심이 있다."
▶"그만두는 것보다는 타협하는 게 낫다. 오래가야 하기에…"
붕가붕가레코드는 2010년 "포스트 장기하와 얼굴들"의 시즌을 맞았다. 소속뮤지션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아마도 이자람 밴드, 눈뜨고 코베인 등이 올 상반기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혹여 예전만큼 화려하고 큰 히트를 내지 못할지라도, 붕가붕가레코드의 딴따라질은 "별일 없이" 계속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한국나이로 서른이 된 곰 사장은 요즘 앨범제작이나 공연에 시큰둥해진 자신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재미가 없을 때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 앞으로 큰 재미가 계속 있을 순 없을 텐데, 작은 재미도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어야 오래 계속 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걸 시도해야겠지. 그렇게 계속 5년, 10년을 가다보면 우리 딴따라질도 조금 넓어지고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오래오래 이뤄내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나 정신? 뭐, 그런 걸 '짧게' 정리한다면…
"잘 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타협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그만두는 것보다는 타협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잘 되든 안 되든 적당한 평정심을 갖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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