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남자X2, ‘의형제’ ‘용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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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7일 15시 00분


충무로에서 뻔한 '버디' 영화가 반복되는 까닭은?

한 때 버디 영화가 하나의 흥행공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버디 영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투캅스'에서 시작해 '친구' '공공의 적'으로 이어진 이들 남자 영화의 흥행은 '야수' '싸움의 기술' '사생결단'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열혈남아' 등 수를 세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작품 제작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금 넓은 의미로 보자면 '왕의 남자'와 '살인의 추억'까지,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함께 받은 굵직굵직한 영화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2년 전까지도 유효했다. 나홍진이라는 신인 스타 감독을 배출한 '추격자'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강철중' 등이 꾸준히 사랑을 받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까지를 포함하자면, 2008년 한국영화 흥행 Top 10 안에 든 버디 영화는 4편이나 된다.

또 한편의 남성형 영화가 관객을 찾는다. 설경구와 류승범이 묘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용서는 없다’.
또 한편의 남성형 영화가 관객을 찾는다. 설경구와 류승범이 묘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용서는 없다’.


▶ 꾸준하게 반복되는 '버디 영화', 최근 성적은 곤두박질

하지만 지난 해 관객들의 주목을 받은 버디 영화는 '거북이 달린다' 한 편 외에는 없다.

여성 팬들을 탄탄하게 확보하고 있는 하정우와 일본의 대표 꽃 미남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했던 '보트' 같은 합작 영화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버디 영화가 안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꾸준히 만들어졌다. 단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버디 영화는 남자들의 세계를 다룬다. 그 곳에는 말랑말랑한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터프함이 있고 진한 우정이 있고 화려한 액션이 있다.

남자라면 열광하고 여자라면 동경하기 마련인 독특한 남성들의 세계가 이러한 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힘이었다. 처절할 수는 있지만 궁상맞지는 않은, 그야말로 폼 나는 것이 이들 영화의 특징이자 볼 거리였다.

더구나 아시아를 강타했던 한류 배우들의 등장은 이러한 버디 영화의 제작에 힘을 보태주었다. 권상우, 이병헌 같은 배우는 이름만 등장해도 해외에서는 선 구매 요청이 폭주했고, 특히 한국영화의 가장 큰 시장인 일본에서는 이들의 남성다움이 여성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한국 남자들의 건강하고 터프한 이미지가 강력한 성적 소구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객들은 이러한 영화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진부함이었다.

진부함은 영화의 가장 큰 적이다. 영화 평에 있어 '그저 그래'란 말은 '보지 마'로 읽고, '뻔하다'는 말은 '절대 보지마'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즉 진부하다는 평가는 영화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선고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버디 영화는 안타깝게도 관객들에게 이 '뻔하다' 는 인식을 주고 말았다.

남자 영화는 그 특성상 한정된 장르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들 영화의 대표적인 키워드를 꼽아보자. '의리'가 부각되고 '정의'가 빛을 발해야 하며 현란한 '액션'이 등장해야 한다. '잔인함'으로 자극을 주고 화끈한 '대결'로 마무리하면 금상첨화다.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자연히 액션, 스릴러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형 버디 무비의 표준을 제시한 안성기와 박중훈. 사진=영화 ‘라디오 스타’.
한국형 버디 무비의 표준을 제시한 안성기와 박중훈. 사진=영화 ‘라디오 스타’.


▶ 의리, 액션, 잔인함, 대결…진부함의 퍼레이드

엄밀히 말하면 남자 영화라는 코드가 액션, 스릴러물의 전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장르의 기획에 남자들의 투 톱 체계가 차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순서야 어찌되었건, '버디 무비=액션 스릴러'라는 공식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고착된 것은 사실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와 같이 여성들을 내세운 액션물이 실패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선과 악을 대변하여 싸우는 두 남자, 엇갈린 운명 속에 시험대에 오르는 의리와 우정, 법보다 가까운 주먹의 세계, 보육원이나 마약 밀매 등 일상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소재. 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 버디 영화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공통된 테마였다.

그리고 이 테마들은 다양하게 발전하기 보다는 점점 세지고 거칠어지는, 남성성만이 강화되는 한 방향으로 흘렀다. 내용적으로 보자면 '한국 버디 영화=마초 영화' 라는 또 하나의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이렇게 비슷한 장르에, 비슷한 스토리, 비슷한 배우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버디 영화들이 양산되는 동안 관객들은 흥미를 잃어 갔다. 소위 '약발'이 다했다.

특히나 남성들의 세계에 대한 체감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 관객의 경우 그 부침이 더욱 심했다. 한 때 사회적 현상이라고까지 불리었던 조폭 영화의 흥행이 하나의 유행으로 끝났듯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지 못한 버디 영화 역시 '홍콩 느와르의 변종'으로 허무하게 마감될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는 충무로의 제작 시스템에도 책임이 있다. 기획과 제작 등 모든 분야에서 충무로의 인력 구성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남성들의 판타지이자 로망인 버디 영화는 어찌 보면 계속적으로 자생할 수밖에 없는 토양을 갖춘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예전에 버디 영화로 성공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한번 각인된 이 기억은 '그래도 만들면 통하지 않겠느냐' 라는 배짱으로 잘못 발전하기 쉽다. 수요가 있음으로 인해 공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급을 하기 때문에 수요를 할 수 밖에 없는 왜곡된 시장 논리가 여기서도 생겨났다.

버디 영화는 일종의 형식이고 형태이다. 쉽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트렌드와는 다르다. 우리의 버디 영화도 한 가지 형식에만 매달려 스스로 한계를 지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가능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두 남자 배우 송강호와 강동원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의형제’ 지겹도록 반복되는 송강호의 터프한 이미지가 부담스럽다.
대표적인 두 남자 배우 송강호와 강동원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의형제’ 지겹도록 반복되는 송강호의 터프한 이미지가 부담스럽다.


▶ 제2의 안성기-박중훈 콤비, 어디 없나?

코미디, 액션, 스릴러, 가족, 드라마, 판타지 등 폭 넓은 장르로 제작되며 만인에게 사랑 받고 공감 받는 할리우드 영화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또한 '투캅스'와 '라디오 스타' 등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연기 변신을 보여주고 있는, 그 이름의 조합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 효과를 내게 된 제 2의 안성기-박중훈 콤비 역시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올 해에도 버디 영화는 계속 관객들을 찾을 것이다. 강동원, 송강호 주연의 '의형제,' 김윤석, 하정우와 다시 뭉친 나홍진 감독의 '황해,' 승부사 강우석 감독의 연출 복귀 작 '이끼' 등이 개봉대기 중이거나 제작 중이며, 류승완 감독과 이현승 감독도 걸출한 남자 배우들을 내세운 신작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2010년 버디 영화의 첫 테이프를 '용서는 없다'가 끊었다. 진한 남자 냄새가 나는 두 배우 설경구와 류승범의 범죄 스릴러물로, 과학 수사대의 부검의와 연쇄살인을 예고하는 살인마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전형적인 한국형 버디 영화로 보이는 이 작품을 두고 역시나 진부하다는 평가와 반전이 볼 만하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관객들의 최종 평가가 어떠할 지 더욱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2010년, 이들 영화의 성공여부는 한국 버디 영화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겉멋만 든 속 빈 강정 이라는 혹독한 비난 뒤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쇄신된 모습으로 다시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가 될 것이냐,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주현 / 영화진흥위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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