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취미/신문 볼 때도 스포츠면 먼저 읽고요…짬나서 TV보면 스포츠채널 틀어놓죠
■ 나의 사랑/이성에 눈뜬 열아홉살, 운명적 만남…아낸 밤 11시에도 굶으며 기다려요
■ 나의 음악/서울시향, 세계정상까지는 멀었지만 더잘 할 희망있어 훨씬 더 재밌어요
안에 들어서니 정명훈(57)은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의 뒤로 고풍스러운 책상 하나,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정명훈은 추운지 “잠시만”하더니 두툼한 가디건을 껴입고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실내를 둘러보았다. 1년 전쯤 이 방에 들어와 본
일이 있다. 그 때는 방주인이 없었다.
취재용 노트북 대신 좀처럼 갖고 다니지 않는 보이스 레코더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묻고, 듣고, 이해하고 싶었다.
먼저 스포츠지의 엔터테인먼트부 기자인 만큼 다소 음악과 거리가 먼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내심 “흐음, 그러세요...”하고 시큰둥한 얼굴을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그는 “그래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 하하하!”하며 반색을 했다.
“스포츠를 좋아하시나 보죠?”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죠. 옛날엔 뭐 … .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미식축구, 수영, 농구 안 한 게 없었어요.”
지금도 집에서 시간이 나면 스포츠 중계 채널을 틀어놓는다고 한다.(오페라 DVD가 아닌!)
“원래 난 신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스포츠 면부터 봐요. 지금도 그래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과 지휘를 맡고 있는 정명훈은 올해 음악계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일에는 서울시향 취임 6주년을
겸해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기자회견 때 ‘서울시향이 이제는 아시아에서 제일 잘 하는 것 같다’라는 말했는데, 그렇다면 ‘세계에서 제일 잘 하는
오케스트라’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걸까요?”
설마 싶었는데 “음, 많이 떨어지죠”라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배석한 서울시향 홍보실 직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야구로 치면 20년 전 아시아 야구 수준과 지금 뉴욕 양키스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오케스트라라는 게 발전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게다가 이상하게도 운동선수가 스포츠팀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음악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것은 솔리스트로서
실패했다고 여겨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훌륭한 오케스트라도 나왔고, 단원을 굉장히 성공한 자리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돼야죠. 되어가고
있죠.”
“지휘하실 때 모습이 무척 멋있다.(그의 연주회에는 늘 여성 팬이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혹시 집에서 거울을 보며 지휘 연습을 하기도
하나요?”
“흐흐흐,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예요. 그래서 사진 찍는 걸 아주 싫어하죠.(순간, 속사포처럼
울리던 사진기자의 셔터 소리가 뚝 멎었다) 아마 거울을 보며 연습했으면 훨씬 더 못할 겁니다. 자연스럽지 않겠죠. 점점 나이가 들수록 덜
움직이고, 덜 멋있게 될 거예요. 난 그냥 가만히 서서 ‘하나 둘 셋 넷’ 박자만 세도 오케스트라의 소리만으로 관객이 만족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거죠.”
정명훈의 가족사랑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9세에 만나 26세에 결혼한 아내 구순열씨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기로 음악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래서인지 정명훈은 연습 중 단원이 실수를 할 때 “와이프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라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얘기를 자주
한다.
“아무리 금슬이 좋다고 해도 부인께서 잔소리하실 때가 아주 없지는 않겠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연주회 끝나고 집에 가서 저녁 먹는 거예요. 그런데 연주회가 늦게 끝나잖아요. 와이프는 내내 기다렸다가 밤
11시에 저녁을 먹어야 하는 게 힘든 모양입니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 잔소리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
다시 서울시향 이야기. 정씨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과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언급했다.
“서울시향을 세계 정상 수준과 비교할 수는 없죠. 하지만 우리하고 그들이 다른 점이 있어요. 거긴 아무리 잘 해도 그대로 있는
거죠. 더 잘 할 희망이 없어요. 하지만 난 유럽 쪽보다 여기(서울시향) 일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우리는 계속 올라가니까. 그 누가 한국,
일본사람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가서 야구를 하게 될 거라 상상이나 했나요.”
“엉뚱한 질문입니다만, 우리나라를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로 비유한다면, 어느 파트를 가장 먼저 손 봐야 할까요?”
“국회죠.(갑자기 그의 목소리 톤이 ‘핑’하고 올라갔다) 싸우는 거,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사람 일이란 것이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지만 제발 창피스럽게만 안 했으면 합니다.”
“오케스트라로 치면 단원이 아니라 지휘자가 문제라는 말씀 아닙니까?”
“하하하! 맞아요. 우리나라는 지휘자가 문제죠. 지휘자가 너무 많아요.”
이 쯤에서 정명훈은 갑자기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클래식이 아닌 다른 장르의 음악이 훨씬 더 재미있죠. 왜 그럴까요? (글쎄요) 음식만 봐도 세계적으로 뭐가 가장 잘 팔리죠?
피자, 햄버거, 핫도그. 빨리 먹을 수 있고, 맛도 있고. 음악으로 치면 파퓰러 뮤직이죠. 록큰롤 같은 건 아무 것도 몰라도 그냥 맞춰서 몸만
움직이면 신나니까. 그런데 그걸로 끝. 더 깊이 들어갈 데가 없어요. 햄버거를 먹으면서 ‘야, 먹어도 먹어도 깊고 새로운 뭔가가 있군’하지는
않잖아요.”
정명훈는 클래식 음악을 ‘다른 음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으로, 서울시향을 비롯한 연주자들을 ‘더 할 수 없이
위대한’ 작곡자를 위한 ‘세일즈맨’으로 표현했다.
매일 똑같은 곡을 하고 또 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비에나에 가면
공항부터 비엔나 필하모니의 이미지로 도배가 되어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한 도시, 한 나라의 문화 대표가 된다. 정씨는 서울시향을 한국의 ‘빈필’로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인터뷰의 여운은 이튿날까지 은은하게 남았다. 정씨와의 대화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색채감이 풍부했고 우아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내심 목표가 생겼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그의 데뷔 60주년 때 다시 한 번 그와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드럽고 원만한 인터뷰 진행을 위해 10년 전 ‘전가의 보도’를 다시 한 번 첫 질문으로 꺼내 드는 것이다. 바로 이것.
“마에스트로~ 여전히 스포츠는 좋아하시겠지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 | 박화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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