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뱀미디어가 또 한 번 홈런을 날릴 기세다. 방송 4회만에 시청률 30%를 넘긴 KBS 드라마 '추노'의 괴력 때문이다. 10년의 이력을 가진 초록뱀미디어는 '올인' '주몽' '거침없이 하이킥'을 제작한 국내 드라마 제작의 명가로 꼽힌다.
KBS와 초록뱀미디어가 20억씩 투자하고 총 100억 규모로 기획된 '추노'는 '7급 공무원'으로 이름을 알린 천성일 작가가 대본을 쓰고 초록뱀에서 곽정환 PD 등 4명의 감독을 투입해 제작했다. 초록뱀미디어의 모험정신은 최신의 카메라 장비인 'Red One'과 첨단의 CG제작팀을 가동, 새로운 시대극 모델을 제시해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추노' 제작총괄 임훈 PD 초록뱀은 화려하지만 절제된 액션장면, '영화 300'을 보는 것 같은 첨단 CG, 아슬아슬한 '19금' 장면, 그리고 조연 하나하나 모두 명망 있는 연기자로 채워진 '추노'가 '24부작 영화'에 가깝다고 말한다.
촬영현장의 곽PD와 함께 작품의 전체적인 기획을 총괄하는 임훈(42) 제작총괄PD를 인터뷰해 '추노'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1. '유한회사 추노'
-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기대했나?
"아니다. 전례가 없는 시도이기 때문에 높게 잡아도 10% 후반대 시청률을 기대했을 뿐이다. 30%를 넘겼다는 소식에 제작진 모두가 고무됐다. 여담이지만 새해에 유달리 추운 날씨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웃음). 너무 추워서 다들 집에 계셨나 보다. 이런 여러 호조건들이 새로움을 찾는 시청자들과 만나 시너지를 낸 것 같다."
- 드라마 막판에 '유한회사 추노'라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대본은 2년 전 완성됐고, KBS가 제작사로 우리를 택한 것이다. KBS와 초록뱀미디어가 각각 20억씩 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었다. 우리는 '주몽' '바람의 나라' '일지매' 제작을 통해 시대극에 대한 노하우가 있고, KBS는 방송편성권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특수목적법인을 만드는 것은 방송사가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손실도 반으로 줄지만 대신 수익도 반이 되는 구조다. 그러나 변화된 드라마 제작현실을 고려하면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5월 기획에 들어가 8월 첫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13, 14부를 촬영중이다."
2. 추노의 컨셉 '새로움' - 낯설다. 현대화된 사극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애당초 기획 의도는 길바닥 사극이다. 추노식으로 표현하면 '저잣거리 사극'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기존에 반복된 건국신화나 궁중사극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이제껏 TV사극은 신라-고구려-백제 등 소재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았나. 게다가 단순한 선악대결이 주를 이뤘다. '추노'는 드라마외적인 문법을 적극 차용했다. 천성일 작가 역시 '7급 공무원'을 쓴 영화출신이다. 등장 인물들도 선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간 군상을 드러낸다."
- 누군가 '러브 에픽 사극'이라고 이름 붙였다. 동의하나?
"글쎄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선 '추노'가 '사극'인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의문이다. 캐릭터 자체가 대단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인간 군상을 보는 느낌이 날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배부르고 등 따뜻한'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행복감은 예전에 비해 어떨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비슷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은 캐릭터에 자신의 현실을 대입해 볼 것이다. 결국 '추노'는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사극의 범주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3. 러브라인 '알 수 없다'
- 그럼에도 드라마의 중심은 사랑이 아닐까?
"물론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추노는 기본적으로 남자들 얘기다.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남성적인 시각에서 사랑을 풀어낸다. 남녀평등의 구도가 아닌 그 시대에서 바라본 사랑이다. 기생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그 당시 양반들이 말하는 '풍류'라는 측면이 강하게 드러난 것도 일례다. 그렇다고 계급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는 현대적 의미의 사랑이 그려질 지는 미지수다. 이제 초반부가 진행된 상황에서 러브라인을 코멘트 하기 힘든데, 사랑일지 애증일지 나도 잘 모르겠다. 힌트를 드리자면 기존의 뻔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
4. 에픽
- 작품 전반에 고증이 훌륭하다는 평가가 많다. 화승총과 편전의 모습은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고, 이 밖에도 단어 선택도 신선하다.
"새로움을 찾겠다는 기획의도의 연장선이다. 우선 곽 감독이 전작인 '한성별곡'에서 알 수 있듯이 고증과 디테일에 철저한 감독이다. 천 작가 역시도 '추노'를 준비하면서 우리말 갈래사전을 참조해 어투 하나하나를 갈고 닦았다. 한자어도 자주 등장하는데 물론 그 당시 쓰지 않던 한자어 표현이나 고어가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낯설게 하기' 기법이다. 아무리 저잣거리 사극이라도 당시의 천한 말을 쓰거나 현대어를 쓰는 것도 진부하기 때문이다."
- 추노꾼들의 헐벗은 복장이 화제다. 이것은 조금 의아스러운 게 고증에 맞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벗긴 것인가?
"하하. 연출과 작가 모두다. 만약 추노꾼들이 당시 서민이 입었던 누추한 흰색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이건 그림이 안 된다. 남성미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연기자들이 몸 만들기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 하는 영화적 장치도 중요하다. 누군가는 영화 '300'을 참조했다고도 하고, '올드보이'의 격투씬을 모방했다고 언급하더라.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은 영화는 영상미학을 선도하는 분야다. 따라한 것이 아닌 여러 모범들을 참고하고 드라마 차원에서 재해석 한 셈이다. 그런 작지만 의미 있는 설정들이 만나 사극에서 보기 힘든 판타지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초록뱀 미디어는 새로운 영상미를 선보이기 위해 국내 드라마사상 최로로 '레드원'이란 최신 카메라장비를 도입했다.
5. 카메라 'Red One'
- 카메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드라마 첫 장면부터 24프레임 모션과 고속촬영을 통한 슬로우 모션까지 등장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기존의 HD화면을 뛰어넘는 영상을 제공하는 'Red One'이란 카메라 덕분이다.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카메라 인데, 새로운 영상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장비를 고려하게 됐다. 대신 단기 임대하지 않고 과감하게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다. 이 장비는 기존의 테잎 방식이 아니라 완전한 디지털 방식이다. 파일 형식이기 때문에 화질 손실 없이 CG 등의 드라마 후반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
- 영화와 경쟁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는데…, 방송사들이 장비를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기존의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카메라가 아직 감가상각이 안 끝났는데 새 카메라를 구입하거나 새로운 인력을 도입할 수 있겠는가. 영화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투자해야 하는데 결국 '유한회사'가 탄생한 배경에는 이런 수요도 있었다."
6. 화려한 캐스팅
추노는 주연에서 조연까지 짱짱한 내공을 갖춘 전문 연기자들로 채워졌다. 관동 포수출신 노비역의 공형진. - 공형진, 성동일, 조미령, 윤문식 등 조연 하나하나까지 제작사의 야심이 엿보인다. 이런 초호화 캐스팅은 제작비 상승의 원인이 되지 않나?
"출연료는 합리적인 선에서 결정됐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은 중도에 엎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돈 떼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연기자의 선 계약금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우리는 출연료를 대부분 방송 후 지급으로 정해 시행해왔다. 신뢰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좋은 연기자들을 적정한 가격에 캐스팅 할 수 있었다. 물론 연기자들 사이에서 '추노'의 대본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한몫했다."
- 장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서 즐겁다. 혹시 경쟁자는 없었나?
"현장에서 대단히 성실한 배우로 평가가 좋고 결과물도 너무 좋아 만족스럽다. 기획단계에서는 2008년 KBS '쾌도 홍길동'의 주인공인 강지완과 경합을 벌였다. 천 작가와 '7급 공무원'에서 호흡을 맞췄던 경험도 있고 일본시장에서 강지완의 선호도가 높아 고려됐지만 여러 과정에서 장혁으로 결정했다. 특히 장혁은 이다해와 2008년 SBS '불한당'에서 호흡을 맞춰 본 경험 덕분에 극 후반부로 갈수록 더 좋은 연기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 국가대표팀이 대거 '추노'에 등장해 화제다.
"나도 뉴스 보고 알았다. 국가대표에서 인간미 넘치는 코치로 나왔던 성동일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자리를 완전하게 잡은 느낌이고, 김지석은 유쾌한 난봉꾼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그러고 보니 감초역할 오 포교는 '국가대표'에서 선수 아버지로, 송태하의 동료로 등장하는 조진웅은 국가대표 해설자 출신이다. 또 레드원 카메라도 그렇고…."
7. 의도된 선정성?
- 이다해 겁탈신이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도 청나라 군사의 강간 장면, 심지어 1회에는 어린 노비를 '보약'이라고 표현하는 대목까지 있었는데…의도한 선정성인가?
"천만에…, 드라마 외적인 논란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릴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오히려 그런 논란은 공중파 KBS에서 가장 걱정하고 피하고픈 대목이기도 하다. 당초 '추노'의 기획은 드라마 보다 영화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작가도 큰 제약 없이 대본을 완성했다. 저잣거리의 모습과 노비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려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 올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다해 겁탈신'은 컴퓨터로 캡처해서 보니 야할 뿐이지, 화면상으로는 영화제 의상보다 절대 야한 것이 아니다."
초복이란 노비로 출연한 민지아. 추노는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 될 전망이다. - 출연자 상당수가 섹시하다. 기생, 주모는 물론 남자들까지도 말이다.
"섹시라기보다는 '매력' 아닐까. 그 역에 맞는 최적의 배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연기자들에게 미안한 대목도 없지 않다. 자객으로 나오는 윤지민은 사실 주연급인데 기꺼이 조연급을 수락했다. 윤주희(작은 주모)는 현장에서는 '리틀 최진실'이란 평이 나온다. 김하은(사당패 설화)이나 송지은(기생) 민지아(노비 초복이) 역시도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아 줬다. 이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최고의 화합을 이끌어 냈다. 대신 누가 터질지는 잘 모르겠다. '목욕탕 목소리'의 주인공 한정수(최장군)가 가장 먼저 부각됐을 뿐이다."
8. 진짜 주인공 '배경'
- 배경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다.
"한국 드라마 사상 유류비가 가장 많이 나온 드라마 가운데 하나라고 자부한다. 눈썰미 있는 시청자들은 한 신에서도 배경이 자주 바뀐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활 하나 쏘려고 해도 하나 쏘고 이동해서 다시 찍을 정도다. 연기자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제천, 안동, 영주에서 시작해 해남과 완도, 제주도와 서울까지 전국 팔도를 유람중이다."
- 배경이 좋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보답 받는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4회 추격신에서 상당히 많은 배경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드라마 블로거 분들이 하나하나 그 장면들을 해설해 주시더라. 놀라운 점은 기획을 한 나조차도 촬영장소를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이다(웃음). 대략적인 장소야 알지만 심지어 현장감독이라도 '대략 이 부근에서 촬영했다' 정도의 감만 갖고 있는데 마니아들은 '성문은 어디, 말 타고 달리는 장면은 어디…' 등을 정확하게 집어 홍보해 주신다. 이제는 그런 노력을 이해해 준다고 믿고 더 세심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9. 해외 판매 1번 타깃은 '일본'
- 한국 드라마 대작화의 배경에는 해외 시장이 존재한다. 특히 일본시장이 그렇다. 그런데 '저잣거리 사극'에 대한 시장이 존재할까?
"일본에서 주몽이 히트한 이후 한류팬이 아줌마를 넘어 남성 어르신들로까지 확대됐다. 우리가 제작한 '주몽'과 '바람의 나라(주몽2)'는 회당 10만 불에 판매됐고, '일지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추노' 역시 KBS 방영 전에 일본 판매가 확정됐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도 기대가 크다. 이란에서 '주몽'이 70%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고무적이다."
- '추노'는 검증이 안 된 형식일 텐데….
"무엇보다 일본 남성 시청자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주몽'만 해도 고구려 얘기이다 보니 일본 우파 입장에서는 거북하기도 했겠지만, 역사에 기록된 왕실에 대한 얘기이다 보니 치밀하게 공부하며 시청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주몽'이 히트하자 일본 측에서는 한국 사극에 대한 구매 요청이 줄을 이었다. '추노' 기획에도 그런 대목이 일정정도 영향을 끼쳤고, 한국 시청률이 나오기 전부터 일본 측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따지고 보면 현대극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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