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모니\'를 촬영한 김윤진은 "촬영을 하면서 이토록 주책 맞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배우의 눈물은 관객에겐 감동이 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사람의 언어와 감정은 컵에 담긴 물의 결정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물을 따라놓고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와 '나쁜 놈!'이라고 말했을 때 물의 결정은 각각 다른 모습을 띤다고 한다."
톱스타 김윤진이 2007년 내놓은 책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해냄출판사)'에서 세계적인 물 파동 의학자 에모토 마사루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인용한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물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며, 나쁜 놈이라는 말을 들은 물의 결정은 불규칙하게 깨져버린다.
김윤진은 책을 통해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에너지를 보내며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짚어주는 것'이라며 '나를 바꾸는 것은 결국 정신과 마음 속의 울림'이라고 해석했다.
▶ 롤러코스터 인생에도 '진심'은 통한다
김윤진이 말하는 정신과 마음 속의 울림은 또 '진심'에 다다른다. 영화 '밀애'로 2003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다음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며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갈 때도, 현재 출연 중인 미국 드라마 시리즈 '로스트'의 J. J. 에이브럼스 감독과 처음 만나 출연 여부를 타진하던 시간에도 그는 결국 '진심'만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숱한 오디션 낙방을 경험하며 실패와 성공을 롤러코스터처럼 아찔하게 넘나들거나 그러느라 안면마비 증세에 시달리던 아픔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진심'을 잊지 않은 김윤진이 이번엔 1월28일 개봉한 영화 '하모니'(감독 강대규·제작 JK필름)를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 영화 속에서 김윤진이, 아니 모든 배우들이 흘린 진심의 눈물은 관객과 접점을 이룬다.
'하모니'는 여자교도소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꾸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재소자들은 저마다 과거가 남긴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여전히 이에 휘둘림당한다. 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화음은 각기 지닌 생채기를 지워내려는 작은 몸부림이며 부대낌이다.
그 부대낌은 또 다시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비좁은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그것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는, 작은 희망을 안겨주는 화음이기도 하다.
김윤진은 이 부대낌과 희망의 화음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감옥 안에서 낳은 아이와 곧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예비하는 그녀는 또 다른 아픔을 지닌 음대 교수 출신 재소자(나문희)와 함께 합창단을 만들어낸다.
막상 아이와의 이별이 가슴 찢는 현실로 닥쳐왔을 때, 그리고 끝내 아이와 헤어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뒤 극중 김윤진이 흘리는 눈물은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아픔은 모성과 사랑의 이야기라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소재 덕분이었으리라.
미국 드라마 시리즈 '로스트'의 김윤진. 그는 국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진심으로 흘린 눈물이 관객도 감동시켜
김윤진은 "촬영을 하면서 그토록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건 처음"이라고 돌아봤다. 스스로도 "창피할 정도였다"지만 이런 감정이 관객의 가슴과 맞닿아 진한 감성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켰을 것이다.
김윤진이 흘린 '진심'의 눈물이야말로 15주 넘도록 한국 극장가를 강타한 '아바타'의 기세를 꺾는 '하모니'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하모니'는 개봉 일주일 만인 3일 하루 9만1882명의 관객을 동원, '아바타'를 누르고 평일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이런 결실을 빚기 전까지 김윤진은 미국 하와이에서 '로스트' 마지막 시즌을 촬영하던 일정을 잠시 멈추고 1월 초 귀국해 가파른 홍보 일정을 쉼 없이 소화해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이 드러났지만 애써 밝게 웃는 모습에서 배우의 책임감이 묻어났다.
피로감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윤진은 "출연 배우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주연배우로서 자신의 작품을 흥행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는 설명의 세련된 표현인 셈이다. "홍보도 열심히 하라고 출연료 주는 것 아닌가"라는 말을 내놓으며 그는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김윤진은 지난해 '로스트' 촬영 틈틈이 개인레슨을 받아가며 노래 연습을 했다. "자신감을 얻기 위한 속성 교습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하모니'에 함께 출연한 강예원(성악 전공)이나 박준면(뮤지컬 출신) 등의 노래 실력을 실제로 보고 난 후 "나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내가 못 하는 걸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며 이문세를 처음 듣던 20대 초반 시절을 떠올렸다. 10세 때 양친을 따라 이민을 떠났고 훌쩍 자란 뒤인 1987년 한국을 찾은 그녀는 이문세를 끼고 살던 외삼촌의 집에서 우리 가요를 처음 들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 때가 처음으로 한국 대중문화에 눈을 뜬 시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김윤진은 어느새 15년차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김윤진은 미국에서 매일 등하교에만 4시간이 걸리는 고단한 고교 시절을 보내며 연기를 배웠다. 대학(보스턴대)을 나와 현지 연극무대에 섰던 그녀는 1996년 아르바이트 삼아 출연한 MBC 드라마 '화려한 휴가'로 한국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드라마 '예감'과 '유정'을 거쳐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환점을 마련한 '쉬리'로 한국영화계의 정점에 섰다. 3년 뒤에는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999년 11월의 어느 날, 선물로 간직해온 펜던트에 '3년, 정상, 그리고 돈'이라고 목표를 적어 놓았던 메모를 현실 속에서 모두 얻은 셈이다.
솔직하고 털털한 매력의 김윤진. 그는 "한국에서의 활동 덕분에 미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할리우드-충무로 '두 집 살림'
그는 주변의 만류 속에서도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할리우드로 날아가 자신의 길을 헤쳐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배가 고픈 모양이다. 김윤진은 '로스트'가 종영한 뒤 내딛을 행보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최대의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미국에서는 아직 오디션을 보지 않고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때 곁에 있던 매니저는 "최근 제안을 받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키로 작정했다"고 귀띔했다. 아직 감독이 확정되지 않아 더 정확히 밝힐 수는 없다면서….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휴먼 드라마 장르'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매니저의 어투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김윤진이 올해 또다른 한국영화에도 출연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아시아태평양판을 통해 '아시아 영화계가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하며 화제의 영화 '쉬리'의 김윤진을 표지모델로 등장시켰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로스트'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그 덕분에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그 파일럿 영상을 구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기도 했던 김윤진. 미국 영화계의 본격적인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는데도 한국과 미국 연기활동을 병행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김윤진은 "한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미국 활동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기에 미국의 한인 2세, 3세 배우들 혹은 이른바 '재미교포' 배우들과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오디션을 보지 않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수는 없는 단계지만 오디션 역시 한국 활동을 통해 쌓은 실력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는 '용기와 진심'을 반드시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로 꼽았다. 자신의 책을 통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을 때 한국을 선택했고, 한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할리우드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그는 "결국 용기는 운명을 선택한다"고 결론짓는다.
그가 꼽는 최고의 배우가 되는 비결은 노력, 재능, 성실, 집중력, 그리고 침착함. 그는 여기에 "이 덕목들의 맨 앞에 진심을 추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진심을 담아 말하고 행동할 때 그 '에너지'는 상대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것이 좋은 결과를 빚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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