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어릴 적의 기억. 최정원(사진)은 오빠와 둘이서 조부모의 슬하에서 컸다. 할머니는 함경도 분으로, 옛날 어르신들이 대개 그렇듯 남아선호가 지극히 강하셨다.
그러다 보니 아침 식사 때마다 달걀 프라이는 늘 그녀의 오빠 밥 위에만 올라갔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때론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오빠가 먹다 뜨거워 흘리면 야금야금 핥아먹던 기억도 난다.
이런 불쌍한(?) 동생이 원 없이 달걀을 먹을 수 있는 날은 설이었다. 불고기, 부침개 등 맛난 명절 음식을 다 젖혀놓고 삶은 달걀만 먹어댔다. 그러다 급체해서 병원에 간 적도 있다. 최정원은 지금도 공연연습 때 단원 중 누가 달걀 반찬을 싸오면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간다.
두 번째 에피소드. 결혼해서 이듬해 첫 설이 됐다. 큰집에 간 남편이 집안 어르신들 앞에서 “우리 와이프는 공인이다 보니 매년 차례에 못 올 수도 있다. 양해해 주시라”고 닭살 선언(?)을 하더니 식기세척기를 떠억 내놓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어디 그럴 수야 있나. 집안의 막내 귀염둥이 며느리 최정원은 매년 설이면 아침 일찍 큰집에 가서 차례 지내고 설거지까지 다 마친 후에야 공연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