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필모그래피에도 그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 세 번이나 진출했다. 데뷔 이듬해에 출연했던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첫 입성,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박쥐'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그리고 그는 지난 11일 시작돼 21일까지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에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로 또 다시 초청됐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꿈의 무대를 그녀는 이처럼 일찌감치, 그리고 여러 번 누렸다. 남들은 평생 한번이라도 서 볼 수 있을까 싶은 칸의 레드카펫에서 단독 여주인공으로 플래시 세례도 받았다.
일반 대중들에겐 조금 생소할지 모르지만 판타스틱 영화제로서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에서 지난해 '박쥐'로 여우주연상도 거머쥐었다. 스물 넷, 데뷔 6년 차의 어린 여배우에겐 엄청난 행운이다.
올 초 한 인터넷 카페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경인년 가장 성공적인 활약이 기대되는 호랑이띠 스타'로 43%의 지지를 받아 여자 연예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대중도 그의 활약에 그만한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로 지난해 5월 제62회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은 김옥빈. 사진제공 로이터·연합. ☞ 사진 더 보기▶ 한국을 널리 알린 행운의 여배우
김옥빈은 지난 해 외국에 가장 많이 얼굴을 알린 한국 여배우기도 하다.
칸에서의 수상에 힘입어 '박쥐'는 2009년 9월 프랑스 전역 120여 개 관에서 개봉했고, 올해 2월에는 스웨덴에서, 그리고 5월이면 저 멀리 포르투갈에서도 개봉을 한다.
유럽지역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옥빈은 그 몇 안 되는 귀중한 기회를 독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 뒤편으로 그의 고뇌가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녀는 인터넷 '얼짱' 출신이다. 2004년 네이버 얼짱 선발대회에서 상을 받은 뒤 바로 '신인 여배우 사관학교'로 유명한 여고괴담 시리즈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연이어 '하노이 신부', '안녕하세요 하느님' 등 TV 드라마에도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그리고 이후 영화, TV, 뮤직 비디오 할 것 없이 많은 작품을 소화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간 10대 이후, 늘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 인생은 그렇게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호평을 받은 작품도 있지만 질타를 받은 작품도 있다. 당당하고 개성 있는 모습으로 좋은 인상을 주었지만 그의 모습이 뚜렷이 각인된 작품을 선뜻 꼽기는 쉽지 않다.
'하노이 신부'로 신선한 데뷔를 했다 싶었는데 '다세포소녀'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졌고, '안녕하세요 하느님'에서 천방지축 사기꾼을 잘 소화해낸다 했더니 '1724 기방 난동사건'은 관객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흡혈신부와 팜 파탈의 핏빛 멜로영화 ‘박쥐’에서 김옥빈은 다면적인 캐릭터를 재주좋게 연기했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 부침 심한 연기 패턴, 그러나 미래는 밝다
스스로도 본인을 '손을 많이 타는 배우'라고 밝힌 것처럼, 그는 자신만의 색깔로 극을 이끌어가기 보다는 환경에 따라 부침이 심한 연기 패턴을 보여 왔다. 연출자와의 호흡이 좋거나 소위 시나리오에 감이 왔다 싶은 경우에는 한없이 매력을 발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맥없이 부자연스러워지는 불안정함을 보였다.
이는 재능은 있으나 내공은 부족하다는 이야기와 같다. 아직은 그에게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먼저 던져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옥빈은 앞으로의 성장이 가장 기대되는 여배우 중 하나다. 사실은, 이 것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그에게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나사가 풀린 듯 심드렁해 보이지만 어딘지 연기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나른해 보이는 눈빛 뒤에는 폭발할 듯한 뜨거운 열정이 보인다.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말랐으며 똑같이 과장된 몸짓으로 인기를 갈구하는 또래 여배우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는 최근 그가 출연한 두 작품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박쥐' 속 태주는 기묘하고 대담하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숨 막히게 착취해 온 라여사와 그 가족들을 대할 때는 지극히 무심하고 심지어 때로 멍청해 보인다. 이는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습관이자 적극적인 자기 방어적 제스처다.
그러나 신부 상현을 만난 후엔 본인의 내면을 마음껏 터뜨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고 악마적 기행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진 그녀에겐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러나 김옥빈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 속 태주에 몰입한다. 하얀 피부와 텅 빈 듯한 눈동자로 신부 상현을 유혹하더니, 후반부엔 유난히 긴 목선을 돋보이게 하는 파란 원피스를 입고 뱀파이어가 되어 밤하늘을 사뿐사뿐 나른다.
적지 않은 노출 신에서는 이성적 판단보다 배우로서의 본능이 압도하고, 본인의 욕망에 충실한 채 상현의 도덕적 자책감을 마음껏 조롱한다.
이는 박찬욱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던 영화적 여성상과도 정확히 일치한 듯 보인다. 마치 5년 전 친절했던 금자 씨가 인간의 피를 마시고 20년쯤 회춘한 뱀파이어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여배우들’로 베를린 영화제에 초대된 김옥빈과 선배 여배우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사진 더 보기▶ 냉탕과 온탕 사이, 그래서 짜릿하다
반대로 '여배우들'에서의 김옥빈은 진지하고 소심하다. 쟁쟁한 선배들 앞에 서자 주눅이 들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윤여정이 커피를 찾자 황급히 자판기로 뛰어갔다가 허탕을 치고,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라이터를 건네려다가 이미 불을 붙인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꽂아 넣는다.
모델처럼 늘씬한 김민희 앞에서는 여배우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이 살이 쪘다며 은근슬쩍 아부를 한다. 다른 여배우들이 수다 꽃을 피울 때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핸드폰 문자가 오자 화장실로 숨어버린다.
허술한 실수도 빼 놓지 않는다. 고현정이 데려온 신인 남자 배우에겐 '남자 친구가 아니면 번호 따도 돼요?'라고 발칙하게 묻더니, 이내 할머니뻘도 될 수 있는 대 선배 앞에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며 따분한 표정을 짓는다.
그 나이 또래면 이해할 수 있는 철없는 행동 위로 거침없이 질주하던 '박쥐' 속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 순간 태주로 폭발했다가 다음 순간 어수룩한 막내가 되어 쭈뼛거리는 배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갑자기 빈손인 것 같은 배우.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 불안정하지만 그래서 짜릿함을 주는 배우. 종잡을 수 없기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궁금하게 하는 배우. 그는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배우다.
그를 보면 틀에 갇혀 있지 않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불완전한 에너지의 집합체처럼 위태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폭발이라도 할라치면 엄청나게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되는 날, 그는 진정한 배우로 완성될 것이다.
노련한 배우들은 늘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역할에도 안정된 연기를 펼치고, '역시'란 감탄사를 이끌어낸다. 물론 훌륭하다. 그러나 모든 배우가 그럴 필요는 없다. 진짜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은, 바로 예측할 수 없는 '무정형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김옥빈에 대해 희망적일 수밖에 없다. 과연 그의 다음은 무엇일까.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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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16:44:14
김옥빈배우가 기대주이자 흥행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으니 좋은 영화는 물론 연기가 기대되고 돋보이는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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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16:44:14
김옥빈배우가 기대주이자 흥행에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으니 좋은 영화는 물론 연기가 기대되고 돋보이는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