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개봉하는 ‘밀크’(15세 이상 관람 가)는 이 두 질문에 답이 될 만한 제안을 던지는 영화다. 육탄전이 난무하는 정치판 소식에 무조건 눈과 귀를 막는 사람이나 육탄전의 당사자가 모두 귀 기울여 볼 만한, 묵직하고 또렷한 제안이다.
주인공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시의회 의원이 된 하비 밀크(숀 펜). 이 때문에 ‘게이 영화’로 오해받기 쉽지만 동성애는 인물의 속성 중 하나일 뿐 이야기의 초점이 아니다. 카메라는 밀크가 살해당하기 전 8년간의 행적을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듯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한다. 경쾌한 편집 리듬이나 화려한 영상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중반쯤 졸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고 짝을 짓는 동물의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처럼 서서히 드라마의 긴장감을 쌓아간다. 밀크는 게이의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사회 관습에 맞서 생존 본능에 따른 정치 행동에 나선다. 연인,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시작한 소규모 정치 활동이 결국에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 없이 아우르는 거대한 행렬을 만든다. 관객의 전율도 개울이 모여 강물이 되듯 은근히 불어난다.
‘밀크’는 숀 펜이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유를 납득시켜 주는 영화다. 사진 제공 스폰지
연기와 연출의 집중력 역시 종장(終章)에서 두드러진다. 숀 펜에 대해 “완전히 밀크에 녹아들어 사라진다”고 한 유에스에이투데이의 평은 과장이 아니다. 이즈음 영화가 동성애 경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체에 던지는 정치적 화두의 묵직함은 중반의 지루함을 넉넉히 보상한다.
말미에 삽입한 시민들의 언쟁 장면. “당신 혼자 뭘 하든 관심 없지만 내 눈에 띄는 건 용납 못해!”라고 쏘아붙이는 이에게 다른 사람은 “당신과 무관해 보이는 어떤 이의 권리가 무단으로 박탈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언젠가 당신의 권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무게중심이 있다.
밀크는 엘리트 코스를 계획대로 밟으며 성장한 ‘정치꾼’이 아니다. 삶에서 절실히 맞닥뜨린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일에서 남보다 한 발 앞에 나섰던 사람이다. 거스 밴 샌트 감독은 그의 정치가적 수완이나 모범 시민 같은 면모를 감춘다. 주인공은 그저 소심하고 왜소한, 단점 많은 이웃이다. 그가 하는 사랑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기는커녕 추레하다. 밀크는 지하철역이나 파티에서 눈이 맞은 연하남과 하룻밤을 보낸 뒤 연인으로 삼는다.
감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낸 인물의 허점이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밀크는 사회로부터 ‘허용’되길 기다리는 처지의 동성애자들에게 “우리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아니다. 동성애자임을 감추는 것은 스스로 환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는 높은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지키려는 저항이다. 2009년 아카데미는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으로 그 메시지에 찬사를 보냈다.
밴 샌트 감독이 ‘라스트 데이즈’, ‘파라노이드 파크’ 등에서 보여준 탐미적 영상은 영화 내내 절제됐다가 결말부에서 터져 나온다. 창에 비친 푸치니의 ‘토스카’ 현수막에 겹쳐진 숀 펜의 얼굴 표정.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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