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는 고대 로마 공화정에 대항했던 노예 군단을 이끈 트라키아 출신 검투사의 이름이다. 미국의 유료채널 스타즈(Starz)에서 1월22일 첫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블러드 앤드 샌드'(이하 '스파르타쿠스')는 '글래디에이터의 전쟁', '스파르타쿠스의 전쟁' 등으로 알려진, 노예들의 반란(기원 전 73~71)과 그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의 영웅담을 안방극장으로 옮겨온 TV시리즈다. 그런데 '안방극장'이라고 하려니까 뭔가 너무 안락한 느낌이 들어, '스파르타쿠스'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사극의 모양새를 취하기는 했지만 정통 역사물이라기보다는 기원전 1세기 경을 무대로 삼은 퓨전 슈퍼히어로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TV시리즈는, HBO의 '소프라노스'에 이어 TV-MA(TV시리즈에 매겨지는 등급으로 17세 이상 관람가를 의미함) 등급을 받은 성인물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 '글래디에이터', '파이트 클럽' 그리고 국내에서도 방영됐던 HBO의 '로마'를 모두 더한 결과라고 하면 될까? 다시 말하면 '스파르타쿠스'는 위에서 언급한 네 편의 작품들이 사랑받았던 요소들을 하나씩 골라내어 나름의 매력을 만들어낸 독특한 TV시리즈다.
▶ 스파르타쿠스, 죽음을 거부한 전사
우선 '스파르타쿠스'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원형인 영웅 스파르타쿠스로 시작해보자. 시대가 가지는 역사적 함의를 제쳐두고라도 폭력과 섹스에 열광했던 당시의 풍속도만으로도 '스파르타쿠스'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은 충분히 흥미롭다. 주인공(앤디 윗필드 분)은 고대 그리스 트라키아 지방의 전사다. 끊임없이 침략을 일삼는 게태 족을 몰살하는 것을 조건으로, 주인공과 그의 동족들은 로마군에 입대한다. 그는 게태 족을 치자고 했던 처음의 약속과 다르게 진군 방향을 바꾼 로마군의 지휘관에게 대항한 뒤 고향으로 도망치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게태 족에 의해 초토화되어 울부짖는 마을이다.
야만스러운 적들에게 겁탈당하려는 순간에 아내를 간신히 구해낸 그는 그러나, 하루가 못 지나 로마군에게 체포당하고 노예가 되어 경기장에서 검투사 4명과 싸우는 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그는 "(나를 위해) 모두 죽여 버리세요"라는 아내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4명 모두를 베고 살아남는다. 비록 반군이기는 하지만 이름도 없는 그를 연호하는 민중을 거스를 수 없었던 의원 알비니우스에게, 카푸아에서 검투사 양성소를 운영하는 바티아투스(존 한나 )가 이때 묘안을 제시한다. '죽음을 거부한 개'는 그렇게 바티아투스의 훈련소로 팔려가고, '스파르타쿠스'라는 전설적인 트라키아 왕의 이름은 그의 새 이름이 된다. ▶ 노골적 노출, 생생한 폭력, 선정적 장면 때문에 성인물 등급 받아
사실 '스파르타쿠스'는 첫 회가 전파를 타기도 전에 방송가에서 이미 화제가 됐다. 스타즈 채널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팬보이 팬걸(SF, 코믹스, 슈퍼히어로물 등 특정 장르에 심취한 팬층을 일컫는 말)이라면 잊지 못했던 TV시리즈 '제나: 워리어 프린세스'를 만들었던 샘 레이미와 롭 태퍼트가 재결합하여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는 첫 회가 방송되기도 전에 이미 시즌2를 제작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드문 케이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파르타쿠스'가 관심을 모은 이유는 앞서 말한 TV-MA 등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TV-MA 등급은 극도로 생생한 폭력, 강도 높은 신성모독, 섹스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대화와 내용, 거친 언어의 사용, 빈번한 노출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야만 받을 수 있는 상당히 어려운 등급이다. 섹스와 폭력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공공연하게 드러났던 당시의 로마를 지나치게 묘사한 탓일까? 하지만 유료채널이다 보니 공중파에 비해 내용적 규제가 덜하고, 섹스와 폭력은 본능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TV-MA(17살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스파르타쿠스'는 선정적인 성풍속 묘사로 화제가 됐다. 스파르타쿠스 캡쳐. 따지고 보면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찬반이 명확하게 갈리는 것도 그 덕분이다. 미국의 연예정보지 '버라이어티'는 연기고 화면이고 모두 볼 것이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할리우드 리포터' 'LA타임즈' 등은 미지근하게 우호적인 평가를, '잽투잇' 등 인터넷 매체는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재밌는 점은 대부분의 평가가 '스파르타쿠스'의 잔인한 폭력성보다는 생생한 성풍속도 묘사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스파르타쿠스: 블러드 앤드 샌드'라는 제목보다는 '블러드 앤드 섹스'가 더 어울린다"고 꼬집은 '할리우드 리포터'의 지적처럼 화면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모래보다는 핏물이고, 시청자의 감각을 사로잡는 것은 경기장의 검투사들이 보여주는 액션이 아니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들이다. 그리고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려는 듯, 육욕을 채우기에 바빴던 로마인들의 성생활에 더 놀랄 것이 남아있기는 할까 궁금해질 만큼 매회 새로운 경지로 시청자를 안내한다. 연인이 몸을 섞는 장면은 소프트 포르노를 연상케 하고, 노예들이 한꺼번에 관계하는 장면이나 그들의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장면은 혐오스러운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한다.
▶ 컴퓨터그래픽으로 열어낸 새로운 가능성
생생한 성(性) 묘사에 이어 한 가지 더 눈을 끌어당기는 요소는 영화 '300'을 떠올리게 하는 컴퓨터그래픽이다. 제작자 태퍼트에 따르면 "'로마'처럼 예산이 거대했다면 그와 같은 수준의 미술을 보여줬을 것"이라고 하지만, 블루스크린 앞에 재현되는 가짜 같은 그러나 환상적인 공간적 배경도 나름의 재미를 준다. 그리고 저예산이어서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컴퓨터그래픽과 슬로우모션 등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손질을 가해 만들어낸 여러 가지가 열어준 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
칼로 벤 자리에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핏줄기는 뻔뻔스럽게 카메라의 렌즈에 튀기기도 하며, 화면의 인물이 정지상태로 있는 동안 시공간이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스파르타쿠스'는 고전적인 영화적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시도하지 않을 비약으로 장면과 장면을 연결한다.
물론 블루스크린으로 재구성된 경기장이나 군중은 그 함성을 따르지 못하는 존재적 가벼움을 태생적인 한계로 가지고 있지만, 한 두 번 보고 나면 익숙해져서 그냥 그 세계가 '스파르타쿠스'의 세계라고 믿게 된다. 결국 '스파르타쿠스'의 세계는 현실성보다는 도피적 성향이 지배적인 엔터테인먼트다. 로마의 관중이 경기장의 흙 위에 뿌려진 핏줄기에 환호한 것처럼 시청자는 거짓말처럼 흩뿌려지는 붉은 핏줄기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이내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에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트라키아의 전사 스파르타쿠스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었던 아내 수라 ▶ 나라도 잃고, 아내도 잃은 남자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
사실 '스파르타쿠스의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1960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들고 커크 더글라스가 출연한 영화 '스파타쿠스'와는 주인공인 스파르타쿠스가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양성소에서 검투사로 훈련 받는다는 내용만 공유할 뿐 그 밖의 디테일은 전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바티아투스의 교활하고 욕심 많으며 유혹적인 아내 루크레티아를 연기하는 여배우 루시 러리스의 남편이기도 한 롭 태퍼트는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겨우 한 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이 다이며, 그마저도 1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를 두고 기록된 것"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스파르타쿠스'의 창조적인 면을 강조했다.
영화에서 스파르타쿠스를 싸우게 했던 힘이 2000년 넘게 이어진 불합리한 노예제도를 참지 못한 정의였다면, TV시리즈에서 스파르타쿠스를 일어서게 하는 힘은 아내인 수라와의 재회를 꿈꾸는 끝없는 열망에서 나온다. 현재 6화까지 방영된 TV시리즈에서 그는 검투사가 되는 최종시험을 통과한 뒤 바티아투스의 노예임을 뜻하는 낙인 "B" 자를 팔 안쪽에 인두로 지져 새겼고, "승자가 살아남는다"는 하나의 규칙 아래 승부에 돈을 거는 지옥 같은 지하 광산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아내와의 재회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탈출을 꿈꾸었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수라의 시체다.
총 1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스파르타쿠스'는 이렇게 빠른 진행으로 고통 받는 남자가 목숨을 걸고 원했던 단 한 가지를 빼앗아갔다. 아마 스파르타쿠스가 새로운 운명에 눈을 뜨고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설계된 잔혹한 극본이리라. 하지만 노예로 팔려간 아내와의 재회라는 불가능한 소망을 꿈꾸던 그이기에, 2000년간 지속된 뿌리 깊은 노예 제도에 대항하는 히어로로의 변신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러쿵저러쿵 찬반양론이 시끄러워도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시선을 끌고 흥미를 끌어당기며 다음 회를 기대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얄팍한 호기심의 기저에 본능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로마'보다는 덜 정치적이고 '파이트 클럽'보다는 잔혹하며 '300' 보다는 현실적인, 그리고 '글래디에이터'보다는 덜 우아하지만 말초적이며 대중적인 '스파르타쿠스: 블러드 앤드 샌드'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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