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 직장에서 해고됐습니다. 불안정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담아 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영화에 쓰면 좋을 것 같아 보냅니다.”
11일 개봉하는 ‘인 디 에어’(15세 이상 관람가)의 라스트신에서 감동을 느꼈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기를 권한다. 경쾌한 연주곡이 잦아들 즈음 한 사내의 수줍은 듯한 자기소개와 노래가 들린다. ‘해고통보 대행업자’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미주리 주에 사는 실직자 케빈 레닉이 만든 ‘업 인 디 에어’다.
“어떤 이는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 삶을 꾸려가고, 또 어떤 이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 갇혀 살고….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기에, 하늘 위에 머무르네….”
소박한 통기타 반주에 갈라진 목소리. 디지털 음원이 아닌 테이프에 녹음해 잡음이 섞인 이 노래는 영화 속 이야기에 젖어든 관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늘부로 회사를 나가줘야겠다”는 통보를 회사 대신 전해주는 전문가인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이다. 미국 전역, 때로는 해외파견 근무 중인 이들을 찾아가 “당신, 잘렸다”고 말하기 위해 그는 한 해 평균 322일을 비행기에서 지낸다. 제목 ‘In The Air’는 빙햄의 삶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죽음에 무감한 시체 부검의처럼 빙햄은 생계 잃은 사람들의 절망에 덤덤하다. 그는 매끄러운 말솜씨로 실직자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면서 회사에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불상사의 여지도 말끔히 없앤다. “매일 아침 맨몸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는 빙햄의 삶은 군살 없이 말쑥한 여행가방을 닮았다.
땅 위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으니 땅을 떠나는 출장은 그에게 일이 아니라 안식이다. 베테랑 군인 같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하늘 위로의 ‘출동’을 준비하는 조지 클루니의 모습은 그가 주연한 영화 ‘배트맨과 로빈’(1997년)을 연상시킨다. VIP 카드로 30초 만에 공항 체크인을 마치는 장면은 말쑥한 슈트를 입고 배트카의 시동을 걸던 모습과 겹쳐진다.
하지만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재수 없는 사람인 척, 냉정한 척하는 휴머니즘’은 3년 전 ‘주노’에서 보여줬던 그대로다. 빙햄의 내면은 강한 척 ‘쿨’한 척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친구를 외면했던 여고생 주노를 닮았다. 무심함과 냉정함으로 외롭고 여린 속내를 포장해 일상을 버텨내는 그는 결국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샐러리맨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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