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최악의 배우를 뽑는 ‘골든 래즈베리’ 시상식에 샌드라 불럭(45)은 영화 ‘올 어바웃 스티브’ DVD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나타나 최악의 여배우 상과 최악의 커플 상을 수상했다. 출처:USA투데이 ☞ 사진 더 보기
그는 당당하게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수레에는 영화 '올 어바웃 스티브' DVD 300여 장이 담겨 있었다. 관객들에게 DVD를 나눠주며 그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엉망이었는지 제대로 보고 판단하시죠." 그리곤 내년에 이 자리에 다시 와서 상을 돌려주겠노라 했다. 관객들은 조롱 섞인 폭소를 터뜨렸고, 그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유쾌한 자리였다.
6일 밤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 래즈베리' 시상식. 샌드라 불럭(45)은 로맨틱 코미디 '올 어바웃 스티브'로 최악의 여배우 상과 최악의 커플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7일 밤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전날 밤 최악의 배우로 조롱받던 그는 하루 만에 최고 여배우로 무대에 섰다. '블라인드 사이드'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는 수상의 기쁨을 어머니에게 돌렸다. "어릴 적 어머니는 매일 피아노와 발레를 연습하게 했죠. 열여덟 살 때까지 남학생과 버스도 못 타게 하셨어요. 오늘 우리 엄마 헬가 불럭(2000년 작고)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드라마 '블라인드 사이드'에서 그는 리 앤 투오이를 연기했다. 전형적인 상류층 주부 투오이는 오갈 데 없는 10대 소년을 보듬어 미식축구 스타로 키운다. 따뜻함과 엄격함을 잃지 않은 그의 모성 연기는 어쩌면, 딸을 배우로 만든 억척어멈이자 오페라 가수였던 헬가 불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최악의 여배우 상'을 받은 샌드라 불럭은 다음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연합 ☞ 사진 더 보기▶ 로맨틱 코미디 대표 배우, 자신의 길을 찾다.
샌드라 불럭. 무엇이 떠오르는가. 1987년 데뷔한 그는 영화 '스피드'(1994)로 일약 스타가 됐다. 또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와 '미스에이전트'(2001)로 로맨틱 코미디계의 대표 배우가 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크래시'로 평단의 인정을 받은 적도 있지만 이후에는 인상에 남는 영화가 없다. 차갑고 건조해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얼굴에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예전의 발랄함을 기대하기엔 세월이 흘렀고, 메릴 스트립처럼 연륜 있는 연기를 기대하기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해 그가 출연했던 영화 두 편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리 앤 투오이라는 맞춤옷을 입은 '블라인드 사이드'와 강제추방을 면하려 남자 비서와 위장 결혼하는 '프러포즈'말이다. '프러포즈'에서는 전신 노출까지 감행하며 열연했다. 제 나이의 배역을 맡아 따뜻한 엄마와 마녀 같은 상사를 오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보란 듯이 살아났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두 작품은 평단의 지지와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수익까지 거둔다.
저력은 무엇일까. 패션 잡지 '바자(Bazaar)'의 한 기자는 "20대는 걱정이 많았고 30대는 멈추지 않고 일했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서자 이 배우는 자신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평했다.
▶ 고고한 스타가 아닌 옆집 사는 배우
그렇다면 그가 고집하는 삶의 방식은? 그간 여러 매체와 했던 인터뷰에 해답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그는 고고하게 하늘에 떠 있는 스타가 아니다. 현실에 발 딛고 서있는 생활인, 혹은 '옆집 언니'의 냄새가 난다. 미국인들이 그를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은 '샌디'. '프러포즈'를 연출한 안느 플레처 감독은 "이 여자는 100년 정도 사귄 친구 같다"고 표현했다.
"현실에서 샌디는 소매를 걷어 올린 옷을 입은, 털털한 소녀 같아요. 한번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여자들이 착용하던 앤티크 반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당시 시대의 목걸이를 가져와 선물하는 거예요. 그는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진짜 애정을 베풀죠. 물론 선물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에요."
정말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레드카펫에선 디오르 드레스를 입다가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흙냄새 나는 샌디로 돌아간다. 그는 토요일이 되면 남편 제시 제임스(40)와 함께 흙이 잔뜩 묻은 오토바이를 타고 호수와 산을 누빈다(그는 오토바이 회사 사장 제시와 2005년 결혼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과 오스틴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가 월요일 일터로 돌아온 그에게 홍보담당자가 "너의 사진이 도처에 깔렸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아마추어 파파라치들은 작은 구덩이에 있는 그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당황했죠. 우린 사막에 있었고 소변을 볼 곳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웅덩이에 볼일을 본 건데…. 선인장 옆 웅덩이에서 소변을 보는 내 모습이 타블로이드 커버를 장식할 줄이야. 그래요. 저, 볼 일 봤어요.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그럴 거라고요!"
여느 여배우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그 당당함과 솔직함이란.
남편 제시 제임스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자연을 누비고 있는 샌드라 불럭. ☞ 사진 더 보기 ▶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갖고 싶어요."
한 기자는 샌드라 불럭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인정한다. 난 한번도 '샌드라 불럭표 영화'의 팬이 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차마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샌드라 불럭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면? 광팬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영화 기자로서 내가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진심어린 취재원이었다."
영화 일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머물 때를 제외하면 생활인 샐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텍사스에서 지낸다. 오스틴(Austin)은 또 다른 일터다. 3년 전 여기서 친환경 레스토랑 '베스(Bess)'를 열었고 최근 꽃가게와 빵 가게를 겸한 가게도 개점했다. 그의 꿈은 옛날처럼 가게에 모인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는 찾아오는 손님의 이름도 모두 알고 싶다고 말한다. 그 뿐인가. '진짜' 땅을 일구는 곳도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그는 아보카도와 감귤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아내 사업가 배우 등 세 가지 역할을 잘 할 수 있었던 건 일과 가정을 완전 분리했기 때문.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그는 타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과 자신의 그것도 완전히 분리했다. '10년 후 너 자신을 어디에서 보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을 보면 알 수 있다. 배우답지 않은 솔직함과 털털함, 소박함이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대답 안에 다 들어 있다.
"내가 주문한 가슴이 배달됐으면 좋겠고요, 원하는 나이대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기계도 발명됐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외과 수술을 받지 않고요! 음, 건강했으면, 그리고 지금의 나를 긍정했으면 해요.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내가 원하는 세상의 모든 걸 가질 순 없겠죠. 하지만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이라도 갖고 싶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