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에서 남녀 주인공 \'그\'와 \'그녀\'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미자 콘서트는 회당 평균 유료관객 2779명을 동원했다. 이미자 콘서트보다 더 관객동원력이 좋은 공연은? 스웰시즌(Swell Season)이라는 낯선 밴드다. 스웰시즌은 회당 유료관객 2784명을 동원해 세종문화회관 2009년 상반기 최다 관객 공연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 스웰시즌이 4월 다시 한국을 찾는다.
스웰시즌은 영화 '원스(Once)'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원스'는 2006년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인디 영화다. 미국에서는 처음 2개관에서 개봉하여 150개관으로 확대 개봉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처음 10개관에서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 개봉되어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선댄스 영화제와 더블린 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총 제작비 15만 달러, 촬영기간 17일의 이 초저예산 영화는 무엇으로 관객을 이렇게 매료시켰을까?
▶ 원스 ≒ 아일랜드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원스'는 한때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애틋한 노래다. 그('원스'의 남녀 주인공은 이름없이 그, 그녀로 불린다)는 노래를 하고 싶지만 현실은 청소기 수리공이다.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지만 진짜 자기 노래는 사람이 없는 밤에만 한다. 사람들이 듣지 않는 시간에 진짜 자기의 노래를 하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었는데도 인정받지 못할까봐, 자신의 꿈이 헛된 것임이 증명되어 버릴까봐. 한번쯤 입 밖에 내기 쑥스러운 꿈들, 철이 들면서 '넌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워서 마치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루지 '않은' 것 인양 놓아버린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어느 날 그의 노래를 알아주는 그녀가 나타난다. 그는 그녀를 만나 가사없던 노래를 완성하고, 데뷔를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체코에서 온 그녀에게는 어린 딸과 본국에 두고 온 남편이 있다. 그와 그녀는 노래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둘은 노래에서는 자유롭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바람처럼 얼핏 지나가고 그녀는 그가 내민 손을 잡지 않는다. 아일랜드판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스'는 신파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사실 수많은 '이루지 못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신파는 아니듯이. 데뷔를 하기 위해 런던으로 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원스'는 우리가 한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피아노를 살 돈이 없어 피아노 매장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만들어내는 그와 그녀의 노래는 가난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집에는 여전히 같은 고향의 이민자들이 TV를 보기 위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고 그녀의 삶은 그대로인 듯하지만 배달되어온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한 위로가 된다.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들이 우스터소스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기름진 스테이크라면, '원스'는 거친 통밀빵과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 같다고 할까.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해도, 이러저런 이유로 한 때(Once) 꾸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원스'에서 위로를 찾을 것이다.
남녀주인공을 맡은 글랜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뮤지션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소박함을 넘은 거친 화면, 뮤지션들의 초보 연기
'원스'에서 그 '이룰 수 없음'은 화면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원스의 비주얼은 소박함을 넘어 거칠다. 그 거친 화면이 오히려 원스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원스의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그 가난은 화면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예산관계로 조명도, 현장통제도 할 수 없었고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 하나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주인공들은 전문배우가 아니고, 등장인물 상당수도 배우가 아니라 감독과의 친분에 의해 출연한 사람들이다. 촬영을 위해 정돈된 현실이 아니라 마치 내가 예전에 캠코더로 촬영한 친구들을 보는 느낌, 허구이지만 어딘가 실제하는 존재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친구와 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감독인 존 카니는 베이시스트 출신이고, 남주인공 글랜 한사드는 영국의 인디밴드 더 프레임즈의 리드보컬. 여주인공을 맡은 마르게타 이글로바 역시 뮤지션이다. 극 중 나온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는 실제로 이글로바가 촬영 한 시간 전에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과 두 주연배우 사이의 관계도 특별하다. 카니 감독이 밴드를 그만두고 영화계에 뛰어들 때 밴드 리더였던 글렌 한사드가 8mm 카메라를 선사한 사이라고 한다. 한사드와 이글로바는 실제 연인이기도 했다. 원스는 친구들 사이의 영화였으며, 그래서 허구이지만 어떤 면에선 실제였다.
2009년 내한공연을 가진 밴드 스웰 시즌.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그'와 '그녀'가 만든 밴드 스웰시즌
그 영화의 주인공인 한사드와 이글로바가 만든 프로젝트 밴드가 스웰시즌이다. 스웰시즌은 시기적으로는 영화 '원스'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원스'가 없었다면 스웰시즌도 없었을 것이다. 스웰시즌의 첫번째 앨범 '더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에는 영화 '원스' 이전에 녹음했던 테마곡 4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스웰시즌이 그저 영화의 성공에 기댄 밴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웰시즌 노래의 감미로움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 에서 가상 부부로 출연했던 김현중-황보 커플부터 현재 조권-가인, 정용화-서현 커플까지 모두 스웰시즌의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를 불렀다면 그 대중적 매력이 전달이 될까.
2집 '스트릭트 조이(Strict Joy)'는 두 사람의 결별 이후에 만들어진 앨범이다. 사랑을 노래했던 연인은 이제 이별을 노래한다.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두 사람 앞에도 현실에서의 '이루어지지 않음'들은 가로놓이나 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여전히 함께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위로가 필요한 날이면 스웰시즌을 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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