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暴風前夜)의 고요'라는 말이 있듯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날 밤은 조용하다. 속에선 부글부글 끓어올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보이는 건 너무도 조용한, 그래서 더 불안한 정적….
영화 '폭풍전야'(조창호 연출, 김남길 황우슬혜 주연)는 조창호 감독의 말을 빌리면 상처를 가진 두 남녀의 '시한폭탄' 같은 사랑을 그린 영화다. MBC '선덕여왕'의 비담 김남길과 영화 '미쓰 홍당무' '과속 스캔들'로 충무로의 기대를 모은 황우슬혜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영화는 아내 살해범의 누명을 쓴 탈옥수 수인(김남길)과 사랑의 상처를 안고 바닷가에서 홀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여자 미아(황우슬혜)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를 제주도를 배경으로 담아냈다.
● 괜찮은 감독, 괜찮은 배우를 만나다 영화 '폭풍전야'는 지난해 3월에 촬영을 시작해 6월 종료했다. 조 감독은 이후 반년 동안 후반 작업에 매달렸다.
개봉일인 4월 1일과 영화 속 계절이 엇비슷하게 일치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지금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이런 날씨라면…"이라고 말했다.
영화 '인터뷰'와 '나쁜 남자'의 조감독을 거친 조창호 감독은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인 '피터팬의 공식'으로 더반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는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천재' 감독에게 운대가 맞은 걸까. 촬영 직후 김남길은 '선덕여왕'에 투입돼 스타덤에 올랐고, 황우슬혜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 2'를 통해 대중에 널리 얼굴을 알렸다.
● '폭풍전야'의 멜로 키워드는 '절제'
9일 제작보고회에서 배우들은 "배역의 롤 모델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김남길은 "작품속 멜로는 감독이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라며 "그의 생각에 따라 인물이 좌지우지돼 괴로웠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는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는 치닫는데 시나리오에서는 손 한번 안 잡는다. '손을 잡으면 안 될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제된 연기가 힘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황우슬혜도 "캐릭터에 대해 철저히 준비를 해 가도 감독님 주문이 달라서 그냥 현장에 가서 그 말을 최대한 따르고 표현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조 감독의 말. "나를 키운 8할은 여자들의 외면이다."
조 감독은 영화 광고 카피를 정할 때 그냥 멜로라고 하면 화를 낼 정도로 '격정'을 강조했다. '격정 멜로'를 표방하면서 남녀 주인공이 영화 내내 손 한 번 안 잡는다니, 기존의 멜로 영화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 자칫 '멜로 없음'으로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나를 키운 8할은 여자들의 외면이라는 건 '조크'구요. 폭풍전야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거대한 일이 들이닥치기 전의 떨림, 절제돼 있어도 곧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요소요소 감정이 분출되는 게 아니라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걸 생각했어요. 그래서 울고 싶어도 목 놓아 울지 못하게 하고, 웃고 싶어도 제대로 못 웃게 하고… 절제 후 마지막에 잘 타올랐다고 봅니다."
● "절정의 순간, 찍다가 너무 몰입해서 '커트' 못했다"
그는 김남길에게 시나리오를 줬다가 한 번 거절당했다. 배역은 주인공 수인이 아닌 다른 죄수 역할이었다. 하지만, 다시 수인 역할을 제안했더니, "시나리오 좋은데요"라는 승낙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김남길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비극적인 사랑을 하는 수인에게 '꽂혔다'고 한다.
황우슬혜는 시나리오에 완벽히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 두말없이 데려왔다. 푹 빠져서 눈물을 흘리고 감정이 북받친다고 자기 가슴을 치고. 이런 정도로 몰입하는 배우라면 되겠구나 싶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김남길은 현장에서 '비타민' 같은 구실을 했다. 분위기 메이커로 이 사람 저 사람 유쾌하게 하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황우슬혜는 고독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배우라 두 사람의 색깔이 완전히 달랐다.
조 감독은 "남길 군은 이 영화에 열정을 다 바쳤고, 슬혜 씨는 순정을 다 바쳤다"라고 말했다.
"무척 추웠는데 바다에 빠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다 황우슬혜 씨가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김남길 씨는 예고편에도 나오지만, 뒤에서 차가 스칠 정도로 가깝게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대역 없이 소화했습니다. 대역이 해야 한다고 말렸지만 본인이 극구 직접 했어요. 지켜보는 저도 긴장했습니다."
열정과 순정, 두 사람의 컬러가 부딪히는 순간 스파크가 일었다.
"찍다 보니 너무도 장면에 몰입해서 커트를 하지 않고 말았어요. 필름을 다 쓰도록 숨을 죽였습니다. 임계점. 발화 순간. 냄비 뚜껑이 열리는 그런 영화적 순간이 온 거죠."
끝으로 조창호 감독은 "개봉을 앞둔 내 마음도 폭풍전야"라고 말했다. 영화 제목처럼 폭풍전야에 선 연인들의 격정적인 사랑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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