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열애사실을 인정하며 '한국의 브란젤리나', '세기의 커플'로 불렸던 톱스타 장동건-고소영 커플이 5월 2일 결혼식을 올린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많은 연기자 커플이 탄생했지만 이들은 스타성이나 외모, 자산까지 그 상승효과가 역대 어느 스타 커플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2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1992년에 나란히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장동건)과 '내일은 사랑'(고소영)으로 연예계에 첫 발을 디딘 뒤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사랑을 받았다.
정작 이들이 작품으로 만난 것은 딱 한 차례. 제주도를 배경으로 너무나 우연하고 짧은 여행을 통해 사랑을 시작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멜로영화 '연풍연가'(1999)에서였다.
이후 두 사람은 작품 밖에서 10년 가까이 스스럼없는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으로, 다시 부부의 연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1990년대의 여배우 트로이카
요즘 젊은 관객에게 장동건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연기자이자 부동의 한류 스타임이 분명하지만, 1990년대를 주름잡던 미녀 배우 고소영은 상대적으로 연예활동이 적어 다소 낯선 존재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소위 '신세대'가 형성되던 1990년대, '톡톡 튄다'는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에 고소영은 거침없는 솔직 발랄함으로 무장된 X세대의 아이콘이자 요즘식 표현으로는 '된장녀' 초기 모델의 대표 주자였다.
물론 과거에도 된장녀스러운 여성 캐릭터가 영화나 드라마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소영은 된장녀 캐릭터를 악역으로 소화하지 않은 최초의 여배우라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드라마 '엄마의 바다'(1993)로부터 충무로로 발을 넓혀 찍은 영화 '구미호'(1994), '비트'(1997),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까지 그녀가 보여준 캐릭터는 아름답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을 줄 아는 영악한 여성이었다.
자신의 여성적 매력에 빠져든 남성을 신하처럼 부리는 여왕(?!)으로, 그녀의 그 당당한 속물근성과 순수한 이기주의는 빼어난 미모와 맞물려 그것마저도 '예쁘니까 용서되는', 심지어는 그래서 더 애타게 사랑스러운 전혀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고소영은 상큼하고 앙큼한 고양이 같은 매력으로 톱스타의 대열에 올라 심은하, 전도연과 함께 199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등극했다. ▶CF의 여왕, 영화계의 '마이너스' 손
그런데,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던 그 새로운 캐릭터가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고소영이란 이름만 봐도 바로 연상되는 세련되고, 차갑고, 도도하고, 약간 앙칼지면서 빈 틈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도시 여자. 이렇게 구축된 고소영만의 독특한 캐릭터는 이후로 아무리 그녀가 '나도 알고 보면 보수적이고 서민적이고 털털하다'고 주장해도, 자의건 타의건 좀처럼 변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소영은 이후 '연풍연가'(1999), '러브'(1999), '하루'(2000), '이중간첩'(2002), '아파트'(2006), '언니가 간다'(2006) 등 정통멜로에서 공포,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고정된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아니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녀가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미스 캐스팅의 오명과 함께 전패 수준의 흥행 저조를 기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어색한 대사처리와 조금도 발전하지 않는 연기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으면서 그녀의 영화 출연은 뜸해지고, 점차 배우보다는 CF모델의 이미지로 재각인 되는 듯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고소영의 이러한 이미지가 종종 오해는 받을지언정 근원적인 매력 자체를 상실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동료 여배우들에게는 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모 여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탁월한 유전자 하나로 그렇게 오랫동안-대부분이 죽도록 고생하고 노력을 해도 안 되는-스타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진정으로 축복받은 연기자"였던 것이다.
▶한석규와의 연기호흡을 위한 그녀의 로비?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자타가 공인하는 축복받은 연기자였던 고소영에게도 1990년대 후반 연기자로서 큰 바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당대 최고 스타이자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영화배우 한석규와 공연하는 것이었다.
여배우 트로이카 중 이미 전도연은 영화 '접속'으로, 심은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로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모습을 본 이후였으니 그 염원이 더 간절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하여 '텔미썸딩'이 준비되던 당시에 나름은 영화 제작팀에 '로비'를 하게 되었고, 그 작품에 대한 출연을 전제로 같은 제작팀이 먼저 준비 중이던 작품 '연풍연가'에 출연하게 됐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녀는 외부적인 여러 가지 요인으로 '텔미썸딩'에는 출연을 하지 못했다(그 역은 심은하에게 돌아갔다).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던 그녀는 더 집요해질 수밖에 없었고, 다시 '이중간첩'을 준비하던 제작팀에 재도전,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대한 출연을 전제로 먼저 준비 중이던 작품 '하루'에 출연하게 되었다(더 재미있는 것은 이 네 편의 영화가 알고 보면 다 같은 제작팀이었다는 것).
그리고는 그녀가 원했던 대로 '이중간첩'의 여자주인공 '윤수미' 역할을 따내게 되었다. 무려 5년여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그런 오랜 집념과 노력이 정작 역할을 맡은 이후에 더 빛을 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망하던 것을 이루어낸 만족감이 컸던지, 아니면 더 이상은 원하는 것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영화 '이중간첩'에서 고소영의 연기는 역시 '미스 캐스팅'이었다는 오명을 남길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이밖에 작품 내외적인 다른 요인들과 함께 이 작품은 배우 한석규에게도 첫 번째 흥행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고소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만났던 작품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어 갔으니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을 것도 같다.
'연풍연가'에서는 평생 동료이자 배필을 만나게 됐고, '하루'에서는 그래도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됐으니 말이다.
▶나이만큼 깊어지는 그녀의 연기를 기대하며…
고소영을 영화에서 만날 수 없게 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대변혁을 겪었다. 199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은 완벽하게 사라졌고, 한 명은 악바리 같은 연기파가 됐다. 고소영, 그녀는 아직까지 물음표로 남아 있다.
이제 완벽한 동료이자 파트너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깊어가는 삶의 경험과 무게만큼 심도있는 눈빛 연기를 기대하고 싶다.
그녀는 스스로도 "솔직히 어릴 때는 연기자라는 의식도 없이 연기한 적도 많았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더 이상 청춘스타나 미인 배우의 타이틀에 연연하지 말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연기와 내공으로 승부할 수 있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또 한 명의 여배우의 재탄생을 기대해 보고 싶다.
최근에 그녀와 그녀의 동반자가 함께 들려주는 봉사 활동의 훈훈한 소식처럼,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 많은 향기로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이 아름다운 배우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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