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과 다정다감함으로 무장한 언니이자 누나 ●우리나라 젊은 연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프로그램 ●돋보이는 무대 매너, 망가질 땐 망가지는 푼수끼가 매력 ●30대 여배우의 활동영역에 대한 또 다른 대안 '김정은의 초콜릿' 2주년(3월14일)을 코앞에 둔 3월 3일(수) SBS 등촌동 공개홀. 녹화 시작까지 3시간이나 남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정문 앞은 이미 두 손을 맞잡은 청춘남녀들에게 점령됐다. 동성(同性)끼리 이런 공개콘서트에 온다는 것 자체가 큰 결례라도 되는 양, 화려한 커플의 물결은 거대한 '인의 장막'을 연출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방청티켓은 공중파 TV의 공개 콘서트가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KBS의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SBS '김정은의 초콜릿'이 그 정점을 차지한다. 게시판 추첨을 통해 티켓을 얻은 커플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듯' 기뻐하고, 소풍가는 어린이마냥 방청일을 기다려 정성스럽게 옷을 차려입고 그 제의에 참석한다. 이런 과정은 대한민국에서 연예하는 청춘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필수 통과 의례로 자리 잡았다.
김정은의 초콜릿\'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MC 김정은의 퍼포먼스를 발견하는 일이다. 사진제공 SBS
이 가운데 '김정은의 초콜릿(이하 초콜릿)'은 단 2년 만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음악프로그램이란 명성을 획득했다. 첫째는 '노래와 춤' 그리고 '토크'에 '아이돌에서 밴드 심지어 뮤지컬'까지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뮤직프로그램이라는 점. 둘째는, 프로그램의 간판인 김정은(34) 씨가 거의 끊겨 있던 여성 MC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사실 덕이다.
▶ 김정은, 배우를 넘어 단독 MC 반열에 올라
그간 '여성 단독 MC'를 내세운 방송 포맷이란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전적으로 MC의 자질이 프로그램의 수준을 결정하는 풍토상,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진행자와의 끈끈한 관계, 심지어 각종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재치'를 겸비한 여성 방송인은 언제나 희귀한 존재였다.
그간 음악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진행은 가수가, 버라이어티와 토크쇼의 진행은 개그맨 또는 아나운서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MC는 주로 개그맨(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김구라 등), 가수(윤도현 탁재훈 윤종신 등) 남자 배우(박중훈 김승우 등)로 구성됐다.
여성 MC는 아나운서나 개그맨 출신이 주를 이뤘지만 철저하게 남성 MC를 보조하는 선에서 머무른 게 사실. 이 틈을 비집고 여성 배우 출신이 그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0년대의 SBS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와 '김혜수 플러스 유'가 여성 MC가 등장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최근에야 '이하나의 페퍼민트'와 '강성연의 연애시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김혜수 플러스 유'가 폐지된 이후 여배우가 단독 MC를 맡아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사례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2주년을 맞이해 뚜렷한 개성을 부각시킨 '초콜릿'은 김정은의 위치가 대한민국 정상의 MC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김정은에게 축하할일이 넘쳐났다. 초콜렛 2주년에 이어 100회 공연, 그리고 영화 '식객'의 해외 진출까지.
▶ 생일 축하로 시작된 2주년 기념 인터뷰
"생~일 축. 하. 합. 니. 다~. 사랑하는 정은 씨, 생일축하 합.니.다."
치열한 입장 경쟁을 뚫고 들어간 기쁨도 잠시. 두 명의 기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마침 '초콜릿 스태프'가 김정은에게 깜짝 생일 파티를 해준 것. 알고 보니 녹화방송일 다음날(3월4일)이 김정은의 34번째 생일이었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스포츠동아 허민녕 기자는 축하 케이크를 사기 위해 관중을 뚫고 공개홀을 뚫고 나가 30분 만에 돌아왔다. 허 기자와 김정은과의 10년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진 것 같았다.
케이크를 들고 인사하는 기자들, 이를 반기는 김정은. 케이크에 초는 (센스 있게) 3개만 꽂는다. 30대라는 의미다. 케이크를 접한 김정은은 기뻐한다.
"뭐 굳이 노래까지…"라며 겸연쩍어하던 그녀는 표정을 바꾸더니 "축가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방 안에 있던 이들은 조금 당황했고, 곧이어 가사는 물론이고 박자와 음정조차 제멋대로인 생일축하노래가 울려 퍼진다.
- 자신의 이름이 붙은 콘서트 2주년이라니, 얼마나 기쁘세요.
"아니, 저는 진작부터 주위에 오래 할 거라고 장담해왔는데. 다들 안 믿더라고요(웃음). 지난 2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대신 무언가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갖고 있어요. 1년 전에는 일렉트릭 기타, 올해 2주년에는 춤과 합동 노래를 보여주기 위해 공을 좀 들였어요."
영화 '식객' 시사회에 등장한 김정은. 그녀는 영화와 MC 모두 양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2주년과 같은 기념일이 되면 그녀는 '초콜릿'을 위해 나름의 선물을 준비한다. 지난해 이맘때는 기타를 잡고 라이브 연주를 했고, 여름이라고 살사 댄스를 추기도 했으며, '초콜릿송'이라는 노래도 2개나 내놨다. 올해는 시청자의 인터넷 투표를 거쳐 댄스를 곁들인 노래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두곡의 히트곡(나 항상 그대를, 내게 남은 사랑을 다줄께)을 퍼뜨린 가수이기도 하죠? 솔로로 한번 부르지 그랬어요?
"아하하. 제가 누구랑 같이 부르면 모를까. 혼자는 살짝 부담스럽고요. 그냥 그 같은 설레임을 즐겨요. 마치 여자친구에게 매년 선물을 해주는 남자친구의 마음이랄까? 사실 5월에 초콜릿 100회 특집도 있거든요. 이제는 노래 정도론 성에 안차실 것 같아 와이어에 매달려 비키니를 입고 뛰어내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황당한 생각까지 한다니까요(웃음)."
-그러고 보면 MC의 외적인 측면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어요. 사실 정은 씨의 드레스가 너무 돋보이다 보니, 출연 가수들이 오히려 빛이 죽는 것 아니냐는 얘기죠(실제 그녀는 매번 눈부신 드레스로 TV화면을 장식한다).
"글쎄요. 저는 호스트로서 화려하게 입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원래 우리나라에는 파티 문화가 없었잖아요. 저 역시 파티를 즐기며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즐기고 보고, 무대 위의 가수나 무대 아래의 관객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MC의 최선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실제 공연 중에도 저는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가수를 보는 척 하지만 몇 명은 시선을 저에게 돌린다고 누군가 지적하기도 하더군요(웃음)." -(두 기자 모두) 사실, 저도 김정은 씨만 보고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이 MC의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제가 없고 그냥 방송만 존재한다면 '김정은의 초콜릿'이라고 이름을 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안에 녹아들고 싶어요. 그런 면이 독특하다고 하겠죠."
가수 박진영이 MC 김정은과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드레스는 쇼를 보는 관객들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또 한명의 '대인배 김슨생', 김정은
여성 단독 MC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강인한 카리스마와 더불어 아름다움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오랜 연예계 생활을 통해 터득해야 하는 연예인에 대한 횡적 종적인 정보도 마찬가지다. 결국 30대 중반에 이른 배우 김정은이 그 유일한 지위에 오른 셈이 됐다.
그녀에게 이 프로그램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오랫동안 '정을 붙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배우란 직업의 특성상, 영화든 드라마든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하는 법.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이력에서 '초콜릿'은 서로가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유효한 '오래된 연인'과도 같다.
- 배우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면 음악 공부 많이 하셨겠어요.
"전 음악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에요. 이건 좋아 혹은 싫어, 라는 이분법이 아네요. MC가 편파적이어선 곤란할 것 같고, 실제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그간 우리 대중문화가 다양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 이제는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죠?
"물론이에요. 완전 다 좋아해요."
- '초콜릿'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마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성이겠죠. 처음부터 성격이 자리 잡힌 것이 아니었어요. '인기가요'가 10대를 겨냥한 순위 프로그램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당초 그 이상의 세대를 노리고 기획된 것은 맞아요. 그러다보니 물랭루주 같은 쇼 적인 측면이 강하고 그러다 보니 살짝 대중성이 부족했죠. 이후 아이돌 가수를 초청하면서 점차 범위와 영역을 넓혀갔어요.
처음부터 제작진이 다른 방송에 없는 것을 만들어 보자는 의욕을 가졌고 저도 비슷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양성을 추구하게 된 거죠. 오늘만 해도 젊은 K-will과 정훈희(50) 선생께서 듀엣으로 부르잖아요. 후배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초청해 멋진 무대를 만들어 드리고 싶죠. 신승훈 선배와 소녀시대를 같은 무대로 끌어내보고 싶은데 쉽진 않네요."
▶멜로에서 코믹 그리고 MC로… 30대 여배우의 선택
나이가 들수록 묵은 게 좋다. 신상품보단 사연이 있는 '빈티지'에 더 눈이 가듯이. 어쩌면 사람은 살아가면서 가장 큰 욕심을 내는 게 '역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명예'란 표현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배우 김정은과 대중이 함께 한 시간도 10여 년을 훌쩍 넘었다. 1990년 중엽에는 조연 정도로 관객들에게 첫 인사를 한 그녀는 '이브의 모든 것'(2000) '에어포스'(2000), '여인천하'(2001) 등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그리고 2002년 '가문의 영광'으로 히트배우로 자리매김하고 '파리의 연인'(2004)과 '루루공주'(2005), '사랑니'(2005) '연인'(2006) 등을 거치면서 국내 정상급 여배우로 군림해 왔다.
이런 톱 배우에게도 MC의 영역은 손쉬운 일이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단 2년만에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확립해 위치를 공고히 해버렸다. 그녀가 말하는 MC로서의 목표는 절대적으로 "관객이 왕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
"가끔 아이돌 그룹을 보면 노래가 끝나고 저와 대화하기 위해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온다고 양해를 구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관객을 기다리게 만들잖아요. 이것은 금지죠. 손님이 왕이듯이 관객을 위한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김정은이 '초콜릿'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보다 노련해진 진행 능력도, 달마다 월급처럼 통장에 찍히는 출연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초콜릿'은 매주 한 번씩은 만나고, 안보면 보고 싶은 '행복한 의무감'을 안겨줬다는 점이다.
- 이제는 연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이 됐어요
"그럼요. 찾아오는 관객들이 너무 사랑스럽죠. 특히 커플이 특별한 날에 찾아오는 무대가 됐잖아요. 하루는 남자 게스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나왔는데, 제가 소원을 물으니, '정은 씨 안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안아줬는데, 그 친구는 곁에 있던 여자친구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너무 귀엽더라고요. 아이돌 팬들이 오는 것 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와서, 특별한 날 약속해 오는 관객들의 순수함이 훨씬 더 반응이 좋아요."
김정은은 우스갯 소리로 "초콜릿을 10년 정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그녀의 꿈은 이뤄질?
▶"관객이 왕이 되는 프로그램 만들고 싶어"
- 가장 기억에 남는 게스트라면?
"최민수 아저씨가 기록을 세웠어요. 그 좋은 녹화하고 돌아가는 길에 사고(노인 폭언 사건)가 터져서 방영이 취소됐거든요. 그날 할리데이비슨 동호회분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오셔서 이 앞좌석에서 다리 꼬고 앉으셔서 공연을 보셨다니까요. 당시만 해도 초콜릿 초창기라 게스트 섭외가 힘든 시기였는데 자진해서 나오신 건데…. 너무도 매너 있고, 세련된 분인데 앞으로 잘 됐으면 좋겠어요."
부모도 모르는 고민을 가장 친한 친구는 알고 있듯이, 김정은은 '초콜릿' 속에서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알게 모르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시청자의 애정 상담 코너인 '달콤한 레시피'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은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 친구에게 상처받은 한 병사의 고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공중파 방송에 이런 충고를 단호한 어투로 건넸다고 말했다.
"빨리 잊고, 절대 '탈영'하지 마세요!"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사실 이게, 너무나 '쎈 말'인데 제가 그렇게 표현해서 그런지 다들 이해하고 넘어가더라고요"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민녕 스포츠 동아 기자 justin@donga.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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