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박춘석’ 2700곡 남기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섬마을 선생님’ ‘비 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가슴아프게’ ‘초우’
■ 박춘석씨 80세로 별세
1960∼90년대 히트곡 제조기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곡 받아 톱스타 반열 올라


“박춘석 선생은 한국 대중가요의 총설계사였습니다. 가요계의 전설이 된 가수들에 일일이 캐릭터를 부여한 위대한 프로듀서였죠. 우리는 그에게 큰 빚을 졌습니다.”(임진모 가요평론가)

뇌중풍으로 16년 투병하던 원로 작곡가 박춘석 씨가 14일 오전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섬마을 선생님’ ‘비내리는 호남선’ ‘마포 종점’ 등 1960년대 이후 전 국민의 애창곡을 지었으며 1960, 70년대 패티 김, 이미자, 남진, 정훈희, 하춘화 씨 등 수많은 가수들을 톱스타 반열에 올렸다. 이들은 ‘박춘석 사단’으로 불렸다.

1954년 가수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로 작곡 인생을 시작한 뒤 1994년 8월 뇌중풍으로 쓰러질 때까지 2700여 곡을 작곡했으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만 1152곡이 등록돼 있다.

‘검은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였으며 ‘가슴 아프게’(남진) ‘공항의 이별’(문주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곽순옥) ‘초우’(패티 김)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하동포구 아가씨’(하춘화) 등이 그의 작품이다.

특히 이미자 씨는 박 씨의 작품을 노래하면서 ‘엘레지(애가)의 여왕’으로 불렸다. 박 씨는 30여 년간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노래는 나의 인생’ 등 무려 700여 곡을 이 씨를 위해 작곡했다.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씨는 본명이 의병(義秉)이고 춘석은 아명이었다. 네 살 때 풍금을 연주했고 봉래소학교와 경기중학교를 거치며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익혔다. 194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했고 이듬해 신흥대(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 시절 명동의 나이트클럽인 ‘황금클럽’에서 피아니스트 활동을 시작해 대중음악 작곡가로 변신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1995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박 씨의 음악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박춘석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1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된 빈소에는 최희준, 패티 김, 이미자, 남진 씨 등이 찾아와 고인을 애도했다. 이 씨는 “박 선생님과는 가족 같은 사이였다. 아들이 어릴 때는 내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 동안 아이가 박 선생님의 무릎에 앉아 놀던 기억이 난다”며 “성격이 워낙 깔끔해서 투병 이후에는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우리를 피하셨다”고 안타까워했다. 패티 김 씨는 “선생님이 쓰러지신 뒤 매년 자택을 찾아갔는데 노래를 불러드리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셨다”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남진 씨는 “1966년 박 선생님 자택을 찾아가 곡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받은 곡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가슴 아프게’였다. 철없던 때는 연습 시간에 자주 늦어 박 선생님한테 군밤을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李대통령 조화 보내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함영준 대통령문화체육관광비서관을 보내 조화를 전달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장례는 한국가요작가협회장으로 5일장으로 치러진다. 김병환 한국가요작가협회 회장, 신상호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등이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유족으로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동생 금석 씨(77)가 있다. 영결식은 18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모란공원묘원이다. 02-3010-2230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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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0-03-15 22:30:47

    가요계에 이런 분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주옥같은 그 명곡들! 그분의 노래로 애환을 달려보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을까마는 고인에 대한 언론의 예우가 소홀한 것같다. 어느 스님과 비교하기엔 그렇지만 솔직이 고달픈 우리 국민의 마음을 누가 더 달래 주었는가. 대중가요라고 그런가. 언론의 위선이 역겹다. 포퓰리즘을 욕하는 그 언론이 포퓰리즘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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