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TJ로 알려진 인디음악가 조태준은 이제야 비로서 자신의 이름으로 걸고 세상에 등장했다.
"TJ에서 조태준으로, 홀로서기 준비 중" 조태준(31)은 본명보다 TJ라는 호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인디 뮤지션이다. 그는 2003년 자신보다 25살 위의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찌(본명 가스가 히로후미)와 그룹을 결성해 보컬로 활동을 해왔다.
기타같이 생긴 조그마한 네 줄 악기 우크렐레를 들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깔쌈한' 외모의 청년은 음악 실력뿐 아니라 코믹 막춤과 걸쭉한 입담까지 겸비해 '홍대의 황태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그런 그가 최근 소출력공동체라디오 '마포FM'(www.mapofm.net)에서 DJ를 맡았다. 3월 초부터 시작된 인디음악 전문 방송 '게릴라디오'에서 '크라잉넛'의 한경록과 함께 두 달간 진행을 맡게 된 것.
'게릴라디오'는 현재 마포FM 역사상 유래 없는 인기를 누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서울 마포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전국 각지 인디 음악 팬들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을 청취하는 탓에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된 것도 부지기수.
하찌와 TJ의 조태준 ▶ 걸쭉한 입담을 지닌 '홍대의 황태자'
"라디오 DJ가 부러워 공연 때 팬들에게 사연과 신청곡을 미리 받았다"던 조태준은 바라던 대로 '라디오 스타'가 된 셈이다.
봄이 올 듯 말 듯 한 날씨의 일요일 오후, 서울 홍대 근처에서 조태준을 만났다. 노래 부를 때의 달콤한 미성과 사뭇 다른 걸걸한 목소리로 부산 사투리를 걸쭉하게 구사하는 그는 최근 7년 남짓 살았던 홍대에서 조금 떨어진 망원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원래 홍대 바로 옆에 살았는데 쪼금 더 있으면 죽어 삘 거 같더라고요. 사람들 만나고, 술을 너무 마이 마셔서.(웃음)"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까지 "무리하게 달렸던 터"라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는 단골 카페에 들어가 장난스레 "마담~"을 외친 뒤 진한 커피를 주문했다.
- 라디오 DJ를 맡게 된 계기가?
"서교음악자치회라고 인디레이블 연합체가 있다. 거기서 크라잉넛 매니저 형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데 언젠가 불러서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됐으니까 니하고 경록이라고 해라' 그러더라. 단 '페이는 없다'는 조건이었다.(웃음)"
- 아, 돈 안주나?
"(한)경록이 형은 한달, 난 두 달하기로 했다. 짧으니까 그냥 한다. 또 공연이랑 방송이 겹치면 빠질 수도 있다."
- 많은 뮤지션 중에 첫 주자로 DJ 시킨 이유가 있지 않을까. 무척 말을 잘한다고 들었다.
"사석에서 목소리가 가장 크니까 잘한다고 생각한 거 같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산다. 공연 할 때 멘트 같은 거 준비하면 늘 산으로 빠진다. 원래는 '오늘은 비가 오니 이 노래를 듣고…' 뭐 이래야 하는데 '오늘은 비가 왔는데 술을 마셔야겠습니다' 막 이렇게 된다(웃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말을 해야 재미있고, DJ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안 된다. 어색한 서울말로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수요일. 시작하겠습니다아아~' 뭐 이런 식이다."
- 하긴 원고 읽을 때는 너무 티 나더라.
"아우, 라디오 하면서 알았다. 내가 글자를 잘 못 읽는 구나.(웃음)"
- 그럼, DJ 보름 정도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이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실수가 너무 많아서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음… 일단 실수로 작가 동생에게 욕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반응이 좋기에 계속 조금씩하고 있는 느낌? 농담이다. 방송이 너무 자유로워서 실수를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거 같다. 허허."
▶ 군고구마 장사로 음향기술 배워, 그러다 만난 하찌
조태준이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조금 드라마틱하다. 한 때 장래희망에 꼬박 '가수'를 썼던 시절이 없진 않았으나, 허황된 것임을 알고 일찍이 포기한 그는 생활인으로 살아갈 직업을 모색하던 중 공연 음향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고향 부산에서 군고구마 장사와 노가다를 뛰며 번 돈을 들고 서울로 상경한 그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하찌 씨에게 발견(!)돼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하찌 씨를 '아자씨'라고 부른다.
"아자씨는 내게 선생님이고 음악적으론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하찌 아자씨 만나기 전에 나는 기타 코드만 겨우 아는, 거의 백지였어요. 만나게 된 것도 정말 신기해요. 콘서트에서 음향 알바를 하다가 리허설 때 잠깐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그 때 하찌 아자씨가 대기실에서 제 노랠 들었던 거죠. 그리고 나서 아자씨가 '니는 음향은 됐고 노래해라'고 했어요."
- 음향기술을 배워 돈 벌려던 찰나에, 인생이 바뀐 셈이다.
"맞다. 그 찰나에 날 샤악~ 악의 소굴로 땡긴거다(웃음). 먼저 술독에 빠뜨리고, 나중엔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시켰다. 그 덕에 지금은 기타는 물론 여러 악기들을 연주 할 수 있게 됐다. 노래 작곡도 잘은 못 만들어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쓸 수 있게 됐다."
- 하찌 씨가 아버지뻘 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가.
"나이 때문이라기보다… 평소엔 그냥 아저씨인데 음악작업에 들어가면 눈빛이 변한다. 내가 음악작업에서 무식한 짓 하는 걸 절대로 허용 안했다. 그게 궁극적으론 트레이닝이 됐지만."
동시에 외로움과 배고픔으로 고생도 많이 했다. 외로움을 극복해보고자 한 때는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현재 방2개짜리 옥탑방을 구하기까지 지난 7년간 친척집에서 친구집, 이어 고시원, 반지하 등으로 옮겨 다녔다. 2006년 1집이 나온 이후 2009년 2집이 나오기까지 공백이 크면서 "쫄쫄 굶어 죽을 뻔 했던" 고비도 있었지만, 알렉스 덕에 살아난 적도 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알렉스가 신애에게 하찌와 TJ의 곡 '남쪽 끝섬'을 불러주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와, 정말 알렉스 덕에… 알렉스가 신용불랑자 될 뻔한 걸 막은 셈이요. (저작권료)막 들어오더라고요. 공연비도 평소보다 두 배로 뛰고."
- 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모른다(웃음). 언제 소주한 번 사야는데…"
'하찌와 TJ'는 국경과 세대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그 멤버 구성처럼 장르의 경계를 넘은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다. '남쪽 끝섬'이 보사노바 풍이라면 라디오 CM송으로도 쓰였던 '장사하자'는 '뽕필' 충만한 트로트다.
일본인 하찌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 인생의 스승이다. ▶ 알렉스가 막아준 태준의 신용불량자 딱지?
더불어 하찌와 TJ 노래는 생활 밀착형 가사가 매력이다. 예컨대.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나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 지푸라기도 잡고 싶습니다 / 알라, 하느님, 부처님이여 / 아, 장사하자('장사하자')
언젠가 그대와 둘이서 어딘가 남쪽 끝섬에서 / 쨍쨍한 태양에 불타고 시원한 바람에 춤추고 / 야자나무 그늘 밑에서 뽀뽀하고 싶소('남쪽 끝섬')
오늘 같은 밤에는 / 가시나들 꼬시러 / 바람 쐬러 밖에 나가자('가시나 꼬시러')
대략 이런 식이다.
"가사는 거의 같이 써요. 하찌 아자씨가 한국말의 어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좋은 것도 있는데… 가사가 추상적이면 안돼요. 누가 봐도 확실한 거여야 돼요. 나도, (하찌) 아자씨도 가사는 영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노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가사를 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저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해요." - '가시나 꼬시러' 같은 건 개인 경험인가?
"같이 썼는데, 그 노랜 거의 내 얘기가 많다. 뭐, 그렇지만 가시나는 잘 못 꼬신다. 그 노랜, 그냥 먹고살기 바빠서 놀지도 못하고 연애도 못한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그런 얘기 들으면 난 답답하거든." - 현재에 만족하진 않지만, 불안하니까 계속 일을 하는 거 아닐까. 당신은 불안하지 않나?
"음악만 하면서도 불안이 덜한 이유는, 몸이 건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게 정 안되면 딴 일, 예컨대 장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공연에 들이는 육체적 스트레스만큼을 장사에 투자하면 어느 정도 먹고 살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난 그렇게 되면 마음이 힘들 거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거 하고 돈을 조금 덜 받는 게 난 더 좋다. 오히려 내 경우는 하기 싫은 거 했을 때 오는 불안함이 더 크더라. 그 불안함, 계속 아둥바둥 이러다 늙어 죽으면 우짜노.
나중에 가족이 생겨도 그렇다. 교육비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가 생기면 그 땐 또 나름대로 방법이 있을 테고 미리 고민하면서 겁먹을 필요 없다는 거다. 난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게 옳다고 보고. 나중에 후회할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만큼 지금, (가슴을 가르키며) 여기에 얻는 게 많으니까. 부유한 아버지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글쎄, 멋진 아버지는 될 수 있을지 않을까."
20대 초반 서울에 올라와 음악을 시작할 즈음 "서른이 되기 전까지 열심히 해보고 잘못된 생각이었으면 그때 가서 내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조태준은 이제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까진 음악을 중단하고 싶은 생각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슬럼프는 있었다.
"얼마 전까진 좀 괴로웠거든요. 아, 난 왜 이렇게 작지? 왜 이렇게 못하지? 자신이 없다, 뭐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는데…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래, 니 못한다! 안 써지면 쓰지 말지!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인정하니까 뭔가 곡이 써지는 거예요. 그 뒤부턴 다시 굉장히 밝아지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고. 모든 일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된 거죠."
그는 최근 소출력공동체 라디오 마포FM의 DJ로 맹활약중이다. ▶ 루저스피릿도 명예와 돈이 필요하다
조태준은 요즘 하찌와 TJ가 아닌 조태준이라는 이름을 내건 솔로 음반을 준비 중이다. 그에 앞서 5월경엔 우크렐레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몇몇 뮤지션과 함께 우크렐레 기획 음반도 낼 예정이다.
"하찌와 TJ는 당분간 못할 것 같아요. 1집에서 2집나오는데 3년 걸렸는데, 진짜 굶어 죽을 뻔 했거든요. 그리고 3집을 가려면 또 기약이 없이 기다려야할 거 같고. 제 경우는 지금 혼자 음악을 할 수 있어야 나중에도 그 누구랑도 같이 할 수 있다 생각하니까. 이제 새로운 게 필요한 거 같아요." - 꽤 바빠 보인다. 요즘 하루 일과는?
"주로 아침에는 운동을 한다. 네 종류의 운동을 하는데, 수영, 야구, 축구,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한다. 요즘은 야구시즌이다. 요즘은 사람들이랑 한강서 모여 쪼그려 뛰기 한다. 운동 한 뒤엔 적절한 악기 트레이닝이 필요하니까 연주 연습하고, 그 다음엔 앨범 작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벌이를 위해 레슨을 한다. 레슨은 많이 하진 않고, 한달에 백오십 만원 벌 정도? 그 정도면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니까 그 이상은 안 번다. 그리고 공연해서 번 돈으로 악기 사면된다. 너무 많이 벌면, 바빠서 작업할 시간을 뺏기니까 안 된다. 레슨만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불안하다. 이대로 레슨하다 죽는 거 아닌가."
- 당신의 목표, 꿈은 뭔가?
"일단은 유명해지고 싶다. 그게 목표다. 쉽게 말해 지하철 못타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웃음). 그럴 정도로 좋은 작품, 사람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은 거다." - 유명해지면 사람이 변할 텐데…
"맞다. 나도 변할 거다. 사람이 변할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그래서 옛날부터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어쨌든 변하게 해주십쇼. 다만 좋은 놈으로, 착한 사람으로 변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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