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21세기형 팬덤’ 주인공 김인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15시 00분


‘빙의인권’ ‘트위터질’… ‘21세기형 팬덤’ 주인공 김인권

김인권은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다. 감초 조연 연기로, 또 '빙의인권' '도플인권'놀이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변신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사진: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김인권은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다. 감초 조연 연기로, 또 '빙의인권' '도플인권'놀이로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변신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사진: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KT '쿡' 인터넷 TV 광고 속 배우 김인권(32). 능숙한 부산사투리,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짓는 나른한 표정, 오른쪽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까지…. 영화 '친구' 속 장동건과 꼭 닮은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누리꾼들은 '싱크로율 100%'라 추켜세우며 열광했다. 덕분에 '빙의인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장동건이 김인권에 빙의된 양 패러디 연기가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김인권은 앞서 '쿡' CF의 인터넷 전화편에서도 남편, 아내, 어머니 등 1인 3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냈다. 그 때는 '도플인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분신, 분신복제라는 의미의 '도플 갱어'에서 따온 말이다.

CF가 화제가 되자 인터넷에서는 '도플인권' '빙의인권' 놀이가 유행이다. 팬들이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와 '타짜' 김혜수 '300'의 제라드 버틀러 '스타워즈'의 요다 얼굴에 김인권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과 UCC동영상을 만들며 즐거워하고 있다.

'명품 조연 배우'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작품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해운대'다.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이 영화에서 그는 철없고 모자라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 오동춘 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여세를 몰아 CF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트위터 활동으로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평소 생활과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공감형' 트위터 운영은 팔로어들로부터 "솔직하다" "연예인 같지 않다"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트위터, 아이폰, UCC 등 첨단 기술의 아이콘들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는 '디지털 팬덤형 스타'다. 그 스스로는 달라진 자신의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 광고 '주연' 하나로 뜨거운 관심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해 말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흰 얼굴에 아담한 키, 흰색 재킷차림의 첫 인상은 찌질이나 코믹한 '루저남' 이미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샤프한 쪽에 가까웠다.

인터뷰 장소인 21층 스튜디오에서 광화문 네거리 풍경을 내려다보던 그가 문득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풍경 좋네, 여기 온 소감도 트위터에 올릴까"라고 혼잣말을 하며 히죽 웃는 모습에서야 최근 출연작인 SBS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맡은, 빈틈 많지만 사람 좋은 매니저 마실장 분위기가 났다.

데뷔 후 10여년 만에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소감을 먼저 물었다.

"광고는 전 국민이 보다보니 확실히 반응이 많이, 빨리 오는 것 같아요. 저 때문에 재미있어들 하시는 걸 보면 기분이 좋죠. 특히 '친구'의 장동건 선배님을 패러디한 광고는 촬영 중에 웃음이 나 혼났어요.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을, 그것도 외모가 저와 정 반대인 사람을 패러디하는 상황 자체가 우습더라고요."

그는 광고에서는 5초 남짓 보여 지는 짧은 연기를 위해 이 장면만 클립으로 만들어 1시간 연속으로 집중해 봤다고 했다. 적어도 700번은 봤다는 뜻이다.

'도플인권'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터넷 집전화 광고 촬영도 에피소드가 많다. 연기 인생 가운데 처음으로 여장을 했는데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제 덩치에 맞는 여자 옷을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특히 원피스는 정말 잔인한 옷이더군요. 몸의 윤곽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요. 브래지어에 코르셋까지 입었는데 나중엔 숨도 못 쉬겠고 소화도 안되더라고요. 여성들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게 됐어요."

TV CF를 보고 누리꾼들이 제작해 올린 '빙의인권'(위)과 '도플인권'(아래) 패러디물. 유명 영화 주인공과 연예인들의 얼굴에 
김인권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UCC와 사진들이다.
TV CF를 보고 누리꾼들이 제작해 올린 '빙의인권'(위)과 '도플인권'(아래) 패러디물. 유명 영화 주인공과 연예인들의 얼굴에 김인권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UCC와 사진들이다.

트위터, 아이폰에 빠진 '요즘 남자'

그는 최근 '1005-1버스를 타고 양재역에서 내립니다' '좀 쉬라고 마눌이 아이들과 처가로… 배려해 주시는 건지, 버려진 건지'와 같은 평소 생활과 심경을 담은 글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트위터족의 사랑까지 받고 있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1500명의 팔로어가 생겼다.

"트위터는 박중훈 선배님 권유로 시작하게 됐어요. '해운대' 무대 인사를 다니는 중에 동료 배우들에게 수시로 트위터의 위력과 장점을 시연해 보이시더라고요."

김인권은 트위터로 캐스팅과 인터뷰 요청까지 받고 있다. 그는 트위터가 '연예인의 활동 범위를 확장시키는 유용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무대 인사나 인터뷰를 통해서나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시도 때도 없이 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트위터 활동에 빠져드는데 대해 스스로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사생활을 너무 낱낱이 밝히다보면 제가 작품에 출연할 때 사람들이 제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걸 잘 조절하는 것도 제 몫이겠죠."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가 불쑥 아이폰을 꺼내보였다. 자신이 아이폰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 마누라한테 야단을 맞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명언집 어플을 다운받아 '여자'란 키워드를 찾아봤어요. 제가 딸도 둘이라 여자를 참 잘 알아야 하거든요. 아, 근데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해도 되나? 하하."

그는 스물여섯살때 대학 동기와 결혼해 현재 다섯 살, 두 살 된 딸을 두고 있다.

그가 보여준 검색 결과는 흥미로웠다. "검색 결과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 그 내용들이었다.

'깃털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의 맹세는 물에 적어 놓는다' ….

▶ 전교 1등, 학생회장, 수석입학

그는 고3때 수능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 0.8%에 들어 전교 1등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강남 8학군 내 고등학교에서…. 매니저는 옆에서 "학생회장 경력도 있다"고 거들었다.

"부산, 대구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어요.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가 이왕 서울서 공부를 한다면 강남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이미 알려진 대로 그는 부모님이 따로 살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 와중에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방황도 했다. 고교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으면서 모범생으로 환골탈태하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했다. '아들 전교 1등 하는 게 꿈'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어서였다.

그가 학생회장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모범생이었지만 지금처럼 '끼'가 많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생회장 지원 기준이 되는 내신 성적 평점이 조금 모자랐는데도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조른 끝에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제가 졸업한 세종고등학교는 유세전을 유난하게 하는 편이었어요. 저도 반마다 돌아다니며 나미의 '빙글빙글'을 어찌나 불러 댔는지…."

지금도 군대 시절 다음으로 힘들었던 시기로 주저 없이 '고3 때'를 꼽는 그는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 품은 꿈은 영화 연출과 연기였다.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 가나다 군에 학교 한 개 씩을 지원할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 '가군'과 '나군'에는 서울대와 연대를 쓰게 하셨어요. 제가 우겨서 '다군'에는 동국대 연영과를 썼죠. 서울대 연대 본고사를 보러가서는 잠만 잤어요. 가고 싶은 곳은 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는 19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수석 입학했다.

김인권은 주연급 배우들이 감독에게 함께 일하고 싶다고 추천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해운대' 감독들에게 김인권을 추천했다.

"권상우 형도 그랬어요. 저랑 얼굴도 모르던 시절인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를 촬영할 때 저를 출연시켜달라고 했다더라고요. 그 후 '신부수업' '숙명'도 함께 찍었어요. 상우 형이 주변인들을 잘 챙기는 편이기도 하고요."

평소 그에게 술을 가장 많이 사주는 선배는 설경구다. 그는 "설경구 선배님하고는 과도하게 술자리가 많다"며 '과도하게'에 악센트를 주어 말하면서도 싫지 않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해운대 촬영할 때 보니 선배님은 술을 정말 진하게 마시고, 그 다음날 아침 벌떡 일어나 동백섬을 10바퀴씩 뛰시더라고요. 그렇게 몸을 다시 만든 다음 그 다음날 또 드시는게 탈이지만…. 하하."
영화 '해운대'는 김인권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대표작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찌질한' 오동춘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 '해운대'는 김인권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대표작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찌질한' 오동춘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 대한민국 공식 '비호감', 호감으로 거듭나다

'해운대'는 여러모로 그에게 전환점이 된 영화다. '조폭마누라' '말죽거리 잔혹사' '숙명' 등을 통해 비호감 이미지를 쌓은 그가 결정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된 계기가 이 작품이었다. KT 광고에 출연하게 된 것도 광고주가 '해운대'에서의 그의 코믹 연기를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님을 만났는데 저더러 '인권아, 우리 계획대로 돼가고 있는 것 맞제?'라고 하시더라고요. 윤 감독님이 '해운대'를 통해 제 이미지가 호감으로 변할 거라고 예견하셨거든요."

영화감독을 최종 목표로 생각하는 그는 영화관을 자주 찾는다. 그는 "13년간 집 근처 분당 야탑 CGV에 갖다 마친 돈만 해도 수백만원은 될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인권이 요즘 가장 즐겨보는 영화 장르는 코미디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행오버'. 결혼식 전 총각파티에서 벌어지는 황당코믹한 스토리다. 그가 지금까지 가장 재밌게 본 영화 역시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1983년작 '코미디의 왕'.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오락 프로그램도 즐겨본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제 재능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더라고요. 그게 제 '임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미디 연기 쪽으로 더 개발을 하고 싶어요."

그는 올 5, 6월 경 개봉 예정인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방가'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코믹물. 충청도에서 상경한 백수가 부탄인으로 행세하며 위장 취업을 하는 스토리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도 함께 그려진다.

인터뷰 날은 마침 '방가방가방가'의 편집본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해 "내가 네 장면만 빼 놓고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듯 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혹한과 폭설 속에 찍었다는 이 영화는 그의 연기 생활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같다.

18일 개봉한 영화 '이웃집 남자'에서는 우정 출연을 했다. '세파에 찌들고 타락한 남자의 파멸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재미있어 출연 결심을 했다.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는 5월 방영되는 신성일, 하희라 주연의 MBC 4부작 드라마 '나는 별일 없이 산다'.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 신성일의 철없는 아들로 등장한다.

"꽃뱀 역할을 맡은 하희라 선배님에게 '아버지 돈을 뜯어내 반 반 나눠가지자'고 제안하는 불효자예요. 하지만 코믹하게 그려지죠. 어제 첫 대본 리딩을 했는데 열연하시는 대 선배님들을 보니 또 다른 각오를 다지게 되더라고요."

▶ 배우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을 잘해야

그는 '머리 좋은 배우가 연기도 잘한다'는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뇌의 기억력, 창조력 영역 가운데 기억력은 0점, 창조력은 100점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 연기를 자꾸 기억하게 되면 연기 자체가 패턴화 돼버려요. 그러면 변화도 발전도 없죠. 그래서 과거 배역의 잔상을 지우는 것이 가장 큰 일이예요."

그는 '내가 맡았더라면…' 하고 바란 배역을 묻는 질문에 순식간에 '친구'의 장동건, '아이리스'의 이병헌,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 역할을 읊었다.

"저도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안 시켜주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저는 제 위치에서 열심히 하려고요. 욕심을 부리자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연기 스케일이 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감독도 꿈이지만 아직은 연기 욕심이 많아 안 될 것 같아요. '나라면 이렇게 연기할 텐데'하고 일일이 간섭하면 배우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겠어요."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촬영: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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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추천 많은 댓글

  • 2010-03-19 14:59:17

    쿡cf 보고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인권님 짱!!!

  • 2010-03-19 14:57:57

    코믹연기 달인이죠~ 얼굴만봐도 웃기는분ㅋ 근데 맨위 사진보니 이미지랑 전혀 다른데요?

  • 2010-03-19 14:55:36

    그저 연기잘하는 배우로만 생각했는데, 숨은 매력이 많은 분이시네요~~~ 앞으로도 좋은 연기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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