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8일 17시 41분


일본극단 신주쿠양산박이 국내에서 공연하고 있는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포스터. 벌거벗은 소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자세로 웅크린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인의 의식세계와 과학문명의 어두운 면에 대한 첨예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본극단 신주쿠양산박이 국내에서 공연하고 있는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포스터. 벌거벗은 소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자세로 웅크린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인의 의식세계와 과학문명의 어두운 면에 대한 첨예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녀도시…'에 비춰본 일본 만화의 세 조류


신주쿠양산박이란 공연단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극단이 아니라 일본극단입니다. 도쿄 신주쿠를 터전으로 삼아 수호지에 등장하는 108명의 양산박 호걸처럼 다양한 출신의 연극인을 규합한다는 뜻으로 극단 명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참 많은 공연을 펼쳤습니다. 1989년 '천년의 고독'을 시작으로 '인어전설'(1993년) '맹도견'(1997년) '바람의 아들'(2005년) '에비대왕'(2006년) 등을 공연했습니다. 대표인 김수진 씨를 포함해 재일교포 연극인이 소수라도 주축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영화배우로도 유명했던 고 김구미자 씨가 이 극단의 배우였고, 2008년 한일 연극계 상을 휩쓴 '야키니쿠 드래곤'을 쓰고 연출한 정의신 씨도 이 극단 출신입니다,

신주쿠양산박이 3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하는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라는 작품입니다. 벌거벗은 소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환상적 포스터로 관객을 유혹하는 연극입니다. 실제 공연을 보면 여주인공 유키코 역의 이마무라 요시노 씨는 포스터의 소녀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내용은 섬뜩합니다. 전체적 분위기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연극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 마지막 장면. 5만 개의 유리구슬이 비처럼 쏟아지는 연출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일본인의 탐미적 예술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연극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 마지막 장면. 5만 개의 유리구슬이 비처럼 쏟아지는 연출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일본인의 탐미적 예술을 상징하는 듯 하다.


천애고아인 남자주인공 다구치(히구치 코지)는 배가 아프다면서 입원을 해 정밀검진을 받는데 뱃속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음이 발견됩니다. 의료진은 그의 친구인 아리사와(히로시마 코)에게 이 머리카락을 절단할지 말지를 문의합니다. 아리사와는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 상태인 다구치를 흔들어 깨우며 절단여부를 묻습니다. 다구치는 '유키코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다시 잠이 듭니다.

다구치는 유키코를 찾기 위해 꿈의 세계, 아니 일종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극중에선 설명이 생략돼있지만 유키코는 다구치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라진 쌍둥이 여동생,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입니다. 즉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다구치의 무의식에서만 살아 숨쉬는 존재입니다. 다구치의 뱃속에서 자란 머리카락은 다구치와 하나가 된 유키코의 흔적인 동시에 현실의 다구치와 무의식의 유키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어렵게 만난 유키코는 모든 것을 유리로 만드는 공장의 여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손가락을 세 개나 잘린 그는 동화나라 속 유리의 성에 사는 공주를 꿈꾸며 자신의 몸을 유리로 만드는 것을 꿈꿉니다. 이미 자궁은 한달에 한번씩 유리가루를 토해내는 유리자궁으로 절반쯤 바꾼 상태입니다. 유키코는 그것이 자신의 몸을 아름답고 영원한 상태로 바꾼다고 믿습니다. 다구치는 유리자궁을 갖게 되면 어떤 생명도 자랄 수 없는 불모의 상태가 되는 것임을 일깨워주며 유키코를 데리고 현실로 탈출하고자 합니다.
우주소년 아톰
우주소년 아톰

하지만 모든 꿈에는 훼방자가 있는 법. 유키코의 약혼자이자 유키코를 유리인간으로 만들려는 프랑켄추태 박사(김수진)가 이를 가로막습니다. 한쪽 눈이 유리알인 그는 유키코를 납치해 유리인간으로 바꾸는 시술을 펼치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는 만주 주둔 관동군 병사였습니다. 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점령하자 그의 부대장은 도쿄가 불바다가 됐고 환영의 만주제국도 불타고 있다며 병사들을 이끌고 일본 본토와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행군합니다. 부모가 일본에 남아있고 마음이 너무나도 따뜻하다는 이유로 프랑케추태 이등병을 버려두고.

그것이 평생의 한이 된 프랑케 박사는 전우들이 간 곳, 북쪽 얼음 숲에 갇혀버린 유리의 성을 만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유키코를 차가운 심장과 불모의 자궁을 지닌 유리인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유키코는 영원한 유리인간 보다는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택하고 오빠 다구치와 함께 탈출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탈출을 위해선 잘려나간 손가락 세 개를 되찾아야합니다. 다구치는 동생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자르며 각각 용기, 정열, 약속이란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자기 대신 유키코가 현실로 나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꿈속의 환상을 그렸다고 해서 몽환극이라고 불리지만 실상 이 연극은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입니다. 다구치와 유키코는 현대 일본 젊은이의 표상입니다. 현실의 다구치는 야망도 꿈도 없이 무위도식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무 죄의식 없이 회사돈을 횡령하고 주변 인물에게도 무심하기만 합니다. 반면 유키코는 유리처럼 깨끗하고 환상적인 것을 꿈꿉니다. 그가 꿈꾸는 유리의 세계는 유독 깔끔 떨기 좋아하는 일본인들 보편의 꿈과 맞닿은 점이 있습니다. 깨끗하고 예쁘고 환상적이고 영원한 그 무엇이죠.

프랑켄추태박사는 그 꿈과 환상을 이뤄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게 유니콘을 탄 왕자님이 아니라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는 괴물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학기술을 통해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가 저주받은 프랑켄슈타인과 추한 외모라는 추태라는 이름을 합친 그는 일본의 어두운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연극 속 코러스들이 되풀이해 "음습한 기운"을 읊조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양태로 나타나는데 만주에 식민지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제국주의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추동한 과학기술만능주의입니다. 연극은 일본 밖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상적 공간을 꿈꿨던 것이나 일본 안에서 환상의 공간을 세우려는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병리현상이라고 매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여주인공 유키코가 유리인간이 되려는 모습은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철이와 닮아 있다.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의 여주인공 유키코가 유리인간이 되려는 모습은 일본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철이와 닮아 있다.

유리는 아름답지만 쉽게 깨지고, 차갑고 영원하지만 생명력이 없습니다. 절반가량 유리인간이 된 유키코는 벌레만 보면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이고, 유리 깨지는 소리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킵니다. 일본인들이 꿈꾸는 삶이 얼마나 허약하고 병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치입니다. 손가락을 잘린 채 유리로 자신의 몸을 바꿔가는 유키코의 모습은 일본인이 꿈꾸는 아름답고 깨끗하고 영원한 삶에 대한 일종의 디스토피아적 비전입니다. 또한 프랑켄 박사가 자신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냄새나고 지저분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세계에서 가장 수명이 길다는 일본인에 대한 풍자인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 실험극의 개척자 가라주로(唐十郞)가 1985년 발표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을 보노라면 일본만화가 떠오릅니다.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입니다. 추한 욕망과 죽음이 지배하는 육신의 탈을 벗고 유리인간이 되려는 유키코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안드로메다 행성을 찾아 떠나는 철이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그런 유키코가 마지막 순간 유리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한번은 죽는 인간을 택하는 것 또한 철이의 최종선택과 너무도 유사합니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세 손가락과 현실의 육체까지 내놓으려는 다구치는 철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까지 희생하는 메텔을 닮았습니다.

그 순간 어린시절에 즐겨 봤던 일본만화들이 머릿속을 주르륵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한편에 기계문명의 총아인 로봇이 세계를 구원하는 데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과 나가이 고의 '마징가Z'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기계문명이 결국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과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가 있었습니다. 전자가 '유리의 성'을 유토피아로 포착한 만화라면 후자는 그를 디스토피아로 묘파한 만화였습니다. 기계 속에 영혼이 깃든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어쩌면 그 양자가 뒤섞인 '제3의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소년 코난
미래소년 코난

흥미로운 점은 그 일본만화의 세계가 아톰 류의 과학문명에 대한 긍정적 시각에서 코난 류의 과학문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정확히 과학 대 신화의 대결로 응축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서양기술문명의 총아인 비행기를 그토록 찬미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과학문명을 비판하면서 일본 전통의 신화로 침잠해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섬세한 비판이 요구됩니다. 동양 속 서양을 꿈꾸던 일본이 제국주의의 정점에서 그 서양마저 부정하며 내세웠던 '근대의 초극' 논리가 서양과학과 일본신화의 통합이었으니까요.

연극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는 일본 연극답지 않게 거칠고 어눌하고 퉁명스럽습니다. 하지만 펄떡이는 직관과 날카로운 통찰의 힘은 대단합니다. 일본인들의 의식세계를 '유리의 세계'로 포착함으로써 근대 일본에서 왜 그토록 탐미적 예술이 꽃 피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사의 찬미'로 이어졌는지 까지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힘을 발휘합니다. 연극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본 TV만화의 계보까지 풀어낸 것도 그 메아리의 힘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연극 맨 마지막 5만 개의 유리구슬이 비처럼 쏟아질 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은 비단 일본인들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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