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압도한 최초의 작가주의 PD 20년에 걸쳐 완성시킨 한국형 시트콤의 절정 하이킥의 최대 성과는 김병욱 PD의 작가정신
2010년 3월19일 또 하나의 명작이 대중문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순풍 산부인과'와 함께 한국 시트콤 사상 최대 히트작으로 평가받는 '거침없이 하이킥'(2007)의 속편 '지붕 뚫고 하이킥' 얘기다.
방영 초기부터 시트콤으로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인지 시청자와 방송사는 추가기획에 대한 요청을 노골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병욱 PD는 이런 압박에 대해 단호하게 "제 3시즌은 없다"고 공언했기에 앞으로 '하이킥'이란 이름의 김병욱표 시트콤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순풍산부인과'(1998) '똑바로 살아라'(2003) '거침없이 하이킥'(2007)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등 일련의 히트작을 통해 '시트콤의 명장'으로 불려온 김 PD의 내공과 뚝심은 이번에도 고스란히 힘을 발휘했다.
하이킥은 방영기간 내내 평균 시청률 20%이상(최고 28%)을 기록해 방송사 경영진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간 일일드라마 시장에서 부진했던 MBC는 이 작품의 선전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것. 경영난을 겪고 있던 외주제작사인 초록뱀 미디어도 하이킥의 성공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행복했던 이들은 이 작품에 선택된 출연 배우들이었다. 극중 헤로인인 황정음과 신세경은 물론 이순재나 정보석 오현경 등 중견배우와 심지어 아역배역까지도 모조리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 밖에도 '빵꾸똥구 논란'이나 '월급 60만원 식모'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이 작품을 통해 부각하면서 과거 웃음 코드에만 머물러 있던 시트콤의 영역을 대폭 확장했다는 절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장 7개월(2009년 9월~2010년3월)에 걸쳐 125편이란 에피소드를 통해 남긴 유산이 꾸준한 시청률과 몇 명의 스타라고 요약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킥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잠도 없이 일주일 내내 전력투구, 그래서 '스텐레스 김'
"주중엔 바닥에 등대고 10시간정도 잘까요? 사실 잘 수가 없는 걸…."
지난해 11월 일산 MBC에서 김 PD를 만났을 때 "잠은 제대로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혼잣말하듯 건넨 말이다. 일주일 5회 방영을 유지하기 위해 전 출연진과 스태프는 금-토-일 3일 밤낮을 촬영에 투자해야 했다.
그러나 총괄 PD입장에서는 촬영이 이뤄지는 주말보다 주중이 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주말에 촬영할 대본을 확정해야 하고 이를 배우들과 연습해야 했다. 작가들과는 아이디어 회의를, 후배 PD들과는 촬영회의는 물론 촬영한 필름을 방영 시간에 맞춰 편집까지 해야 했다. 심지어 그날그날 방영되는 작품의 모니터링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벌어지는 이슈들을 처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김 PD 정도 되는 위치라면 철저하게 분업으로 이를 진행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고전적인 제작방식을 고수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실제 기자가 그의 뒤에서 촬영현장을 지켜본 수 시간 동안 그의 편집증적인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트콤이 진행되는 반 년 간은 집에 못 들어간다"는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화면 자막에 '제작 스텐레스 김'이라고 자신의 예명을 작성한 이유는 이 같은 심각한 체력적 고갈을 유머러스하게 자조한 것이었다.
▶김병욱표 시트콤의 완성 '지붕 뚫고 하이킥'
"시트콤의 본령인 웃음은 물론 웃음 속에 이 시대의 눈물을 담았다."
단순히 체력과시만이 아니었다.
하이킥이 남긴 최대유산은 다매체 시대라는 미명하에 막장드라마가 범람하는 이 혼란기에 제대로 된 '작가주의' 드라마를 내세운 무모한 도전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의 작가주의 드라마의 탄생과 종말을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이킥을 작가주의 드라마라고 정의하면 어불성설이라고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주의'는 대개 걸작 영화에 붙는 수식어이다.
앨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 같은 거장이나 김기덕, 홍상수 같은 개성이 뚜렷한 감독들의 작품에 '작가주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즉 작품의 줄거리는 물론 배역이나 조명, 음악, 편집 등 미장센을 포함한 모든 드라마적 요소에 감독의 개성과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는지를 따져본 뒤 수여되는 인증서인 셈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가 '작가주의 관점'으로 해석된 적은 없다. 한류드라마의 원조 격인 '겨울연가'의 윤석호 PD나 '상도' '이산' 등 역사물로 유명한 이병훈 PD등이 거장으로 칭송받기는 했지만 '작가주의'라는 칭송까지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진정한 한류드라마의 작가정신은 드라마의 실제 집필자인 여성작가들에게 발견됐고 실제 모든 영광과 칭송 또한 작가들에게 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 PD는 하이킥 대본 125회의 일부만 작성하고 후배 작가들과 협업으로 드라마를 진행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병욱표 시트콤'이란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었고, 과거 작품들과의 자연스러운 연관성 속에 '하이킥 월드', 아니 더 정확하게는 '김병욱 월드'를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옆에서 지켜본 김 PD는 시트콤 세트장, 자막 하나하나, 심지어 엑스트라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자신의 손길 밖에 두지 않았다. 사실감과 현장감을 집어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 그의 작품이 왜 시트콤이 아니라 드라마 인지, 혹은 왜 충무로가 그의 작품을 영화화 하고 싶어 하는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실주의와 판타지의 조화, 그것이 김병욱표 시트콤
적잖은 누리꾼들과 드라마 비평가들이 김병욱표 시트콤의 '작가주의'를 말하는 근거에는 김병욱표 시트콤이 내세우는 양대 축이 자리한다. 사실주의와 판타지의 이상적인 조화가 그것이다. 시트콤적인 상황은 절대로 '현실'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는 철칙과 이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드라마적인 서사구조는 절대적으로 대중들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사명감이 바로 그것이다.
신세경을 스타로 키워낸 비극적 설정, 즉 카드 빚에 쫓겨난 일가족의 눈물겨운 서울 정착기가 좋은 예다. 미모의 20대 아가씨가 여동생을 데리고 월급 60만원에 재벌집 식모로 일한다는 60~70년대 영화 '오싱'과 같은 설정은, 2010년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공감대를 시청자들로부터 끌어냈다.
게다가 '빵꾸똥꾸'를 외치는 시건방진 아이나, 황혼로맨스를 꿈꾸는 70대 청춘들까지도 시청자들의 입가에 쓴웃음을 짓게 할 정도의 사실적 설정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 PD가 실패작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도 이와 비슷한 재벌집 식모를 드라마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또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한의사인 이순재 부인으로 나오던 나문희 여사는 일찍이 식모로 집안에 들어왔다 결혼한 탓에 평생을 억눌려 살았다는
식의 식모 이야기가 변주됐다.
복잡한 인간관계를 대변하는 고용 피고용 관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순풍 산부인과'에서는 병원장에 부당하게 억눌린 간호사들을 다뤘다. 김 PD는 또 자신의 다양한 전작들에서 해고된 백수 가장의 아픔을 되풀이해 절절하게 표현해 내는 식으로 자신의 캐릭터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캐릭터가 사실적이라면 이야기 구조는 철저하게 판타지에 가까웠다. 대중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한 표면적 이유는 그의 드라마에 녹아있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때문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막판까지 준혁과 세경, 혹은 세경과 최다니엘의 관계를 쉽게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게 다양한 변수를 두고 진행시켰다. 이 같은 열린 사랑 구조는 전작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되며 '고된 현실 속의 미묘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그는 언제나 "그냥 웃기는 시트콤을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한국적 현실을 담아내는 시트콤을 고집하면서 시트콤의 부활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하이킥' 연작이 줄줄이 히트치면서 사회적 이슈를 블랙유머로 비틀어 보는 김병욱표 시트콤이 대세가 됐을 뿐만 아니라 대가족 드라마의 부활, 시트콤의 영역 확장이라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하이킥이 성공했다고 평가한다면 그 공은 전적으로 김 PD의 몫이다. 이는 모든 출연진들도 공감하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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