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다니엘 헤니, 블랙 재킷을 벗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5일 15시 00분


'완벽남' 헤니의 숨겨진 뒷모습


● 민감한 주제도 스스럼없이 먼저 꺼내는 '쿨'함
● '미드'도 '한드'처럼 시청률에 전전 긍긍
● 휴 잭맨의 '살인적' 단백질 다이어트
● 달라지는 경제 패러다임…동양 배우 선호 붐 일 것


진지하게 답변하다가도 종종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다니엘 헤니는 애견과 전화 통화를 나누는 '연기'까지 해 보였다. '부드러운 남자'란 이미지가 강한 그의 유머러스함은 또 다른 매력이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진지하게 답변하다가도 종종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다니엘 헤니는 애견과 전화 통화를 나누는 '연기'까지 해 보였다. '부드러운 남자'란 이미지가 강한 그의 유머러스함은 또 다른 매력이다. 사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블랙 재킷, 청바지 차림의 다니엘 헤니(30)는 멀리서도 존재감이 빛났다. 주먹만한 머리 크기, 8등신의 호리호리한 몸매는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미리 도착해 기다리는 취재진 일행을 향해 그는 걸어오며 75도 가량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체질화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이 고난이도 동작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모습, 그리고 정중하면서 비굴해보이지 않는 '75도 각도'의 미학은 그의 매너의 '한국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음을 짐작케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블랙 재킷을 벗자 캐주얼한 분위기의 하늘색 셔츠가 드러났다. 주인과 한 몸인 양 몸에 착 달라붙어 있던 핏(fit)감 좋은 재킷은 '돌체&가바나' 제품이었다. 섹시하거나 섹시함을 지향하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다.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그는 인사했고, 기자와 소속사 관계자들이 한국어로 주고받는 스피디한 대화를 100% 알아듣는 듯 했다. '생활 한국어'는 완벽한 수준이지만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는 그는 인터뷰가 영어로 진행되자 확실히 달변가로 변했다.



▲ 헐리웃 스타, 다니엘 헤니 전격인터뷰 영상

▶ 잘 생겼는데 웃기기까지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와 기자의 공통점 중 하나가 '애견가'란 사실을 발견했다. 인터뷰 초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한국에서 애지중지 키웠다는 개의 행방부터 물었다. 헤니는 할리우드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과 CBS드라마 '쓰리리버스(Three Rivers)'에 출연하느라 2008년부터 최근까지 주로 뉴질랜드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지냈다.

- 애견은 한국에 두고 미국에서 생활하신건지….

"아니요. 이번에 LA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망고'(골든레트리버종의 애견 이름)도 데려갔어요. (갑자기 한국어로 말하며) 아, 근데 망고는 아직 영어를 못해요. 영어 발음이 아주 이상해요. 어떡하죠."

시작부터 농담이다. 마침 그 순간 휴대전화가 잠시 울리다 끊어지자 휴대전화에 대고 강아지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연기까지 해 보였다.
"응, 그래. 잘 있었어? 그래, 바쁘니까 끊어."

약 7년간 그와 동고동락했다는 매니저 마틴 정 실장이 실없다는 듯 픽 웃었다. "원래 다니엘이 정말 유머러스하거든요. 이런 면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유머감각은 올 2월 출연한 SBS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스꽝스러운 패션쇼를 선보이는가 하면 대본에도 없는 막춤을 떴다. '조각미남'인 그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유재석도 이효리도 웃다 쓰러졌다.

- 부드러운 면만 많이 알려져 있는데, 원래 유머러스하기도 한가요.

"네. 전 재밌는 게 좋아요. '패떴'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효리가 설득해 출연하긴 했지만 사실 걱정이 많이 됐거든요. 예측 못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 어떻게 적응할지…. 그런데 출연진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재밌게 찍을 수 있었어요."

인터뷰 전 그의 소속사 관계자들은 이런 저런 우려를 했다. 헤니가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고 LA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한 후 수락한 첫 심층 인터뷰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2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우여 곡절 끝에 성사됐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 헤니는 스스로 민감하게 생각할 법한 주제들을 먼저 '쿨'하게 쏟아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부터 그의 솔직함이 드러났다.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 홍보차 내한한 배우 휴 잭맨과 함께 지난해 4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레드카펫을 걸으며 포즈를 취한 헤니. 사진=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photolim@donga.com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 홍보차 내한한 배우 휴 잭맨과 함께 지난해 4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레드카펫을 걸으며 포즈를 취한 헤니. 사진=스포츠동아 임진환 기자photolim@donga.com


- 한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미국 드라마 '쓰리리버스(Three Rivers)'의 촬영을 지난해 12월 마쳤어요. 그 때 작품의 방영이 취소(cancelled)됐거든요. 지금은 열심히 차기작을 고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미국 전역에 방송된 이 드라마는 이미 제작된 에피소드 13편 가운데 8편만 나가고 방영이 중단됐다. 시청률 때문이었다. 소식이 전해진 후 국내 언론들은 '조기종영'이란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소속사 측은 사전 제작 위주의 미국 드라마 시스템 상 '조기종영'은 맞지 않은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쓰리리버스'는 조만간 케이블 채널 '캐치 온'을 통해 국내에서 13개 에피소드 모두가 방영될 예정이다.

- 한국과 미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차이가 있다면….

"일단 미국드라마는 각 에피소드마다 감독이 달라요. 각각의 에피소드가 감독의 연출력에 따라 신선하게 보이게 되죠. 음침한 살인사건이나 범죄를 주제로 한 시리즈를 수십 편씩 제작하고 나면 엄청 우울해질 것 같은데 감독으로서도 한 작품에 오랫동안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분위기 전환도 할 수 있으니 좋죠."

미국에서는 배우노동조합의 입김이 센 덕에 일주일에 7일, 밤샘 촬영을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도 한국과 큰 차이. 시청률에 민감한 것만큼은 똑같다. 그는 이를 "마치 매가 쥐를 쫓는 것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시청률을 주시한다"고 표현했다.


▶ 살인적인 단백질 다이어트


그는 2009년 개봉한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휴 잭맨은 그에게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가 지금껏 만난 이들 중에서 인격적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하나였어요. 사실 유명 배우들이 늘 친절한 것은 아니잖아요. 원래 나쁜 사람이어서라기보다 시간이 없어 일일이 배려하지 못하는 거겠지만. 그런데 잭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더라고요."

휴 잭맨이 영화 제작 기간 내내 준수했던 단백질 다이어트도 공개했다. 헤니를 포함한 일부 출연 배우들은 연어, 채소, 닭고기를 양념도 하지 않은 상태로 3시간에 한 번씩 먹어야했다. 콜라, 주스도 금물. 오직 물만 마셨다. 잭맨은 더 나아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달걀흰자, 단백질 음료로 아침을 때우고 촬영 직전까지 운동을 했다.

- 함께 새벽 운동을 하진 않았는지….

"아니요. 뭐, 저도 잭맨처럼 많은 개런티를 받는다면야 기꺼이 했겠지만…."

그가 윙크하듯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스런 표정을 보니 농담이란 뜻이다. 얼떨결에 기자도 "나라도 그랬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지난해 말 미국 CBS를 통해 방영된 메디컬 드라마 '쓰리리버스'에서 헤니는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열연했다. '미드'시리즈는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감독이 연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그는 전했다.
지난해 말 미국 CBS를 통해 방영된 메디컬 드라마 '쓰리리버스'에서 헤니는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열연했다. '미드'시리즈는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감독이 연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된다고 그는 전했다.


▶ "나는 한국배우"… 할리우드에서 동양 배우가 살 길은

그는 할리우드에서도 '한국 배우'임을 자처한다. "한국은 배우의 삶을 살게 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아버지는 영국계 미국인, 어머니는 입양아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 역시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

- 할리우드에서 동양 배우로 산다는 것은?

"음, 그냥 전 일반적인 미국인들보다 쌀도 많이 먹고 또 김치도 즐겨 먹어요. 하하. 미국인 다수가 백인이다보니 아무래도 동양적 외모를 가진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돼 있죠. 그런데 백인에게 꼭 맞는 배역이 있다고 해서 캐스팅 담당자들이 꼭 백인 배우만 만나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가능성만 보여주면 배우에 따라 캐릭터 설정과 대본 자체가 변하기도 하거든요. '쓰리리버스'에서 제가 맡았던 데이비드 리 역할도 원래 백인에 맞춰 설정된 역할이 제게 맞춰 변했듯…."

'동양인과 서양인의 장점만 모은 외모'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 서양인들 눈에도 섹시하게 비춰지는 모양이다. 그는 지난해 가을 미국 잡지 '라이프&스타일'이 선정한 미국 남성배우 '핫 가이' 2위로 꼽히기도 했다.

기자에게도 서양인들이 그의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늠하게 된 경험이 있다. 몇 해 전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가 현재 6년째 국내 모델로 활동하는 프랑스 브랜드 본사에서 잠시 근무하던 시절, 그의 모습이 담긴 광고컷에 찬사를 보내는 사내 젊은 프랑스 여성들을 목격했다.

이 브랜드는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의 모델로는 금성무를 기용하고 있다. 한참 동안 누가 더 잘 생겼는지를 두고 토론하던 이 프랑스 여성들 중 대다수는 헤니의 손을 들어줬다.

- 앞으로 동양계 배우가 활동할 영역이 더 넓어질까요.

"네. 똑똑한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달라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있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도 동양 배우들을 더 채용하고 싶어할 거예요. 앞으로 10년 쯤 후에는 이런 변화가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 같고요."

아시아로 옮겨지는 부의 지도와 수출 시장을 고려해 앞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동양계 배우들을 기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는 반대로 최근 한국에서도 '거침없이 하이킥'의 줄리엔 강, '탐나는도다'의 황찬빈, '보석비빔밥'의 마이클 블렁크 등 외국 배우들이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의 어린이들도 외국인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자주 보다보면 한국 사회의 다문화적 변화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는 한국 배우들 중 비는 확실히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잘 생긴데다 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한 팬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한국 배우들 뿐 아니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의 배우들은 모두 영어 때문에 할리우드 입성을 망설인다. 그 역시 이런 이유로 고민하는 배우 친구들이 많다.

"사실 할리우드 사람들은 영어 발음에 지나치게 민감해요. 유럽, 아시아 출신의 배우 친구들이 오디션을 보고 싶어 했는데 악센트가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했거든요. 자국에서의 인지도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무사히 첫 작품 데뷔에 성공한 후에도 차기작에 캐스팅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죠."

저녁 늦게야 2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났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임신으로 배가 제법 불룩해진 기자가 "밤새 기사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그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데도 걱정스런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영어 이름이 뭐냐"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 결혼한 후에도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각이 예민한 편인 기자는 처음 만난 사람, 처음 간 장소를 냄새로 기억하는 '동물적 본능'을 자랑한다. 그러나 악수를 하려고 가까이 다가선 헤니에게선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남자 배우들, 특히 외국인들에게서 대체로 진한 향수, 화장품 냄새가 났던 기억을 떠올리니 이것마저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색무취' '담백' 이란 단어들이 떠올랐다.
헤니의 사인. 먼저 한글로 '시범'을 보이는 기자에게 그는 "글씨 참 못 쓰신다"며 또 농담을 했다. 실제로 그의 필체가 기자 
것보다 나아 보이긴 했다.
헤니의 사인. 먼저 한글로 '시범'을 보이는 기자에게 그는 "글씨 참 못 쓰신다"며 또 농담을 했다. 실제로 그의 필체가 기자 것보다 나아 보이긴 했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MBC)'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떨어질 줄 모르는 인지도, 2007년 청룡영화제와 2008년 대종상영화제 신인남우상 수상 등으로 검증된 연기력, 자타공인 '미모', 주변인들이 한목소리로 칭찬하는 인간성 등은 '헤니 브랜드'의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들도 끊임없이 리뉴얼하며 변신을 꾀하듯 완벽한 헤니 역시 변신의 타이밍을 맞게 될 것이다.

광고대행사 맥켄에릭슨 손정현 이사는 "너무나 완벽한 외모, 성격이 현대의 대중에게는 쉽게 식상해지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변신을 시도하며 이런 '틀'을 깰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헤니의 인터뷰가 22일자 신문에 보도되자 미국에 산다는 한 남성은 기자에게 이런 항의성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어떻게 헤니가 한국 배우인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고 한국어도 잘 못하는데….'

스스로 한국 배우임을 자랑스럽게 느끼는 헤니에게는 무척 억울한 지적이겠지만 이는 그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할리우드에서는 '한국계 배우(또는 동양계 배우)로, 한국에서는 '미국인 배우'로 여겨지는 그는 이런 비판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토종' 배우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그가 무척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 "나는 유니크(unique·독특한)한 배우"라고 했다. 그의 '무색무취' '담백함'이 그가 한국에서, 또 미국에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하는 '전천후' 배우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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